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6월 16일(현지시간) 당시 찰스 랭글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워싱턴 DC 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고인이 ‘명예 정치인’으로 재직했던 뉴욕시립대 시티칼리지는 랭글 전 의원이 이날 오전 노환으로 타계했다고 밝혔다. 이날은 미국의 현충일(메모리얼 데이)이다. 전쟁에서 숨진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날이 고인에게도 생의 마지막 날이 됐다.
1930년 뉴욕 맨해튼의 흑인 밀집 지역인 할렘에서 태어난 랭글 전 의원은 20세였던 50년 자원입대했다. 6·25 개전 초기 미 육군 2사단 503연대 소속으로 낙동강 방어 전투 등 주요 전투에 참전했다. 50년 11월 하순 평안북도 군우리에서 벌어진 유엔군과 중공군 간 대규모 교전(군우리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40여 명의 병사와 함께 기적적으로 탈출했다. 고인은 이 공훈으로 퍼플하트(전사자나 상이군인에게 수여하는 훈장)와 동성무공훈장을 받았고, 2007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고인은 회고록 『그 이후로 단 하루도 나쁜 날이 없었다(And I Haven’t Had a Bad Day Since)』에서 “1950년 11월 30일 중공군의 기습으로 내 동료들이 쓰러졌지만 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 이후로 내게는 단 하루도 나쁜 날이 없었다”고 전쟁에서 겪은 경험과 이로 인해 달라진 인생관을 풀어내기도 했다.

2021년 12월 10일(현지시간) 당시 찰스 랭글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뉴욕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46년간 의정활동…한국 입장 적극 대변
미 의회 내 지한파 의원들의 모임인 ‘코리아 코커스(Korea Caucus)’ 창설을 주도해 초대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코리아 코커스는 한·미 교류 강화 등을 목적으로 하는 친목·연구 단체로 양국 동맹의 가치를 증진하는 대표적인 의원 모임으로 자리잡았다.
2021년 ‘백선엽 한미동맹상’ 수상
랭글 전 의원은 당시 수상 소감으로 “(6·25 때) 부상을 당하고 한반도를 떠났을 때는 악몽과도 같았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기에 한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미국의 일곱 번째 교역 파트너이자 국제적 거인으로 부상한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항상 내 마음속에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며 “남북 간 평화를 촉진하면서 우리 두 나라가 더 가까워지고, 내 평생에 분단된 한반도가 통일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고인은 결국 염원했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2015년 10월 14일(현지) 미국 워싱턴 DC 한 호텔에서 열린 ‘한ㆍ미 우호의 밤’ 행사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제럴드 코넬리 미 하원의원의 건배사를 들으며 웃고 있다. 왼쪽부터 당시 찰스 랭글 하원의원, 박 대통령, 존 캐리 국무장관, 존 홀드런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 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