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에 새 디딤돌? '장거리' 강조하는 EREV 수요증가에 주목

폭스바겐이 상하이모터쇼에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 콘셉트카 ID. ERA를 공개했다. 사진 폭스바겐

폭스바겐이 상하이모터쇼에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 콘셉트카 ID. ERA를 공개했다. 사진 폭스바겐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속에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가 주목받고 있다. 하이브리드처럼 내연차와 전기차 사이 징검다리에 해당하지만, 엔진 개입을 최소화하고 충전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다. 중국과 북미에서 인기가 높아지면서, 완성차 업체들도 EREV 차량 출시 경쟁에 나섰다. 

EREV는 간단히 표현하면 ‘소형 엔진 발전기를 단 전기차’다. 전기차처럼 모터로 달리지만, 배터리가 부족하면 소형 엔진이 발전기 역할을 해 배터리를 충전해 주행한다. 하이브리드차는 주행 시 엔진과 배터리를 오가며 바퀴를 굴린다면, EREV는 주행 시 엔진의 개입이 극히 제한적이거나 아예 없다. 김덕진 한국자동차연구원 하이브리드연구부문 부문장은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사이를 연결할 기술을 꼽는다면 좀 더 하이브리드에 가까운 쪽이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전기차에 가까운 쪽이 EREV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북미 소비자 요구에 EREV 생산↑

이달 초까지 열린 ‘상하이모터쇼’는 향상된 EREV 기술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 폭스바겐은 모터쇼에서 중국을 겨냥한 EREV 차량 ID.ERA(에라)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상하이자동차(SAIC)와 협력해 만드는 대형 SUV인데, 폭스바겐 최초의 EREV 모델이다. 배터리 모드로 300㎞를 달릴 수 있고, 엔진이 주행 중 배터리를 충전해 700㎞ 이상 추가 주행거리를 제공한다.

상하이모터쇼에 전시된 리오토(Li) L7. AFP=연합뉴스

상하이모터쇼에 전시된 리오토(Li) L7. AFP=연합뉴스

EREV 기술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건 중국 자동차 회사들이다. 중국의 리오토는 EREV를 전문적으로 생산한다. 2019년 첫차인 리오토 원을 시작으로 리오토 L9까지 다양한 크기의 EREV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선보였다. 이 회사는 지난해 49만3000대의 고급 SUV를 판매했다. 지난달 열린 서울모빌리티쇼에는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의 고급 브랜드 ‘양왕’의 프리미엄 SUV U8이 전시됐는데, 이 차도 EREV 차량이었다.

로이터가 중국승용차연합회(CPCA) 자료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순수 전기차보다 EREV 차량 판매 성장세가 더 빨랐다. 순수 전기차 판매량(630만대)은 전년 대비 23% 증가했지만, EREV 판매량(120만대)은 79% 늘었다. 


충전 인프라 부족한 유럽으로도 확장 가능성

중국 전기차 기업 리프모터는 유럽에 EREV 모델을 출시했다. AP=연합뉴스

중국 전기차 기업 리프모터는 유럽에 EREV 모델을 출시했다. AP=연합뉴스

중국과 북미에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유럽 등 다른 시장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고, 배출가스 규제가 강한 유럽에서 순수 전기차보다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현구 코트라 프랑크푸르트 무역관은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유럽 국가들은 2035년까지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를 추진 중인데, EREV는 순수 내연기관으로 분류되지 않을 수 있어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그룹도 지난해 EREV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내년 말부터는 중국과 북미에서 EREV 차량 양산을 시작해 2027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할 계획이다. 북미 시장에서는 현대와 제네시스의 중형 SUV 차종을 투입해 연간 8만 대 이상을 판매 목표로 세웠다. 싼타페나 제네시스 GV70이 EREV로 출시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준중형 EREV를 출시해 연간 3만대 이상 판매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