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 예술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지드래곤’ 사진 KAIST 아트앤테크놀로지 센터

4월 9일, 송출 현장에 참석한 이진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오)와 가수 지드래곤(가운데). 사진 KAIST 아트앤테크놀로지 센터
이 프로젝트는 누가 왜 만든 걸까요. 주인공은 미디어 아티스트인 이진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여러 전문가 협업해 세계 최초 예술·과학 융합형 송출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1984년 백남준 작가의 전설적인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정신을 계승해 ‘굿모닝 미스터 지드래곤’을 발표한 거죠. 인공위성을 통해 지구 곳곳 방송을 내보낸 백남준과 달리 이번에는 우주로 시선을 돌려 발상의 전환을 이뤄냈습니다. 이 교수는 융합 분야의 전문가로 통하는데요. 비크닉이 만나 이번 프로젝트 이야기와 AI 시대의 방향성을 물었습니다.
첨단 기술과 예술의 결합, 본질은 인간의 ‘상상력’

이진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사진 진준리 스튜디오
‘굿모닝 미스터 지드래곤’은 어떻게 기획된 프로젝트인가요.
기획을 구상하던 때가 올해 초였는데,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전 세계가 떠들썩했고 국내는 탄핵 이슈로 혼란스러웠죠. 사람들이 편을 가르고, 열띠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말한 ‘페일 블루 닷(Pale Blue Dot·창백한 푸른 점, 보이저 1호가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를 뜻함)’이 떠올랐어요. 저 멀리 우주에서 보면 우리는 먼지 같은 존재거든요. 찰나의 인생에서 과연 중요한 게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고 싶었죠. 마침 지드래곤이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초빙교수로 부임하면서 ‘엔터 테크’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자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와 함께라면 좋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드래곤의 홍채 이미지를 이용한 AI 아트 이미지(왼). 실제 구조물에 빛과 영상을 투사하여 시각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프로젝션 매핑 기술로 안테나에 송출했다.(오) 사진 KAIST 아트앤테크놀로지 센터
송출 당시 우주 안테나에 홍채 이미지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왜 ‘눈’이었나요.
인간의 홍채에는 많은 생체 정보가 담겨 있어요. 제가 맡은 TX LAB(Total eXperience LAB)은 기술과 예술을 융합한 총체적 경험을 연구하는 조직인데, 주로 인간의 생체 신호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와 작품 활동을 해요.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지드래곤의 홍채 이미지 데이터를 여러 AI 기술로 증강 및 생성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안테나에 빛과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션 매핑’을 입혔고, 송출 현장에서는 지드래곤의 목소리와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소리를 AI로 재해석한 사운드아트가 동시에 흘러나왔습니다.
종소리를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지금은 타종을 못 하니까 국립경주박물관의 녹음 자료로 들을 수밖에 없는 귀한 소리인데요. 우연히 이 소리를 녹음하신 분의 스튜디오에서 듣고, 말 그대로 영혼이 깨어나는 느낌이었어요. 신라 시대부터 현재까지 시공간을 초월하는 ‘천 년의 울림’이죠. 이번 프로젝트 역시 내면의 공간과 우주의 공간을 연결하는 ‘초월’의 개념이 있거든요.

‘굿모닝 미스터 지드래곤’은 카이스트 우주연구원, TX LAB, 갤럭시코퍼레이션, 아마스튜디오와의 공동 협업을 통해 완성된 세계 최초의 예술·과학 융합형 우주 송출 실험이다. 사진 KAIST 아트앤테크놀로지 센터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했는데, 애로사항은 없었나요.
카이스트 우주센터에서 그 큰 위성 장비를 움직이게 한다는 게 가장 큰 이슈였죠. 연구원들이 안 해본 걸 시도한다는 점에서 재미있어하고 이해해 주셨어요. 기술적으로 워낙 전문가들이셔서 데이터를 송출하는 건 큰 어려움이 없었죠. 총장님도 적극 지지해 주셨고요. 그런데 송출 전날, 리허설로 실제 안테나를 움직여보니 생각보다 기계음이 크게 나더라고요. 그날 바로 연구실에 가서 밤새 그 소리에 맞춰 음악을 다시 만들었어요. 아찔한 순간이었죠.
AI·생체정보·우주위성기술 등 첨단 기술로 주목받은 프로젝트지만, 인간의 감정과 상상력을 강조합니다.
미디어아트가 기술 시연회처럼 되어서는 안 돼요. 예술가들은 기술 자체가 아닌, 기술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거잖아요. 그리고 정말 좋은 기술은, 좋을수록 눈에 잘 안 보이는 법이거든요. 지금은 AI가 만든 알고리즘 속에 갇혀 있는 ‘감독의 시대’라고 생각해요. 알고리즘이 개인을 규정하고 구조화된 시스템이 차별과 혐오, 분열과 논란을 방치하고 있죠. 여기에서 빠져나오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거나 다른 차원으로 깨부수고 나올 장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상상의 범위를 우주 혹은 천 년 이상의 시간 차원으로 돌려보고자 했던 거고 저는 그것이 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AI를 ‘동시대의 물감’으로 삼아야

이진준, 방황하는 태양(Wandering Sun), 2024.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게임 엔진, NASA 지구 관측 데이터, 2.4m x 57.6m, 2.6pt, 4분 15초. 사진 이진준
예술의 어떤 점에 매료됐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궁금하면 끝까지 파보는 성격이거든요. 직장도 좋았지만, 창의적이거나 실용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어요. 그렇게 학교에 돌아갔고,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왔더니 결국 예술의 본질은 사유와 철학이더군요.
영국왕립예술학회 종신석학회원이 됐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요.
박사를 받고 FRSA가 됐을 때 누군가는 ‘우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때 비로소 자유로워졌어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서구 관점에서 만들어진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 기술 철학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연대하며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특히 미디어아트는 동서양에서 역사상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분야예요. 요즘처럼 AI가 폭발적으로 성장할수록 더 탐구해 볼 것이 많으니 흥미진진하죠. 우리는 이런 기술을 ‘동시대의 물감’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진준, 해피 뉴 이어 - 온 에어 가든 시리즈(Happy New Year - On Air Garden Series), 2024.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프로젝터, EEG 장치, 공명 스피커, 시스템 컴퓨터, 4분. 스틸 이미지
가끔 변화가 너무 빨라 두렵기도 합니다. 어떻게 AI와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챗 GPT의 등장으로 뭔가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고 느껴지지만, 이미 30여년 전부터 알고리즘 같은 규칙 기반 시스템이 작용하는 생성예술이 탄생했고 AI의 개념 역시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어요. 메타버스 역시 이전부터 엑스버스라는 개념으로 존재했고, 지금도 현실과 가상이 결합한 공간으로 유효하게 작동하죠. 한국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속도를 맞출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앞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앞서 말한 TX LAB은 예술·디자인 분야의 크리에이터, 기술 기반의 테크니션, 인문학·사회학·심리학 연구원까지 총 세 파트가 결합한 조직으로 다양한 창작물을 만들어요. 여러 프로젝트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데이터, 그중에서도 생체 신호에 집중하고 있는데요. 인간의 뇌파를 이용한 영화를 만들었고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대 상영 예정입니다. 이밖에 AI를 활용한 영화 시나리오 작업, 동화책, 미디어 퍼포먼스, 내년 태국 개인전 등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