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귀신' 만난 영어 오페라 온다…예술의전당서 25일 초연

장인(匠人)이 천이 덮인 수레를 들춘다. 수레 속에 든 것은 물시계의 재료다. 장인은 “이건 시간을 상상하는 방식”이라며 재료 몇 개를 들어 올려 “그저 보라”고 말한다. 그 말에 평상 위에 누워있던 제자(테너 로빈 트리츌러)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일어선다.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완쪽), 테너 로빈 트리츌러가 1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창작 오페라 '더 라이징 월드(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 리허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완쪽), 테너 로빈 트리츌러가 1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창작 오페라 '더 라이징 월드(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 리허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첫선을 보이는 예술의전당 신작 오페라 ‘더 라이징 월드(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이하 물의 정령)의 첫 장면이다. 예술의전당은 13일 오후 기자들을 대상으로 연습실 리허설을 선뵀다. 5분 남짓의 첫 곡은 피아노 선율과 함께 흐르는 듯한 물시계 장인(메조소프라노 김정미)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물의 정령' 공식 포스터. '물'과 '시간'이라는 보편적 소재로 대본과 음악을 모두 예술의전당에서 자체 제작했다. 사진 예술의전당

'물의 정령' 공식 포스터. '물'과 '시간'이라는 보편적 소재로 대본과 음악을 모두 예술의전당에서 자체 제작했다. 사진 예술의전당

‘물의 정령’은 예술의전당이 자체 제작한 세계 초연 오페라다. 예술의전당은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오페라 장르를 활성화하기 위해 ‘SAC(Seoul Art Center) 오페라 갈라’(2022)를 시작으로 ‘노르마’(2023), ‘오텔로’(2024)를 소개했다”며 “이번 ‘물의 정령’도 기획의 연장”이라고 설명했다.  

전작과 달리 ‘물의 정령’은 대본부터 음악까지 모두 예술의전당이 직접 기획·제작을 했고, 예술의전당 최초의 영어 오페라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물과 관련한 기이한 일이 생기는 한 왕국을 배경으로, 병든 공주를 구하기 위해 물시계 장인이 소환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물시계’와 ‘물귀신’이라는 한국적 요소를 오페라의 중심 소재로 활용했다. 장인과 공주 역(役)에 여성 성악가를 내세워 ‘정통 스타일’이 많은 오페라 장르에 신선함을 부여했다.  


왼쪽부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소프라노 황수미. 황수미는 "악보를 받고 처음엔 '저는 못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작곡가 메리 핀스터러가 유연하게 맞춰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황수미는 물의 정령의 저주를 받은 몸으로 처음 등장해 '흐르는 음형'을 유지하며 노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예술의전당

왼쪽부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소프라노 황수미. 황수미는 "악보를 받고 처음엔 '저는 못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작곡가 메리 핀스터러가 유연하게 맞춰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황수미는 물의 정령의 저주를 받은 몸으로 처음 등장해 '흐르는 음형'을 유지하며 노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예술의전당

공주를 연기하는 황수미 소프라노는 “‘물의 정령’은 물이라는 소재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루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장인 역할의 김정미 메조소프라노는 “왕과 공주의 관계, 물시계 장인과 제자의 관계가 있다”며 “두 여성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것은 맞으나, 둘만의 이야기라기보단 과거세대에서 현재세대로 사회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작곡을 맡은 메리 핀스터러(사진).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오페라를 만들 때 언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죽은 언어'라고도 불리는 라틴어를 자주 활용하는데, 시간에 국한 받지 않는 언어라고 본다. 라틴어 기반의 영어를 사용한 이유"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어가 얼마나 아름다운 언어인지도 소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한국어가 메아리치는 느낌으로 들려오는 장면 또한 있다고 밝혔다. 뉴스1

작곡을 맡은 메리 핀스터러(사진).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오페라를 만들 때 언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죽은 언어'라고도 불리는 라틴어를 자주 활용하는데, 시간에 국한 받지 않는 언어라고 본다. 라틴어 기반의 영어를 사용한 이유"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어가 얼마나 아름다운 언어인지도 소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한국어가 메아리치는 느낌으로 들려오는 장면 또한 있다고 밝혔다. 뉴스1

음악은 호주를 대표하는 작곡가 메리 핀스터러가 맡았다. 고전 오페라의 전통 속에서도 본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곡가로, 오페라·콘서트·영화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해왔다. 그는 “이번 작품을 위해 극작가 톰 라이트와 한국의 문화를 공부했는데, 한국의 신과 귀신 이야기 속 ‘물’이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물은 극 전개에 주된 요소로 활용된다. 핀스터러는 “타악기, 워터폰 등을 통해 물을 표현하고,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도 ‘흘러가는 듯한’ 음악을 선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공연 30분 전부턴 아르떼뮤지엄과 협업해 영상작품 ‘스태리 비치(Starry Beach)’를 상영한다.

예술의전당 서고우니 공연예술본부장은 “이탈리아어나 독일어로 공연되던 장르인 오페라를 영어로 제작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라며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창작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거문고의 선율을 더하는 등 동양적 요소가 포함됐으나, 영어를 기반으로 라틴어와 한국어를 적절히 섞어 더 많은 관중에게 닿을 수 있게 했다.

13일 오전 예술의전당 음악당 인춘아트홀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엔 (왼쪽부터)지휘자 스티븐 오즈굿, 무대연출 스티븐 카르, 작곡가 메리 핀스터러, 장인역할의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공주역할의 소프라노 황수미, 제자역할의 테너 로빈 트리츌러, 왕역할의 베이스바리톤 애슐리 리치, 통역 소은정씨가 자리했다. 사진 예술의전당

13일 오전 예술의전당 음악당 인춘아트홀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엔 (왼쪽부터)지휘자 스티븐 오즈굿, 무대연출 스티븐 카르, 작곡가 메리 핀스터러, 장인역할의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공주역할의 소프라노 황수미, 제자역할의 테너 로빈 트리츌러, 왕역할의 베이스바리톤 애슐리 리치, 통역 소은정씨가 자리했다. 사진 예술의전당

예술의전당은 2027년 또는 2028년을 목표로 해외 극장에서 ‘물의 정령’ 재연을 올릴 수 있도록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만의 국립 타이중 극장,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도쿄 신 국립극장 등과 논의가 오가고 있다.  
‘물의 정령’의 연출은 예술의전당과 콘서트 오페라 ‘투란도트’(2017), ‘람메르무어의 루치아’(2020) 등을 연출한 스티븐 카르가 맡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데드맨 워킹’ 등을 지휘한 스티브 오즈굿이 지휘봉을 잡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 노이 오페라 코러스가 합창한다.

공연은 140분(인터미션 20분) 동안 펼쳐진다. 총 3회차로, 25·29·31일에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