독일 정부가 제1 야당인 독일대안당(AfD)을 극우 성향의 ‘반헌법적 단체’로 공식 지정한 이후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독일 정치권과 공직사회를 뒤흔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인사들까지 비판에 나설 정도로 파문이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5월 2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열린 유럽 의회 선거 지지 집회에서 독일대안당(AfD) 지지자들이 국기와 당 깃발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독일 내무부 소속 정보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BfV)은 지난 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AfD가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반하는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며 극단주의 단체로 분류한 사실을 알렸다. AfD가 이슬람 국가에서 이주한 독일 시민을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등 독일 헌법 상 자유민주 기본질서와 양립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독일 헌법(기본법) 제21조는 “독일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기능을 고의로 훼손하는 정당은 위헌”으로 규정한다.
독일 내무부 장관 낸시 페저가 2일(현지시간) 독일 비스바덴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조치는 정보기관이 AfD에 대한 감청과 정보요원 투입 등 감시 권한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독일 방송 도이체벨레는 “‘AfD의 활동 금지’ 움직임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짚었다. 정당의 활동 금지 여부는 BfV 같은 정보기관이 아닌 의회와 정부의 논의를 거쳐 헌법재판소가 결정한다.
2022년 10월 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급등하는 에너지 가격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독일대안당(AfD) 지지자가 히틀러 경례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발표 직후 독일 공직사회에선 AfD 소속 공무원의 징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로만 포제크 헤센주 내무장관은 “공무원은 자유민주적 질서를 수호해야 한다”며 관련 조치를 예고했다. 오는 6일부터 연방정부를 이끌게 될 기독민주당(CDU) 의원들은 “AfD 당적과 공직은 양립할 수 없다”며 소속 공무원들을 해임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내달 열리는 16개 연방주 내무장관 회의에선 이와 관련한 조치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독일 신문 디차이트는 전했다. AfD 당원은 지난 2월 기준 5만2000여명이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극우 또는 음모론 성향으로 조사·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경찰관만 최소 193명에 달한다.
독일대안당(AfD) 공동대표 앨리스 바이델(오른쪽)과 티노 크루팔라(왼쪽)가 지난해 12월 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AfD 소속 의원에게 예산위원장 등 연방의회 상임위원회의 주요 보직을 배정할지도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AfD는 현재 연방의회 630석 중 152석을 확보한 제1야당이다. 난민의 재이주를 주장하며 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지지세를 확장한 AfD는 지난 2월 총선에서 득표율 20.8%를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AfD를 옹호하며 독일 정부를 비판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3일 X(옛 트위터)에 "정부가 정보기관에 야당을 감시하게 했다"며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위장된 독재"라고 날 선 반응을 보였다. JD 밴스 부통령도 "AfD는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당이며, 관료가 당을 파괴하고 있다"며 "서방이 함께 무너뜨린 베를린 장벽이 옛 소련이나 러시아가 아닌 독일의 기득권 세력에 의해 재건됐다"고 했다. 그간 AfD를 지지해온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도 "민주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JD 밴스 미 부통령(왼쪽)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엘살바도르 대통령과의 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에 독일 외무부는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라며 “(극단주의단체 지정은) 헌법과 법치주의 수호를 위해 독립적으로 철저하게 조사한 결과”라는 반박문을 냈다. 외무부는 “최종 결론은 법원이 독립적으로 내려줄 것”이라며 “우리는 극우 극단주의를 막아야 한다는 교훈을 역사에서 얻었다”고 강조했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