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미래' 트럼프에…요지부동 푸틴 "근본 원인 제거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2시간여 우크라이나 종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직접 통화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진행한 전사한 법 집행관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이날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2시간여 통화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진행한 전사한 법 집행관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이날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2시간여 통화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직후 전후 복구 사업과 무역 확대 등의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며 “대화가 매우 잘 됐다”고 주장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전쟁의 책임이 우크라이나와 서방에 있다는 기존 입장만을 반복했다.

“대화의 정신이 훌륭”…뚜렷한 성과 없어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대화의 톤과 정신이 훌륭했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휴전과, 더 중요한 전쟁 종식을 향한 협상을 즉시 시작할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이 재앙적 대학살이 끝나면 미국과 대규모 무역을 하고 싶어하고 나도 동의한다”며 “러시아에는 막대한 일자리와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있고, 잠재력은 무한하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국가 재건 과정에서 무역의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며 전후 사업에 대한 청사진까지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백악관에서 진행된 법집행 담당자들의 희생을 기리는 행사에서도 “그(푸틴)에게 이 일(전쟁)을 그만해야 할 때라고 했고, 그가 전쟁을 멈추길 원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해선 “강한 남자”라며 “그 역시 전쟁을 끝내길 원한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푸틴을 만날 때까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이 나서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장담했던 것과 달리 이날 회담에선 이렇다 할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러·우가 협상해야”…교황에 떠넘기기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통화 결과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해 유럽연합(EU),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핀란드 등의 정상에게 직접 통화해 설명했다며 성과를 내세웠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통화와 관련한 언론 브리핑 도중 눈을 감고 있다. AF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통화와 관련한 언론 브리핑 도중 눈을 감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러면서도 그는 “그것(종전)을 위한 조건은 두 나라 사이에서 협상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두 나라의 회담과 관련해서도 “교황 레오 14세가 바티칸에서 회담을 주재하겠다고 제안했다”며 자신은 한 걸음 물러서겠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자들에게 ‘푸틴 대통령에게 만남을 제안했느냐’는 질문을 받자 오히려 “무엇에 관해?”라고 반문했다. 재차 ‘우크라이나에 관한 만남’이라고 묻자 “물론 (만나자고) 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중재 노력을 위한)어떤 선(線·레드라인)은 있다”며 “무언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물러설 것이고, 그들은 계속 (전쟁을)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 당당해진 푸틴…“근본 원인 제거해야”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후 자국 기자들과 만나 “우크라이나에 평화협정의 윤곽을 그리는 각서를 제안하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했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위기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외곽 시리우스 과학 예술 공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와 관련한 언급을 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외곽 시리우스 과학 예술 공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와 관련한 언급을 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추진 등으로 서방이 자국의 세력권을 위협한 것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해 왔다.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이러한 기존 입장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크렘린궁은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로 내세운 각서에 대해서도 “기한은 없다”며 우크라이나와의 대화를 서두를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며 “이날 통화는 매우 희망적인 대화였다”고 했다.

러시아 매체들은 이날 통화에서 서로를 ‘블라디미르’, ‘도널드’ 등으로 칭했다고 강조하며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11번째 손주 탄생을 축하했고, 두 사람은 대화를 끝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날 대화가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렀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멋진 신사’라고 칭하며 “푸틴이 ‘러시아는 당신의 아내(멜라니아)를 매우 존중하고, 어쩌면 당신(트럼프)보다 멜라니아를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며 푸틴이 자신의 배우자와 가족에 대해 칭찬한 대목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배우자인 멜라니아 여사가 19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테이크 잇 다운 법안' 서명식에서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배우자인 멜라니아 여사가 19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테이크 잇 다운 법안' 서명식에서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휴전 요구에 오히려 멀어져”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매체들은 이날 통화에 대해 일제히 혹평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휴전 요구에서 멀어졌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직접 대화를 강조한 것은 즉각적 휴전을 거부해 온 푸틴 대통령을 사실상 지지한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이날 통화로 오히려 러시아가 무조건 휴전을 거부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을 만큼의 진전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고 했고, CNN은 “푸틴 대통령은 자신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케네디 센터 이사회 만찬을 주최하며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케네디 센터 이사회 만찬을 주최하며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텔레그래프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평화 계획을 포기했다”며 “왜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보다는 러시아와의 무역 기회에 더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비판했다.

실제 우새코프 크렘린궁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를 미국의 가장 중요한 무역 및 경제 파트너 중 하나로 보고 있다”며 “그는 자신을 (대러) 제재의 지지자가 아닌 일종의 합의의 지지자라고 말했다”고 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