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평성세(太平盛世). 바이두
송(宋)나라 풍속화가 장택단(張擇端)은 휘종(徽宗. 1082~1135)의 명을 받아, 두루마리 비단에 불후의 대작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를 그렸다. 북송(北宋) 수도였던 지금의 카이펑(開封) 외곽 청명(淸明)절 자연 풍광이 좌우로 길게 전개되는 파노라마 화폭에 빼곡히 담겨있다. 수백 명 이상의 인물들의 활력 넘치는 일상도 함께 그려져 있다. 중국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회화 작품이고, 현재 베이징 고궁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장택단(張擇端). 바이두
장택단은 산둥(山東)성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배웠고, 차츰 실력을 인정받아 도화원(圖畵院) 소속의 궁정 화가가 됐다. 마차와 배, 시장과 길, 다리, 성곽 등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그의 화풍은 세밀하고 정교한 묘사를 특징으로 하는 공필화(工筆畵)에 속한다.
장택단은 ‘청명상하도’에 중국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산점(散點) 투시법’을 사용했다. 서양화의 ‘일점(一點) 투시법’과 달리, 한 그림의 각 부분에 복수의 시점을 적용하는 원근법이다. ‘청명상하도’ 안에 묘사된 개울, 성곽, 무지개다리, 시장 등 여러 장면이 따로 독립된 페이지의 옴니버스 이야기처럼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바이두

카이펑(開封). 바이두
시대마다 여러 소장가의 손을 거쳤지만, 최근 과학이 발전해 ‘청명상하도’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최종 결론이 나왔다. 다만, 진품의 완성 시기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여전히 의견들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여기엔 북송 멸망 후, 카이펑의 화창한 봄날을 그리워하며 이 대작을 최종 완성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포함된다. 평소에는 태평성세의 소중함을 모르다가, 난세를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역사의 아이러니에 힘이 실린 입장이다.
우리가 과거 동서양 여러 문명을 떠올려보면, 부침엔 나름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대표적인 예로, 치세에 난세를 대비하는 일이 그 실행은 어렵지 않으나 묘하게 합심하여 결단하기가 쉽지 않고, 난세에 치세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치는 일은 굳이 결단하지 않아도 저절로 실행된다.
아이러니의 반복이지만, 한편으로 이 불가사의한 힘에 기대어 매번 또 한 번의 소위 ‘태평성세’가 시작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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