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폴란드처럼 잘 살고 싶다" 러에 발목 잡힌 우크라의 한숨 [종전협상 우크라를 가다③]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건물(왼쪽)과 폴란드 바르샤바의 건물. 박현준 기자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건물(왼쪽)과 폴란드 바르샤바의 건물. 박현준 기자

지난 21일 오후 3시 20분(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시외버스 터미널. 진작에 출발했어야 할 폴란드 바르샤바행 버스는 시동을 켰다 껐다 하며 40분째 멈춰 있다. 운전기사는 결국 웃통을 벗어 던지고는 버스를 수리 중이다. 버스 안으로 고무 타는 냄새가 번지는데도 다들 아무렇지 않은 듯 잠자코 앉아 있다. 

버스 안 승객은 기자를 빼고 25명. 남성 3명을 뺀 22명은 거의 다 중년의 우크라이나 여성들이다. 이들은 이웃한 폴란드로 건너가 청소부, 주방보조 등으로 일하며 돈을 벌어 고국의 가족에게 송금한다. 전쟁 발발 전에는 남성들도 많이 넘어가 농업이나 건설 잡부로 일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으로 남자들은 죄다 전선으로 갔다.

바르샤바까지 15~20시간이 걸리는 버스를 타면 몸이 쑤시듯 아프다. 기차로는 침대칸으로 편하게 갈 수 있다. 그러나 1000흐리우냐(약 3만3000원) 안팎이면 탈 수 있는 버스에 비해 2~3배가량 비싸다. 버스에 몸을 구겨 넣는 게 돈을 아끼는 방법이다.

성장의 열망

 

우크라이나 키이우주 이르핀시의 부서진 대학 건물. 박현준 기자

우크라이나 키이우주 이르핀시의 부서진 대학 건물. 박현준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 원인에 대해 러시아는 일관된 입장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동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2008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분위기를 조성한 게 원인이라고 한다. 서방이 먼저 지정학적 위기를 조성했고, 여기에 러시아가 대응하면서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다. 미국 정보기관이 의도적으로 국지적 분쟁으로 조성했다는 주장도 러시아 측의 단골 소재다.  


그러나 이렇게만 보면 미시적인 차원을 놓치게 된다. 지난 13일부터 22일까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오가며 취재한 결과, 버스로 폴란드로 건너가 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빼고는 이번 전쟁을 설명하기 어렵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는 1990년대만 해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500~1700달러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1990년 구매력 기준(PPP)으로는 우크라이나의 구매력이 45%가량 더 높았다는 세계은행 조사 결과가 있을 만큼 실질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경제 여건이 더 좋았다.  

같은 슬라브족으로 언어도 70~80% 통용되는 두 나라의 위치가 갈라진 건 ‘시장’이었다. 소련의 위성국가에서 떨어져 나온 폴란드는 시장경제에 시동을 걸고, 2004년엔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며 눈부신 성장을 일궜다. 지난해 폴란드의 1인당 GDP는 2만4810달러(약 3394만원). 우크라이나의 1인당 GDP 5505달러(약 753만원)의 4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일찌감치 폴란드로 건너가 저임금 노동을 제공했다. 인터이코노믹스에 따르면 2022년 전쟁 발발 직전 해에는 그 수가 135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우리도 잘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된 건 당연하다. 페인트 벗겨진 목조 가옥들, 녹슨 공장, 구겨져 방치된 차들로 채워진 우크라이나의 풍경은 국경만 넘어서면 정갈하고 장난감 같은 폴란드 마을로 일변하기 때문이다. 외부에선 친서방·친EU와 친러 세력의 내분으로 묘사된 2013년의 유로마이단 혁명도 근원에는 옛 소련식 관 주도 경제를 쇄신하려는 새로운 성장 열망이 깔려 있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한 노점에서 파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발닦개. 박현준 기자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한 노점에서 파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발닦개. 박현준 기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일종의 ‘족쇄’다. 키이우 시내에서 만난 50대 우크라이나인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작은 복제판”으로 만드는 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의 목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우리를 영원히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가 잘살게 되면 국경을 마주한 러시아인들의 경제적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란 판단에서다. 푸틴 입장에선 국내 정치적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단 얘기이기도 하다.  

EU 국가들처럼 성장하고 싶은 우크라이나인들의 열망과 이를 저지하려는 러시아의 욕망은 두 개의 평행선처럼 영원히 만나지 않는다. 마치 중국을 옆에 둔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과 같다.

종전 논의도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 있었다. 현지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동부의 루한스크 등 러시아군에 빼앗긴 지역은 포기하고 현재의 전선을 기준으로 다시 국경을 설정하자는 얘기를 했다. “동진해서 영토를 수복하자”는 과격한 말을 꺼내는 이는 없었다.

한 40대 상인은 “우리는 젊은이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 루한스크는 원래 러시아인들이 세운 도시라서 포기해도 된다”고 했다. 서방권에선 우크라이나군 사상자를 40만~50만 명으로 추정한다. 실제로 길거리 곳곳에 한쪽 팔이나 다리가 없는 청년들이 눈에 띈다.

키이우의 한 카페에서 만난 30대 우크라이나 여성은 “우크라이나인도 종전을 원한다. 그러나 지금은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며 현 상황을 절망적으로 요약했다. 휴전 혹은 종전의 형태와 시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푸틴과 같은 강대국 정상들이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3~24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포로 교환을 개시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규모 공습을 퍼부어 민간인 최소 13명이 사망하고 56명이 다쳤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독립기념 광장에서 상이군인이 거리를 걷고 있다.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독립기념 광장에서 상이군인이 거리를 걷고 있다. EPA=연합뉴스

 

“어떻게 이런 고통에서 미래를 찾을 수 있는가”

우크라이나인들에게선 지난해 11월 중동전쟁 취재를 위해 이스라엘을 찾았을 당시 “문제의 근원을 뿌리 뽑아야 한다”며 외국인 기자를 설득하던 이스라엘인들의 집요함, 철두철미함을 느끼진 못했다. 오히려 이해를 바라는 듯한 묘한 체념마저 느껴졌다. “방공호에서 가족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시를 배웠다”는 한 30대 여성의 말에는 슬라브적 낭만의 색채도 풍겼다.

그러나 언젠가 전쟁은 끝날 것이다. 그때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지정학적 숙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전쟁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돕는 나탈리 페도르초크(52)는 “러시아군에게 몹쓸 짓을 당한 10살, 3살짜리 여아들이 병원에 실려 왔다. 의사들도 참혹한 광경에 머리가 새하얘졌다”는 얘기를 들려주며 “이런 고통 속에서도 미래의 희망을 찾는 것이 우크라이나인의 과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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