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워싱턴DC에 있는 농무부 건물에 걸려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현수막을 한 행인이 바라보고 있다. 해당 현수막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1862년 5월 15일에 설립한 농무부의 163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게시됐다. AFP=연합뉴스
그러나 중국과의 ‘관세 휴전’을 지켜본 전 세계 주요국가들 사이에선 미국과의 협상 속도를 최대한 늦추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베센트 “관세율 통보 서한 받게될 것”
베센트 장관은 이날 NBC·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선의를 가지고 협상하지 않으면 ‘이게 관세율’이라고 적은 서한을 받게될 것”이라며 “이들 국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일 발표한 상호관세율을 다시 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신들이 협상하고 싶지 않으면 관세가 4월 2일 수준으로 다시 올라간다는 것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지렛대”라고 강조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왼쪽)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중 양자 회담에서 허 리펑 중국 부총리(오른쪽)와 악수하고 있다. 미중 양국은 90일간 서로에게 부과한 관세를 대폭 낮추기로 전격합의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6일 아랍에미리트(UAE) 순방 중 “2~3주 내에 스콧 (베센트)과 하워드(러트닉 상무장관)가 미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내야할 것을 알려줄 서한을 보낼 것”이라며 순방 이후 관세 압박을 재개할 입장을 밝힌 상태다.
미국은 지난달 한국에 대한 25%의 일방적인 상호관세율을 통보했다. 만약 해당 관세를 그대로 물게될 경우 한국 상품은 90일간 30%로 낮추기로 합의한 중국 물품에 대한 관세와 사실상 차이가 없는 관세를 물고 미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처지가 된다.
주요국은 개별 협상…이외는 ‘권역별 관세’
베센트 장관은 또 “지금 당장 집중하는 것은 18개 중요한 교역 관계”라며 이미 양자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을 포함한 주요 무역 상대국과는 개별협상을 이어갈 뜻을 분명히 했다.
주요국을 제외한 국가들과에 대해선 “그냥 ‘숫자’를 제시할 작은 교역국들이 많이 있는데, 아마도 우리는 지역별 협상을 많이 하게 될 것”이라며 “이것은 중미 지역의 관세율, 이건 아프리카를 위한 관세율이라고 통보하는 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핵심 교역국 외에는 사실상 ‘권역별 관세’를 일방적으로 정해 통보하게 될 거란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한 모습. 그는 이 자리에서 "관세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베센트 장관의 관세통보 '서한'을 받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베센트 장관은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해 “우리가 다른 나라들에게 너무 많은 확실성을 제공하면 그들은 협상에서 우리를 가지고 놀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에서 사용하는 것이 이러한 ‘전략적 불확실성’의 전술”이라고 주장했다.
中에 ‘판정패’한 미국…“지연 전략 확산”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미·중 관세 휴전이 무역 협상국들에게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확신을 주고 있다”며 “강경하게 대응한 중국이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낸 것을 지켜본 국가들이 신속한 협상이 올바른 길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특히 경제 규모가 큰 국가들을 중심으로 스스로 더 많은 협상 카드를 지녔고, 협상 속도를 늦출 여유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 DC의 헤리티지 재단에 걸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현수막 옆에 있는 한 주유소에 걸린 유가 간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집권한 이후 많은 주에서 유가가 갤런당 2달러 아래로 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가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100% 없애려고 한다”고 주장했지만, 인도 외무장관은 “그러한 판단은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일본의 아카자와 료세이(赤澤亮正) 경제재생상이 당초 6월 합의를 언급했지만, 일본 언론들은 미·중 관세 합의 이후 “참의원 선거를 앞둔 7월에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블룸버그는 “미·중 합의는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로 인한 미국 내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각국에 보여준 것”이라며 “(관세로 인한)미국의 경제적 고통이 더 즉각적이고 광범위하다는 것을 트럼프 행정부가 인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치’는 부정…인플레 부담은 업체 전가
트럼프 행정부는 수치로도 나타는 미국의 경제적 부담을 무시하고 있다. 무디스는 최근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에서 한 단계 강등했지만, 베센트 장관은 이날 “나는 무디스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무디스뿐만 아니라 S&P는 2011년, 피치는 2023년 이미 5경원이 넘는 미국 정부의 부채 규모 등을 이유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춘 상태다.

월마트에 진열된 장난감.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의 여파와 관련 "아이들이 인형 30개 대신 2개만 있어도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월마트는 이달 말부터 관세를 반영해 제품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월마트가 관세를 반영해 이달 말부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히자, 가격 인상을 철회하라고 경고했다. 그는 17일 소셜미디어에 “월마트는 체인 전반에 걸친 가격 인상 이유로 관세를 탓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며 “관세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길을 택하지 말고 주요 수입처인 중국과의 협의로 관세를 ‘흡수’하라”고 했다. 인상된 관세만큼 이익을 줄여 팔라는 압박이다.
도덕성엔 무감각…“뉴스 모를수록 트럼프 지지”
베센트 장관은 또 카타르로부터 선물 받은 4억 달러(5589억원)짜리 제트기 관련 논란에 대해선 “카타르가 대가를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프랑스는 자유의 여신상을 줬고, 영국은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을 줬지만, 그들이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잘 모르지 않느냐”고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제트기 선물에 대해 “골프에서 ‘오케이(컨시드)’를 받지 않는 것이 멍청한 것”이라며 말하며 도덕성 논란을 자초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애틀랜타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연장 근무에 대한 세금 철폐'를 공약하며 춤을 추고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뉴욕타임스(NYT)가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뉴스를 잘 접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수로 합법 이민자를 추방한 ‘킬마 아르만도 아브레고 가르시아 사건’을 아는 사람들의 이민 정책 찬성율은 46%에 그쳤지만, 해당 사건을 모르는 사람들의 찬성율은 55%에 달했다. 집회에 참석했다가 구금된 컬럼비아대 ‘마흐무드 칼릴 사건’의 경우도 사건을 아는 사람들의 이민 정책 지지율은 40%인 반면, 모르는 사람들은 54%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다. 관세 정책 이후 주가가 폭락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의 경제 정책 지지율은 41%에 그친 반면, 주가 상황을 모르는 이들의 55%는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