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기의 탄생을 축복하고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빌며 1000명의 사람들이 한 글자씩 적어 만든 『천인천자문』 모습.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어화동동’전에서는 조선시대 아동을 지칭하던 ‘동몽(童蒙)’에서부터 방정환(1899~1931) 선생이 주창한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 속에서 아동이 어떻게 인식돼 왔는지 살펴볼 수 있다.
역사속 어린이 관련 자료들 전시
1부 ‘무병장수 목을 빌며’에서는 임산부의 태교 교습서인 『태교신기』부터 아기의 탄생을 축복하고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빌며 1000명의 사람들이 한 글자씩 적어 만든 『천인천자문』, 손주에 대한 애틋함이 담긴 할아버지의 편지 등 아이가 무탈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자료들을 소개한다.

경북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진행 중인 정기기획전 '어화동동'전 전시장.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2부 ‘유아에서 동몽으로’에서는 아동교육과 관련한 자료를 전시한다. 특히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청소년인 류의목(1785~1833)이 청소년기에 썼던 『하와일록』이 전시되며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가르치는 교육 자료인 『경당일기』, 『해주일록』도 볼 수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아동을 이르는 말로 ‘동몽’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는데, 이 말은 ‘어리석어 가르쳐야 할 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철학에 따라 아이들은 어른이 될 때까지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한 배움을 이어가야 했다. 여기에서 ‘사람’이란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조선시대 아동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나 기술 훈련이 아니라, 끊임없는 수양을 통해 군자와 성인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어린이’에 대한 인식 변화 소개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청소년인 류의목(1785~1833)이 청소년기에 썼던 『하와일록』 모습.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이 시기에는 어린이에 대한 인식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전통시대에는 어린이 인성교육을 주로 가정에서 책임졌지만 근대에 들어 가정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공교육으로 보완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어린이는 보호해야 할 독립적인 인격체로 간주됐다.
어린이에 대한 인식 변화에 큰 역할을 한 방정환은 일제강점기의 아동문화운동가이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은 독립운동가다. 한국 근대사에서 아동과 청소년의 인권을 연구한 선구자격 인물로, 『개벽』에 번역 동시인 ‘어린이 노래: 불 켜는 이’를 발표하면서 어린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소파 방정환 선생.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은 “모든 어른은 어린이였기에, 이번 전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과거 조상들이 아이를 귀하게 여기고 올바르게 키우고자 했던 마음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오늘날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미래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