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어놓고 쉰다…디지털에 '쉼표' 찍는 콘텐트 인기

빠름과 효율이 미덕인 디지털 시대에 ‘쉼’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슬로우와 힐링을 테마로 내세운 방송과 웹 예능, 유튜브, 음악, 오프라인 이벤트까지 ‘쉼표’를 제공하는 콘텐트가 세대 불문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기안장의 주인 기안84(위)와 '흙심인대호'에서 농사를 시작한 김대호. 사진 넷플릭스, JTBC '흙심인대호'

기안장의 주인 기안84(위)와 '흙심인대호'에서 농사를 시작한 김대호. 사진 넷플릭스, JTBC '흙심인대호'

지난 8일 유튜브에 공개된 JTBC 웹 예능 ‘흙심인대호’는 김대호가 소박한 텃밭 라이프를 실천하며 흙과 자연, 관계 속에서 삶의 본질을 돌아보는 시간을 전한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곁눈질로 배운 잡지식을 총동원해 농사를 짓는 힐링 콘텐트다. 김미연 PD는 김대호 전 MBC 아나운서의 프리 소식을 듣자마자 농사 예능의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러브콜을 보냈다.

1년간 농사를 짓기로 한 김대호가 갈퀴로 밭을 갈고 비닐로 덮는 멀칭 작업을 하는 게 내용의 대부분. 밭일을 돕는 스태프에게 “자 툭 쳐, 끌어올려” 농사법을 가르치고 비가 내리면 “야, 기분 좋다 기분 좋아” 감탄사를 내뱉으며 계속 일한다. 특별한 사건 하나 없지만 댓글에는 “농사짓는 거 보는 게 왜 힐링이 되지?”. “마음 편하고 좋다” 등의 긍정적인 반응이 올라온다. 

넷플릭스에서는 웹툰 작가 기안84가 울릉도에 지은 민박집에서 손님을 맞는 예능 ‘대환장 기안장’이 화제를 모았다. 사장 기안84와 직원으로 함께한 방탄소년단 진, 지예은은 불편함을 감수하며 얻는 낭만에 대해 전한다. 점차 기안84 방식대로 온몸으로 자연을 받아들이는 진과 지예은의 모습이 웃음포인트다. 벌써부터 시즌2 이야기가 나온다.

JTBC '천국보다 아름다운'. 사진 드라마 홈페이지

JTBC '천국보다 아름다운'. 사진 드라마 홈페이지

대표적인 힐링 드라마로 소문난 JTBC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최고 시청률 6.7%를 돌파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사후 세계에서 다시 만난 인연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사랑, 이별을 잔잔하게 풀어내며 시청자에게 감정의 여운과 위로를 건넨다. 배우 김혜자와 손석구가 천국에서 재회한 부부로 출연하고, JTBC ‘눈이 부시게’·’나의 해방일지’를 만든 김석윤 감독이 연출했다. 


유튜브에서는 웹툰 작가 이말년의 ‘침착맨의 둥지’가 팟캐스트(라디오) 포맷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말년이 취미나 고향, 관심사 등 공통점을 가진 세 명의 게스트를 초대해 소소한 일상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평균 1시간 30분가량의 러닝타임으로 유튜브 콘텐트로는 다소 긴 호흡이지만, 100만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출퇴근길이나 혹은 자기 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이말년표 힐링 콘텐트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도파민 콘텐트에 지친 대중이 자연스럽게 천천히 흐르는 콘텐트를 찾고 있다. 김대호가 보여준 자연친화적 삶이나 기안장처럼 불편함 속에서 진짜 쉼을 추구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공감을 얻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침착맨표 팟캐스트 콘텐트 '침착맨의 둥지'. 사진 침착맨 유튜브

침착맨표 팟캐스트 콘텐트 '침착맨의 둥지'. 사진 침착맨 유튜브

 
슬로우와 힐링을 앞세운 장수 예능들도 여전히 굳건하다. MBC ‘나 혼자 산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출연진의 일상에 공감이 더해지며 오랜 사랑을 받고 있고,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따뜻한 인터뷰로 자연스럽게 힐링의 정서를 전달한다. 배우 최수종이 새롭게 MC를 맡은 KBS ‘한국인의 밥상’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식탁과 삶을 통해 인간다움과 정서를 회복시킨다.

‘쉼’을 채워주는 것은 영상 콘텐트뿐이 아니다. 최근 차트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음악들 역시 힐링의 정서를 담고 있다. 조째즈 ‘모르시나요’는 2013년 다비치 원곡을 나른한 재즈 감성으로 리메이크해 멜론 차트 4위에 랭크했다. 멜론 차트 1위까지 올랐던 황가람 ‘나는 반딧불’은 투박한 포크 감성 위에 자아에 대한 초라함을 발견하고 위로하는 노랫말이 어우러진 노래다. 최근 주우재의 커버 영상으로 인기인 10cm ‘너에게 닿기를’은 담백하고 따뜻한 어쿠스틱 사운드로 관계 속 치유의 순간을 전한다.

데이식스는 지난 7일 신곡 '메이비 투모로우'를 발매했다.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데이식스는 지난 7일 신곡 '메이비 투모로우'를 발매했다.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청춘을 대변하는 밴드 데이식스는 지난 7일 희망을 노래하는 ‘메이비 투모로우’를 발매하고 차트 상위권에 들었다. 멤버들은 유튜브 라이브에서 “이 곡으로 위로를 받으면 좋겠고 우리 모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란다”고 소개했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차트에는 언제나 대중의 수요가 있는 감성적인 노래들이 존재한다. ‘힐링’이나 ‘위로’라는 키워드는 이런 정서를 가진 데이식스와 같은 가수를 통해 대중에게 각인된다”고 설명했다.

오프라인에서도 ‘쉼’을 향한 움직임은 활발하다. 지난해 화제 속에 열렸던 ‘수면 콘서트’는 폭신한 매트리스 위에 누운 채 음악을 들으며 잠드는 이색적인 힐링 경험을 제공한다. 요가와 명상 중심의 웰니스 페스티벌 ‘원더러스트’는 몸과 마음의 균형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원더러스트는 올해 7월 19, 20일 서울숲에서 열린다.

요가와 명상을 즐기는 이색 페스티벌 원더러스트 코리아. 사진 원더러스트 코리아

요가와 명상을 즐기는 이색 페스티벌 원더러스트 코리아. 사진 원더러스트 코리아

 
유진선 원더러스트 코리아 이사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멈춤과 회복의 시간이 절실하다고 느껴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단순한 운동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재정비하는 ‘쉼의 리추얼’(Ritual, MZ 트렌드로 떠오른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규칙적인 습관)을 만들어가자는 취지”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