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판(사진, 자프린 자이리잘)은 감독이 캐스팅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만난 소녀다. 감독에 따르면 13살이었던 자판은 ″에너지가 가득하고 자유로운 소녀였다″고. 사진 속 자판은 영화를 촬영할 때 쯤인 15살 때의 모습이다. 사진 오드
히잡을 다시 두르고, 장갑을 끼며 없던 일처럼 지내보려 해도 동물의 냄새는 숨길 수 없다. 자판의 변화는 얼마 전 거리로 나와 화제가 된 호랑이 영상과 겹쳐 보인다. 그도 호랑이로 변해 거리를 떠돌게 될까? 최근에 달라진 일이라곤 월경을 시작한 것 뿐인데….
7일 국내 개봉을 앞둔 영화 ‘호랑이 소녀’(2023)는 말레이시아의 신예 감독 아만다 넬 유(40)의 첫 장편영화다. 말레이시아의 한 학교에서 활기찬 청소년기를 보내던 자판이 주인공. 자판에겐 또래 중 월경을 가장 먼저 시작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 때문에 자판은 교내 예배당에 출입을 금지당하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영화는 제목처럼 월경 이후 자판이 호랑이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자판은 점차 호랑이가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사진 오드
여성 청소년의 성장서사를 호러 장르로 풀어낸 고전 영화 ‘캐리’(1978)도 떠오른다. ‘호랑이 소녀’는 자판의 2차성징 이후 내·외부에서 돋아나는 혐오적 시선을 재료로 한다. 변화하는 몸에 대한 생경함은 괴수의 모습에 점차 가까워지는 이질적인 자판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자판의 친구 파라(파란 옷, 디나 에즈럴)는 성적 호기심이 많고, 월경도 가장 먼저 시작한 자판에게 "천박하다"는 평가를 일삼는다. 사진 오드
그러나 영화의 지적에 말레이시아는 검열로 답했다. 감독은 말레이시아 심의제도에 따라 영화관 상영을 위해 일부 장면을 삭제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여성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장난치고, 반항심을 표현하고, 기뻐하는 등의 장면이 검열 당했다.
개봉 전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감독은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중국, 인도 등 여러 문화권에서 월경을 더럽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집에 월경용품을 버리면 불운이 찾아온다며 집 안에 못 버리게 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감독은 이에 대해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월경은 여성의 몸이 변화하는 과정을 상징하지 않나. 그것을 두렵게 생각하는 관점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감독은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 속 30여명의 여성 청소년들과 프리 프로덕션을 위한 리허설 연기 워크숍을 진행했다. 코로나19가 겹쳐 예상보단 길어졌지만, 1년 정도의 시간을 통해 이들과 가까워지는 것은 물론 개개인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진 오드
자판이 느끼는 2차성징의 감각은 감독의 경험이 반영됐다. 감독은 “털이 나고, 뼈가 자라는 감각을 느꼈는데 무섭고 싫었다. 자라는 뼈를 때려서 넣으려고 하고, 몸에 난 털을 깎고 먹기도 했다”고 자신의 성장기를 돌아봤다.
인상적인 특수효과는 말레이시아 설화 속 괴물의 독특함에서 떠올렸다. 감독은 “전통적으로 (말레이시아) 옛날이야기의 괴물은 여자인 경우가 많다. 전통적 여성상보다 이런 괴물에 더 공감이 간다”며 “처음에는 끔찍해 보이지만 잘 이해하고 나면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호랑이가 되어가는 자판은 정글을 오가며 혼란한 감정을 조금씩 덜어낸다. 여성으로서의 제약이 있는 동네로부터, 낯설지만 자유로운 야생으로 향할 때마다 편안한 표정이 더해진다. 하지만 그 한 발자국을 내딛는 연습은 오히려 자판이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95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