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미쉐린, 가격은 전통시장…반전 가득한 미식의 고장

10년째 신혼여행〈25〉 스페인 빌바오

빌바오 뒷산 아르찬다(Artxanda)에서 본 구겐하임 미술관. ‘도시재생의 성공 모델’로 유명한 건축이다.

빌바오 뒷산 아르찬다(Artxanda)에서 본 구겐하임 미술관. ‘도시재생의 성공 모델’로 유명한 건축이다.

빌바오에서 2017년 7월 한 달을 머물렀다. 빌바오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중심지이자 예술과 미식으로 고장으로 통한다. 스페인에서는 정수리 태울 듯 작렬하는 땡볕이 무서워 늘 태양을 피해 다녔다. 빌바오는 달랐다. 이글거리는 태양 대신 대서양에서 붙어오는 감미로운 바람이 한여름의 더위를 부드럽게 밀어냈다.  

아내의 여행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아리구나가 해변. 푸른 잔디밭이 깔려 있어 낮잠을 자거나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아리구나가 해변. 푸른 잔디밭이 깔려 있어 낮잠을 자거나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바다는 바르셀로나에서 실컷 봤다고 생각했다. 지중해를 뒤로하고 빌바오로 떠나올 땐 그래서 아쉬울 게 없었다. 스페인 남부지방의 뜨거운 태양과 더위를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빌바오에 도착해서 보니 가죽 재킷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빌바오는 여름철 평균 기온이 25도 수준에 머물렀다. 그 뜨거운 태양도 빌바오의 대지까지는 달구지 못했다. 

숙소는 중세풍의 구도심 ‘카스코 비에호’에 잡았다.  “찬란한 중세의 거리가 내 집 앞에 바로 펼쳐져 있잖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마음으로 한 달을 보냈다. 족히 500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만질만질한 돌길과 나지막하고 아담한 상점들에서 고풍스러운 매력이 느껴졌다.

옛 모습을 간직한 구도심 ‘카스코 비에호’. 산티아고 순례길 중 북쪽길 루트가 이곳을 지난다.

옛 모습을 간직한 구도심 ‘카스코 비에호’. 산티아고 순례길 중 북쪽길 루트가 이곳을 지난다.

매일 첫 끼니는 ‘바르 빌바오’라는 식당에서 시작했다. 동네 토박이 집주인에게 추천받은 이 식당은, 맛은 미쉐린 스타급인데 가격은 시장 음식처럼 쌌다.  


우리는 매일같이 이곳에서 스페인의 명물 ‘핀초스’를 먹었다. 스페인 최고의 미식 도시를 여행하는 우리만의 의식이었달까. 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빌바오 사람을 그렇게라도 따라 해보고 싶었다.  

핀초스는 조그만 빵 위에 여러 재료를 올려 꼬치로 고정한 간식이다. ‘pinchos’가 우리말로 ‘꼬챙이’라는 뜻이다. 목동이나 공장 노동자처럼 더러운 손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설도 있고, 병 속에 든 올리브·안초비·피망을 한 데 꽂아 제공한 데서 비롯했다는 설도 있다.

1911년 문을 연 바르 빌바오는 이 도시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식당이자 사교의 장이다.

1911년 문을 연 바르 빌바오는 이 도시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식당이자 사교의 장이다.

아침을 해결하고 나면 종민과 나는 대서양의 해변을 도장 깨기를 하듯 찾아다녔다. 빌바오 외곽의 아리구나가 해변이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장소다. 웅장한 절벽이 검은 모래 해변 주변을 감싸고 있는 장소다. 해변 위쪽의 잔디밭, 잔디밭 옆의 너른 공원, 공원 옆의 기세등등한 절벽 등 주변의 모든 풍경이 시간이 멈춘 듯 아름다웠다.   

지중해의 모래사장이 고요한 엽서 같다면, 대서양의 바다는 성탄절 입체 카드처럼 다채로운 매력이 컸다. 대서양이 내다보이는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누우면 이내 솔솔 잠이 밀려왔다. 스페인에서 가장 평온했던 추억이다.  
김은덕 think-things@naver.com

남편의 여행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촬영지로 유명한 ‘산 후안 데 가스텔루가체’. 절벽 위에 10세 기 경에 지어진 작은 예배당이 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촬영지로 유명한 ‘산 후안 데 가스텔루가체’. 절벽 위에 10세 기 경에 지어진 작은 예배당이 있다.

빌바오 사람은 하나같이 표정이 심각했다.  세비야와 바르셀로나에서 만났던 스페인 사람의 활기찬 분위기가 이 땅엔 없었다. 바르셀로나 친구가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빌바오 사람은 좀처럼 웃질 않는데…, 너무 상처받지 마.”

빌바오 사람은 예부터 억척스러운 삶을 살았다. 빌바오는 산지 비율이 80%에 이르는 도시다. 당연히 드넓은 평야는 꿈꿀 수 없다. 비도 잦아서, 연평균 170일가량을 우산을 쓰고 다녀야 한다. 그래서인지 해가 쨍한 날에는 대책 없이 웃고 노는 사람보다, 땡볕에 나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무심한 듯 근면 성실한 그들을 볼 때마다 왠지 한국 사람과 닮은 구석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뜻밖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낯선 아저씨는 “버스가 오려면 한참 멀었다”며 우리를 단골 식당으로 데려갔다. 그는 주인장에게 “애들한테 맛있는 거 만들어줘”라는 당부만 남기고, 정작 우리에겐 말도 없이 사라졌다. 빌바오에서는 모든 일이 이렇게, 뜻밖의 친절과 여운을 남기며 흘러갔다. 그들은 늘 무언가 빼앗을 사람처럼 다가와 정을 한 바구니 담아주고 가는 반전 매력을 보여줬다.

구겐하임 미술관 앞을 제프 쿤스가 꽃으로 만든 강아지인 ‘퍼피(Puppy)’가 지키고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 앞을 제프 쿤스가 꽃으로 만든 강아지인 ‘퍼피(Puppy)’가 지키고 있다.

오늘날 빌바오는 ‘도시재생의 성공 모델’로 통한다. 1980년대 빌바오는 청년 실업률이 50%에 육박했다. 쇠퇴하던 빌바오는 90년대 문화산업으로 도시를 부활시키는 작업을 활발히 벌였다. 폐공장을 예술 공간으로 변모시키고, 썩어가는 강에 공원을 지었다.  

‘빌바오 효과’라는 말이 있다. 하나의 랜드마크 건축이 도시 전체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티타늄 소재의 외장재가 찬란하게 빛나는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연간 1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현대 건축의 걸작을 만나기 위해 빌바오를 찾는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술이 도시를 바꾸고, 시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기적이 계속되고 있다.
백종민 alejandrobaek@gmail.com

빌바오는 조용하고 진중하지만 정이 깊은 사람들이 산다.

빌바오는 조용하고 진중하지만 정이 깊은 사람들이 산다.

빌바오 한 달 살기
비행시간 : 16시간 이상(바르셀로나에서 국내선 항공편으로 갈아타길 권장)
날씨 : 5~10월 추천
언어 : 스페인어와 바스크어
물가 : 대체로 서울과 비슷하나 교통·외식비는 더 비싸다 
숙소 : 700달러 이상(방 한 칸)
부부 여행작가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작가 부부이자 유튜버 부부.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고, 그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흔여섯 번의 한 달 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지은 책으로 『사랑한다면 왜』 『없어도 괜찮아』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 등이 있다. 현재 미니멀 라이프 유튜브 ‘띵끄띵스’를 운영하며 ‘사지 않고 비우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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