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2월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당시 모습. 사진 강릉소방서
2022년 12월 발생한 ‘강릉 급발진 사고’와 관련한 민사소송에서 1심 재판부가 제조사 측 손을 들어준 가운데 급발진 사고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13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부장 박상준)는 강릉 급발진 사고로 인해 숨진 이도현(당시 12세)군의 가족 측이 KG모빌리티(KGM)를 상대로 제기한 9억20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도현군 가족이 지난 2년 6개월간 국내 첫 주행 재연시험, 블랙박스 음향분석 감정 등 진실 규명을 위한 여러 과정을 거쳤지만 재판부는 “운전자(할머니)가 가속페달을 제동페달로 오인해 밟았을 것으로 보여 이 사건 사고가 전자제어장치(ECU)의 결함으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지난해 5월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강릉시 강릉교회 주차장에서 실시된 '자동 긴급 제동장치'(AEB) 기능 재연시험. 연합뉴스
선고가 끝난 뒤 도현군의 아버지 이상훈씨는 즉각 항소의 뜻을 밝혔다. 유가족 측 하종선 변호사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블랙박스에 담긴 ‘철컥’ 소리가 변속 레버 움직임으로 인한 소리가 아니라는 음향 분석 결과를 포함해 여러 감정에서 나온 객관적인 데이터들을 재판부가 모두 무시했다”며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선고”라고 주장했다.
지난 40여 년간 급발진 의심 차량 운전자가 승소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지만 급발진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9일 광주 북구 각화동에서 승용차를 몰다 주차장 담벼락을 들이받은 70대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출구를 빠져나가던 중 차량이 급발진했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7월 14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를 받는 ‘시청역 역주행 참사’ 피고인 차모(69)씨 역시 지난 4월 항소심에서 급발진을 재차 주장했다. 온라인에서는 급발진 의심 사고가 수면으로 떠오를 때마다 “안타깝지만 페달 오조작이다”는 의견과 “급발진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해 7월 시청역 인근 역주행 사고 현장에 추모 꽃 등이 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급발진 방지 기술 정책 도입 더뎌
전방 1~1.5m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가속 페달을 밟더라도 차량 속도가 시속 8㎞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하는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의무화와 관련해선 국토부가 “강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페달 블랙박스 달면 보험료 할인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책이 장기적으로 의무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급발진을 증명하는 과정 자체가 운전자에겐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그렇다고 제조업체가 일일이 증명하기엔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페달 블랙박스, 긴급제동장치 등을 의무화해 운전자 과실 등을 미연에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율자동차 등 소프트웨어 기능이 고도화하는 시대에 기술적 문제를 규명하는 것보다도 예방할 수 있는 연구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