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한일중 및 ASEAN+3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히미노 BOJ 부총재(왼쪽부터), 카토 일본 재무장관, 란 포안 중국 재무장관, 판궁성 PBC 총재, 최지영 기획재정부 차관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기념촬영하고 있다. 뉴스1
중국을 중심으로 한 ‘반(反)트럼프’ 연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일본·중국과 아세안 10개국은 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아세안+3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 심화는 세계 무역에 부담을 주고 경제적 분절화로 이어져 역내 전반에 걸쳐 무역·투자·자본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했다. 공동성명을 통해 사실상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이번 회의에는 한·중·일과 아세안 10개국(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등)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회원국들은 2400억 달러 규모의 역내 통화 스와프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 방안을 논의했다. 글로벌 경제·금융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어, 역내 금융안전망 강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다.
이런 움직임은 일주일 전 브릭스(BRICS) 외무장관 회의에서도 볼 수 있었다. 브릭스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11개 신흥경제국의 모임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마우루 비에이라 브라질 외교부 장관은 회의 후 “우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정신에 어긋나는 부당한 일방적 보호주의의 부활, 특히 관세 및 비관세 조처의 무분별한 확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회의에서도 달러 패권에 대응한 이른바 ‘브릭스페이’ 시스템 구축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국가주석과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베트남 국가 주석이 2024년 8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화통신
미국과 관세 전쟁을 벌이는 중국은 “중국의 이익을 해치는 어떤 무역협정도 미국과 체결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한편, 각국의 반트럼프 정서를 자극하며 세력을 넓히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14일부터 4박 5일간 베트남·캄보디아·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를 순방한 것이 대표적이다. 캄보디아는 미국으로부터 49%, 베트남은 46%, 말레이시아는 24%의 상호관세를 부과받았다. 시 주석은 오는 7일부터 러시아를 국빈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다. 7월에는 베이징에서 EU(유럽연합)와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아울러 중국은 한·일과 접촉면도 넓히고 있다. 지난 3월 말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경제통상장관 회의에서 3국 장관은 “WTO를 중심으로 한 규범 기반의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투명하고, 비차별적인 다자무역 체제를 지지한다”는 현장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3국은 그동안 진전되지 않았던 한·중·일 FTA(자유무역협정) 논의도 재개하기로 했다. 또한 중국은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 중심의 다자 FTA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만 패권전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국가들은 난감하기만 하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 의존하면서도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과의 관계도 유지해야 하는데, 미·중 모두 ‘양자택일’의 압박을 가하는 형국이라서다. 외교전문매체 포린어페어는 "그동안 미·중 사이 균형을 추구해 온 국가들은 극심한 딜레마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통상전문가는 “한국은 미국과 관세 협상 과정에서 중국과 관계를 적절히 이용해 미국의 견제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며 “미·중을 자극하지 않는 절묘한 줄타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