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창 충돌로 폐사한 호랑지빠귀. 배경의 건물 유리창이 마치 거울처럼 보인다. 최창용 서울대 교수 제공
3개 건물에서 70마리의 새가 유리창에 충돌해 죽은 걸 발견했어요. 새들이 이동하기 좋은 지역에 유리로 된 건물이나 방음벽이 있는 경우 이런 충돌이 자주 발생합니다.
철새를 연구하는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매년 현장 조사에서 유리창이나 방음벽에 충돌해 죽은 새를 종종 발견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10일은 세계 철새의 날이다. 대륙과 바다를 넘나드는 철새와 그 서식지를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올해의 테마는 ‘공유 공간 - 조류 친화적인 도시와 지역사회 만들기’다.
철새는 긴 여정을 통해 멀리 떨어진 서식지들을 연결하고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여정 속에서 인간이 만든 여러 위협 요인에 노출되면서 개체 수가 줄고 있다. 국제조류보전단체 버드라이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철새를 포함한 전체 조류 종의 49%가 감소하고 있으며, 8종 중 1종은 멸종 위기에 처했다.
서울-파리 90m 유리벽…새들에겐 죽음의 벽

유리벽에 충돌한 조류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독일에서는 도시 지역의 유리 충돌로 연간 1억 마리의 새가 죽는 것으로 추정되며, 미국에서도 10억 마리 가까운 새가 유리와 충돌해 죽는다.

지난 3월 루프탑 카페의 유리 난간에 충돌한 새매의 모습. 사진 재성/네이처링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크다. 환경부는 연간 800만 마리의 야생 조류가 유리벽 충돌로 폐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3.9초마다 한 마리씩, 매일 2만 마리가 넘는 새가 유리벽에 돌진해 죽는 셈이다. 밤에도 유리 건물의 인공조명이 새의 비행 방향 감각을 잃게 한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보는 산새류는 대부분 철새인데 일부 종은 50년 사이에 100분 1 수준까지 감소했을 정도로 개체 수가 빠르게 줄고 있다”며 “지구에서 1억 년 넘게 서식하는 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초고층 유리 빌딩과 방음벽 같은 장애물이 갑자기 많아지면서 대표적인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리에 점만 찍어도 피해 줄어 “불필요한 방음벽 제한해야”

인천녹색연합이 시민들과 인천 영종 용유로 방음벽에 조류 충돌 저감 스티커를 부착하는 모습. 인천녹색연합 제공
실제로 인천녹색연합이 지난해 11월 인천 영종 용유로 방음벽 중 일부 구간에 야생조류 충돌 저감 스티커를 부착한 뒤 모니터링한 결과, 스티커가 부착된 곳은 새들의 죽음이 발생하지 않았으나 스티커가 없는 곳에서는 여전히 충돌 피해가 반복해서 발생했다.
이에 환경부는 2023년 6월부터 모든 공공기관 건물과 방음벽에 조류 충돌 저감 조치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공공건물의 비중은 3%에 불과하고 기존에 설치된 방음벽 역시 여전히 충돌 위험에 노출돼 있다.
최 교수는 “충돌 저감 조치가 이뤄지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유리 건물과 방음벽이 늘어나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라며 “새 충돌 위험이 높거나 불필요한 곳에는 방음벽 설치를 제한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