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패션업계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Y2K 패션’이다. 유행은 시간을 돌아 언제고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반영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Y2K 패션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유행한 패션을 일컫는다. ‘Y2K’는 연도(Year)와 1000(Kilo)의 첫 글자를 딴 것인데, 2000년도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벌어질 수 있는 컴퓨터 오류 ‘밀레니엄 버그’를 이르는 표현이다. 당시 연도의 마지막 두 자리만 인식하던 컴퓨터가 2000년이 되면 ‘00’만을 인식해 1900년과 혼동하면서 사회적 대혼란을 가져올 거라는 우려가 커졌고 사회전반에서 이 단어가 쓰였다. 패션 업계 역시 발빠르게 이 말을 빌려와 당시의 유행 무드를 Y2K 패션이라 불렀다.
한 세기의 마지막 시점에 유행했기에 ‘세기말 패션’이라고도 불리는 Y2K 패션의 대표 의상으로는 크롭 톱과 로 라이즈 팬츠를 꼽을 수 있다. 그 시절 우리가 불렀던 대로 쉽게 표현하면 ‘배꼽티’와 ‘골반바지’다. 배꼽이 보일 만큼 짧은 상의와 골반에 걸쳐 입는 헐렁한 바지가 유행이었고 그 대표인물로 가수 이효리를 꼽을 수 있다.
가요계의 전설로 남은 ‘핑클’ 시절부터 이효리는 유독 짧은 상의를 즐겨 입었다. 2020년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가 기획한 혼성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에서 유재석, 비와 함께 활동할 때도 그녀는 90년대 주류 음악이었던 댄스 음악을 선보이는 동시에 그 시절의 의상까지 재현했는데 역시나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배꼽티를 선보였다.(사진1) 가슴 바로 밑까지 올라가는 짧은 길이 때문에 자칫 선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건강한 이미지로 사랑받는 이효리였기에 오히려 ‘베이비 티셔츠’라는 귀여운 말을 얻었다.
다시 돌아온 ‘Y2K 패션’ 유행과 더불어 베이비 티셔츠가 유행하고 있다. ‘아파트’로 전 세계를 강타한 로제(블랙핑크)가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의상부터 지효(트와이스·사진2)를 비롯한 패션 아이돌의 인스타그램 의상까지, 티셔츠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깡총하게 올라간 티셔츠, 골반까지 내려온 바지 차림이라면 결국 허리라인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건데, 거리에서 보이는 차림들이 섹시하기보다 아이들의 작은 옷을 입은 어른처럼 귀엽다. 날씬하든, 뚱뚱하든 자신 있게 허리를 드러내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도 귀엽고 건강하게 느껴진다. “꼭 개미허리를 가진 사람만 입는 옷은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는 듯, 외모지상주의에 기죽지 않는 그들의 자신감 때문이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