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한다더니 이번엔 軍 훈련…대선 앞두고 또 서해 찔러보는 中

한국과 중국의 해양 경계가 획정되지 않은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중국이 항행금지 구역을 설정하고 군사훈련을 예고한 데 대해 외교부가 외교 경로를 통해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이 어업용이라고 주장하며 PMZ에 무단으로 구조물을 설치한 데 이어 서해에서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한 '회색지대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2018년 설치한 선란 1호.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

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2018년 설치한 선란 1호.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

"항행 자유 제한하면 문제 소지" 

24일 외교부는 "중국 측이 PMZ에서 항행금지 구역을 설정해 항행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건 문제의 소지가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우려를 외교채널을 통해 중국 측에 전달했다"며 "이번 중국 측 조치가 국제해양법에 부합하는지와 우리의 대응 방안에 대해 국방부 등 관계부처와 긴밀한 협의 하에 대응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중국 해상안전총국(MSA) 산하 장쑤(江蘇)성 롄윈강시 지역지부는 지난 22일 오전 8시부터 오는 27일 오전 8시까지 PMZ에 3개의 항행금지구역을 발표했다. 3개 구역은 대부분 PMZ 안에 위치했고 이중 2개는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과도 겹친다.

미국 뉴스위크가 21일(현지시간) 공개한 중국이 설정한 3개의 항행금지구역. 대부분 PMZ 안에 있으며 일부는 한국의 EEZ와 겹친다. 뉴스위크 웹페이지 캡처

미국 뉴스위크가 21일(현지시간) 공개한 중국이 설정한 3개의 항행금지구역. 대부분 PMZ 안에 있으며 일부는 한국의 EEZ와 겹친다. 뉴스위크 웹페이지 캡처

 
합참에 따르면 PMZ는 한·중 어느 쪽의 영해도 아닌 공해이기 때문에 공지 후 훈련을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구체적인 시기를 밝힐 수는 없지만, 한국 군도 PMZ 안에서 훈련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다만 이를 진행하는 과정을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중국은 이번 항행금지구역 설정과 관련해 한국 정부와 사전 소통 없이 자국 해사안전총국 공지만으로 통보했고, 이 사실은 미국 언론 뉴스위크 보도를 통해 처음 공개됐기 때문이다. 


항행금지구역 설정 자체는 양국 간 통보 의무가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이 서해 구조물을 무단 설치해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또다시 일방적 조치를 취해 갈등의 소지를 낳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불과 약 한 달 전 한·중 해양협력대화(지난달 23일)에서 중국은 "서해 문제가 양국 관계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각급에서 소통하자"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반격 가능한 사안 골라 도발 

최근 중국이 서해 PMZ에서 한국에 ‘되치기’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소재를 골라 도발에 나선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도 똑같지 않으냐”는 적반하장식 대응 논리를 염두에 둔 선택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23일 한·중 해양협력대화에서 한국이 중국 민간업체가 설치한 구조물을 PMZ 밖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하자, 중국이 되려 PMZ 밖에 있는 한국의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문제삼은 게 대표적이다. 당시 대화 직후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이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관련) 활동 확대는 (한국이) 자제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3일 서울 시내 호텔에서 제3차 해양협력대화가 열리고 있다. 당시 대화에선 한·중 양국의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이 겹치는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 중국이 일방적으로 설치한 구조물 문제를 주로 논의했다. 외교부

지난달 23일 서울 시내 호텔에서 제3차 해양협력대화가 열리고 있다. 당시 대화에선 한·중 양국의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이 겹치는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 중국이 일방적으로 설치한 구조물 문제를 주로 논의했다. 외교부

 
실제 한국의 유감 표명에 중국은 “한국도 PMZ 안에서 훈련하지 않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중국의 구조물 설치 등에 한국 내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알면서도 군사훈련을 진행하려는 건 이런 식으로 잠정조치수역 내 활동의 명분을 쌓으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중국이 구조물 설치와 항행금지구역 설정 등 일방적 조치를 반복하며 반응을 떠보는 건 의도적인 살라미 전술”이라며 “자신들이 주장하는 서해 경계선인 동경 124도선을 기준으로 서해 70%를 내해화하려는 전략의 일환일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북방한계선(NLL) 문제, 한·미 연합훈련과도 맞물린 안보 사안으로 한국이 유화적으로 대응할 시 중국의 추가 행동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대선 국면 노려 '떠보기' 도발 

중국이 권한대행 체제에서 과감한 대응은 쉽지 않은 한국의 상황을 노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이 과도기 한국 정부의 정치적 불안정을 노려 회색지대 도발에 나섰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며 “PMZ에서 어떤 일방적 행위도 용납할 수 없으며 비례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PMZ 내 중국의 일방 행위에 대한 실질적 대응을 대선 이후로 미루는 분위기다. 정부 소식통은 “PMZ 안의 중국 구조물 철거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예산 등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제 대응 시점과 방식은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비례 조치로는 근해에 해양과학기지를 설치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정부는 중국이 앞서 제안한 현장 조사의 실익도 따져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