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담배 아니었어? 아파트서 소리지르던 중학생, 마약이었다

'전자담배로 마약을 흡입하고 있는 10대를 주시하는 어른'을 챗GPT에 입력한 이미지. 일러스트 챗GPT 이미지 생성

'전자담배로 마약을 흡입하고 있는 10대를 주시하는 어른'을 챗GPT에 입력한 이미지. 일러스트 챗GPT 이미지 생성

 
지난 3월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놀이터 인근에서 중학생 2명이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면서 난동을 피웠다. 서울경찰청 기동순찰대가 두 사람을 잡고 보니 마약 투약이 의심되는 상태였다. 근처를 수색한 경찰은 학생들이 버린 전자담배 카트리지를 발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정밀 감정을 의뢰한 경찰은 카트리지 안에 있던 액체가 마약류로 지정된 합성대마류라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국과수는 최근 겉으로 알아보기 어려운 전자담배 형태의 마약류 유통이 증가하고 있다고 25일 발간한『마약류 감정백서 2024』를 통해 밝혔다. 마약하면 흔히 주사기나 코로 투약하는 장면을 떠올리지만, 전자담배를 통한 마약 흡입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과수에 들어온 압수품 5만4046건 중 3만669건에서 마약류 양성 반응이 나왔다. 그중 전자담배와 카트리지에 충전할 수 있는 액체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전자담배에서 마약류가 검출된 건수는 2022년 924건(4.2%)에서 지난해 2058건(6.7%)으로 2배 넘게 늘었다. 2022년 946건이었던 액체 형태 마약류 검출 건수도 지난해 3320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주사기에서 검출된 마약류는 2023년 6663건에서 지난해 5161건으로 줄었다.  

 

국과수 마약 압수품 현황. 자료 국과수

국과수 마약 압수품 현황. 자료 국과수

 
최혜영 국과수 마약과장은 “주로 전자담배 및 액상 형태로 유통되는 합성대마류의 유행이 원인으로 보인다”며 “특히 10대의 경우 남용 비율이 메트암페타민(필로폰)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0대로부터 압수한 물품 389건 중 합성대마류가 176건(45%)으로 가장 많이 검출됐다. 국과수는 백서에서 ‘전자담배의 역사와 위험성’이란 특별기고란을 통해 “부모의 눈과 단속을 피하기 쉬운 전자담배를 이용한 청소년의 마약류 남용이 전 세계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적극적인 단속과 모니터링 강화를 주문했다.


 
신종 마약류의 증가 추세도 폭발적이다. 국과수 서울연구소에 의뢰된 압수품에서 검출된 마약류 분포를 보면, 2017년 3.4%에 불과했던 신종 마약류 비중은 2021년 26.2%으로 8배 가까이 늘어난 뒤 2024년 34.9%로 정점을 찍었다. 신종 마약류는 중독성이 강하고 치사에 이를 수 있는 합성대마류, 펜사이클리딘 유사체가 주를 이뤘다.  

 
국과수가 최근 5년간 발견한 신종 마약류는 41종에 이른다. 국과수는 지난해 ‘2-플루오로-2-옥소-피시피알’(2-fluoro-2-Oxo PCPr)을 세계 최초로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펜사이클리딘 유사체인 PCPr은 국내 마약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아 수사기관의 간이검사에선 음성 반응이 나왔지만, 국과수 정밀 분석을 통해 마약류로 판정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5일『마약류 감정백서 2024』를 발간했다. 이영근 기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5일『마약류 감정백서 2024』를 발간했다. 이영근 기자

 
국과수는 코카인, 합성아편류 등 기존에 국내에서 보기 드물었던 고위험 마약류의 적발도 눈에 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7월에는 강원도 횡성군의 한 공장에서 콜롬비아 국적 기술자 2명과 함께 코카인 약 61㎏을 가공해 판매하려던 한국인 제조총책 등이 붙잡힌 바 있다.

 
국과수는 마약류 투약 후 운전, 항공기 내 난동 등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 연계 가능성도 커지고 있어 국가 차원의 선제적 대응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2020년 6만5531건이었던 국과수의 마약 감정 의뢰 건수는 2024년 12만703건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에 국과수는 지난해 3월 마약과를 신설하고 장비를 현대화하는 등 감정 역량을 강화 중이다. 이봉우 국과수 원장은 “마약 백서가 급변하는 마약 환경 속에서 국가 차원의 대응체계를 고도화하는 실질적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