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생 83%는 평생 극한폭염”…아이들이 '기후빚' 떠안는다

지난해 7월 폭염경보가 이어진 대구광역시 동대구역 광장에서 한 어린이가 뙤약볕 아래 모자챙에 손을 덧댄 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폭염경보가 이어진 대구광역시 동대구역 광장에서 한 어린이가 뙤약볕 아래 모자챙에 손을 덧댄 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사회가 현재 계획대로 온실가스를 줄이더라도 2020년에 태어난 아동 5명 중 4명이 평생 극심한 폭염을 경험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어른 세대가 유발한 기후 위기의 빚을 미래 세대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다.

12일 국제아동권리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파리기후협약 10주년을 맞아 브뤼셀자유대와 공동 연구한 보고서 ‘기후위기 속에서 태어나다2: 지금까지 없었던 삶’을 발표했다. 2015년 파리협약의 목표인 지구온난화 제한 목표(1.5도)를 달성하는 게 얼마나 많은 아동을 기후 재난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

20년생 83%, 80세 되는 2100년까지 극심한 폭염 경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각국 정부가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유지될 경우 2100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2.7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 기온은 지난해 이미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55도 오른 상태다. 

기온 상승에 따른 아동 폭염 피해 예측 시나리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기온 상승에 따른 아동 폭염 피해 예측 시나리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2020년에 태어난 1억 2000만 명의 아동 중 83%인 약 1억 명의 아동이 일생 동안 '전례 없는 수준'의 폭염을 경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후변화가 없는 세계에서 평생 경험할 확률이 1만 분의 1에 불과한 폭염에 노출될 것이란 의미다. 2020년 태어난 만 5세 아동은 2100년이면 80세가 된다. 2.7도 온난화가 이들에겐 먼 미래가 아닌 현실의 문제인 셈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지켜지지 않으면서 2100년 지구 평균기온이 3.5도 상승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2020년생 아동의 92%(1억 1100만명)이 평생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폭염에 노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의 18세 청소년이 그린 미래 기후변화 피해의 모습.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중국의 18세 청소년이 그린 미래 기후변화 피해의 모습.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극한 폭염은 저소득 국가나 지원이 부족한 지역의 아동에게 한층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연구팀은 “폭염은 아동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위협하고 식량과 깨끗한 물에 대한 접근을 막으며 학교 폐쇄를 초래해 학습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2020년생은 1960년에 태어난 조부모 세대보다 홍수·가뭄·산불 등 극한 기후로 고통받는 삶을 살 가능성이 최소 두 배 이상 높았다. 바누아투 출신의 16세 하루카는 연구팀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1년 사이 강력한 사이클론을 세 차례나 경험했다며 “해마다 사이클론이 집을 무너뜨려 천장을 고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반복하는 재난은 자연이 아닌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홍수가 발생한 인도네이아 북부 지역에서 한 아이가 물에 잠긴 도로 위에서 자전거를 끌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11월 홍수가 발생한 인도네이아 북부 지역에서 한 아이가 물에 잠긴 도로 위에서 자전거를 끌고 있다. EPA=연합뉴스

 

1.5도 억제시 3800만명 보호 “아동 중심 기후 대응해야”

다만 파리협약 목표대로 온난화를 1.5도 이내로 억제하면 아동의 기후재난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극한 폭염에 노출되는 아동 수가 6251만 명으로 줄면서 2.7도와 비교해 3800만 명이 폭염 피해를 면할 것으로 예측됐다. 또, 800만 명은 흉작, 500만 명은 홍수와 열대성 저기압(태풍·사이클론) 등 각기 다른 기후 재난의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필리핀 마닐라의 한 학교에서 아이들이 더위 속에서 선풍기에 의존한 채로 수업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필리핀 마닐라의 한 학교에서 아이들이 더위 속에서 선풍기에 의존한 채로 수업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연구팀은 기후재난으로 인한 미래 세대의 피해를 줄이려면 기온 상승 억제를 넘어선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기후 재난 대응을 위한 기후금융 확대 ▶아동 및 지역 주도의 기후적응 정책 도입 ▶아동의 기후행동 참여 보장 등을 제안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인터내셔널 CEO 잉거애싱은 “전 세계 아이들이 자신에게 책임 없는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고통받고 있다”며 “1.5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기후 대응 정책에서 아동을 중심에 둘 때만이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