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 쏜 '호텔경제론' 논란…진보 학자도 "현실성 없는 우화"

SNS에서 퍼지고 있는 호텔경제론 패러디.

SNS에서 퍼지고 있는 호텔경제론 패러디.

‘한 여행객이 호텔에 예약금 10만원을 낸다. 이 돈이 호텔을 시작으로 가구점·치킨집·문방구를 돌고 돌아 호텔에게 돌아온다. 여행객은 예약을 취소하고 호텔 주인은 문구점에 받은 10만 원을 환불해준다. 실제 늘어난 돈은 없지만 돈이 돌았고 그 과정에서 경제가 활성화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경제 순환을 설명며 제시한 이른바 ‘호텔경제론’을 두고 온라인상에서는 각종 패러디가 쏟아지고 있다. 최근 내한 공연이 취소된 미국 힙합 가수 카녜이 웨스트(Ye)와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노쇼’ 사건 등을 빗대어, 호텔경제론이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는 점을 풍자한 내용이다.

이 후보가 "극단적인 예시에 불과하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비판이 계속되자 이번에는 경제 전문가 그룹이 직접 해명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재명의 경제 브레인’으로 꼽히는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21일 자신의 SNS에 "‘호텔경제론’은 돈이 잘 돌게 해서, 새로 '돈풀기'를 하지 않고도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어떤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고, 케인스가 1936년 대공황 극복을 위해 제시한 단순화된 재정 효과 예시들처럼 경제원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한 예시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후보는 결국 돈의 순환이 케인스가 언급한 '승수효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인프라 투자등 초기지출이 발생하면 그 지출이 수입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소비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누군가의 소득이 되어 경제 전반에 파급 효과를 일으켜 초기 지출보다 더 큰 규모의 총소득 증가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하 교수는 “경제가 깊은 불황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가 땅에 구멍들을 파는 정책을 편다. 혹은 병 안에 돈을 집어넣은 뒤 폐광에 묻고 쓰레기로 덮은 후 민간기업들이 이 돈을 다시 꺼내도록 하는 정책을 쓴다”면서 “극단적인 예를 통해 케인스는 이런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정책이라도, 확장적 재정정책이 총수요 부족에 따른 경제침체의 경우에는 경기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웅변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큰 '노쇼(No-show)' 부분에 대해서 하 교수는 "돈을 푸는 효과와 돈의 순환 효과 중 후자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며 "현실 정책에서 찾아보면 소상공인이 어려울 때 정책 대출을 해주지 않나. 나중에 돈을 갚더라도 경제가 어려울 때 정책 대출이 소비나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경제학계에서는 이 모델이 실제 정책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크고, 다양한 부작용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①10만원 받으면 10만원 쓴다?  

먼저 호텔 경제론 모델은 참여자 모두가 10만을 벌면 10만원을 쓰는 한계소비성향이 1인 경우를 가정하고 있다. 한계소비성향은 새로운 수입 중 소비하는 비율을 뜻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현실적으로 한계소비성향이 1인 경우는 없다고 지적한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수입이 생기면 일부는 저축하고, 일부는 빚을 갚고, 나머지 일부를 소비에 쓰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진보 성향 경제학자는 “돈을 빌려서라도 일단 쓰기 시작하면 순환 과정에서 추가 지출이 발생한다는, 이른바 ‘지출의 중요성’을 강조한 모델로 보인다”고 평가하면서도, “하지만 현실에서 한계소비성향이 1인 경우는 없다. 한계소비성향이 아니더라도 10만 원을 지역화폐나 상품권으로 지급하더라도 이는 원래 쓰려던 돈을 대체하는, 실제로는 추가 소비가 발생하지 않아 효과가 없는 등 현실의 여러 측면을 간과한 일종의 우화 같은 모델”이라고 지적했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특히 가계부채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소비가 아니라 빚을 갚는 걸로 끝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②생산이 없다

케인즈의 ‘승수’ 모델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생산’이 빠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A가 B에게 돈을 주고, B가 다시 C에게 돈을 준다고 해서 경제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생산이 이뤄져야 비로소 성장이 가능하다”며 “케인즈의 승수효과란, 정부가 도로나 항만 건설에 100만 원을 투입하면 기업이 사람을 고용하고, 임금을 받은 사람들이 소비를 늘리며, 그에 따라 기업이 새로운 물건을 생산하는 방식이 성장의 구조다. 반면 호텔에서 노쇼가 발생했는데도 돈이 돌았다는 해당 모델은 애초에 케인스식 논리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③호텔 사장님은 피해자? 부작용은 고려 안해.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구조지만, 실제로는 ‘노쇼’로 인한 피해자와 그에 따른 부작용이 감춰져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설령 해당 모델이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노쇼를 당한 호텔 사장은 원래 받아야 했던 손님을 놓쳤을 수 있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이미 인력과 자원을 투입한 상황(기회비용 발생)이기 때문에 마이너스를 본 피해자”라고 지적했다.

현실에서는 ‘호텔 마을’에 속한 일부 주체들만 혜택을 보고, 마을 바깥의 이들은 오히려 부작용을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윤수 교수는 “초기 지출을 정부의 재정 투입으로 해석하면, 결국 그 재원을 바깥 사람들이 세금으로 부담하게 된다”며 “혜택을 받는 주체와 부담을 지는 주체가 다를 뿐 아니라, 한국처럼 재정을 빚, 즉 국채를 통해 조달하는 구조에서는 현재 효과가 불확실한 정책으로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허준영 교수는 "경기도나 성남 같은 한 지역을 운영할 때는 괜찮지만, 대한민국 전체를 운영할 때는 정책의 현실적인 부작용 등을 고려하며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다만 일부 진보경제학자들은 어빙 피셔 예일대 교수가 1933년 소개한 ‘스탬프 스크립(지역화폐)’와 유사하다고도 주장한다. 지역 내에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증서(스크립)을 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낮아지는 식이라 빠른 소비를 유도한다. 결국 이 후보의 호텔경제론은 지역화폐 등 정부 재정으로 국민 소비가 활성화되면 상권에 활력이 발생한다는 취지의 설명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