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 “임금체계 지금 개편” vs 노조 “관련 소송 결과 나와야”

[뉴스분석]   

서울버스노조가 26일 서울 송파구 서울시교통회관 앞에서 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버스노조가 26일 서울 송파구 서울시교통회관 앞에서 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진짜로 답이 안 보이네요.”

 요즘 서울 시내버스 관계자들은 수시로 이렇게 답답함을 토로한다. 서울버스노조가 28일 파업 돌입을 예고했음에도 이를 해결할 묘책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 시내버스에서 진행되는 노사 갈등은 예년과는 차원이 다르다. 임금을 조금 더 올리느냐를 놓고 벌이는 줄다리기가 아니라 약간 과장하면 회사의 생존이, 크게는 버스 준공영제의 존폐가 달린 상황이라는 하소연들이 나온다. 

 이번 노사 협상의 쟁점은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이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2월 19일 통상임금에서 ‘고정성’ 요건을 폐기해 재직조건 조건이 붙은 정기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도록 판결했다. 

 통상임금은 ‘소정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금품’으로 연장·야간·휴일근로·연차 수당 등이 이에 근거해 지급된다. 조건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수당을 계산하는 기본금액이 높아져 수당도 올라가게 된다.


 사측 “돌파구 없으면 여럿 폐업”

 이 판결을 현재 임금체계에 그대로 반영하면 곧바로 15% 넘는 인상효과가 발생한다. 여기에 노조가 요구하는 올해 인상분(8.2%) 등을 합하면 최대 25%까지 임금이 인상된다는 게 사측과 서울시 계산이다. 버스 기사 1인당 연간 1000만원가량 오르는 셈이다.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서울의 경우 인건비는 실비로 인정해 서울시가 부족분을 모두 지원해준다. 버스요금 인상 등 다른 재원 확보 방안이 없는 한 임금이 크게 인상되면 그만큼 서울시가 메워줘야 할 돈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자영 서울시 버스정책과장은 “현재도 준공영제로 인한 적자(부채)가 1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막대한 부담이 가중되는 임금 인상은 수용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자칫 인상분의 일정부분을 회사가 더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

지난달 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임단협 2차 조정회의에서 김정환 서울시버스운송조합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점곤 서울버스노조 위원장. 뉴스1

지난달 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임단협 2차 조정회의에서 김정환 서울시버스운송조합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점곤 서울버스노조 위원장. 뉴스1

 
 이 때문에 사측을 대표하는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이하 조합)에선 노조에 대법원 판결을 반영해서 임금체계를 서둘러 개편하자고 제안했다. 총액 인건비가 크게 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편안을 만들자는 얘기다. 

 김정환 조합 이사장은 “대법원 판결은 향후 통상임금 문제는 노사가 협의해서 합리적으로 정리해나가라는 취지”라며 “노사협상을 통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적지 않은 회사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조 “올해 임금 인상분만 논의”

 하지만 노조는 임금체계 개편을 서두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현재 60여개 버스회사의 기사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관련 소송의 결과를 보고 그에 따라서 추후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하고, 이번에는 예년처럼 올해 임금 인상만 놓고 협의하자는 입장이다.

 유재호 서울버스노조 정책기획국장은 “대법원 판결만 있을 뿐 임금체계의 기준으로 삼을만한 후속 판결이 나온 게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임금체계를 바꿨다가는 나중에 판결 결과에 따라서 또다시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조 측은 정 시간이 급하면 현재 고법에 올라가 있는 D 운수의 소송 결과가 나오면 그걸 기준으로 해서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합에선 수용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조합 관계자는 “현재 소송마다 쟁점이 조금씩 다른데 특정회사에 대한 고법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그걸 다 어떻게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겠느냐”며 “한두 개 판결로 기준을 정하기도 어렵고, 대법원까지 가서 확정판결을 받자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노사 양측의 입장이 맞서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노조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해당 대법원 판결에서 선고시점에 법원에서 계속 중인 관련 사건에는 새로운 법리를 소급적용하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대법원 판결 이전에 버스기사들이 개별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사실상 버스기사들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한 셈이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 울산 등 전국적으로 120여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시간 흐를수록 소급액 더 쌓여”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앞으로 연이어 결론이 나올 이들 소송에서 청구금액이 그대로 인정될 경우 전국적으로 약 8600억원의 소급액을 각 버스회사가 기사들에게 지급해야 한다. 서울이 5500억원으로 가장 많고, 부산도 240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임금체계 개편이 늦어질수록 이 소급액이 더 쌓인다는 점이다. 대법원 판결을 준용한 임금체계가 시행되기 전까지는 모두 소급액 산정 대상이 될 거라는 설명이다. 노조로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받을 돈이 더 늘어나는, 유리한 상황인 셈이다.

28일로 서울 시내버스 파업이 예고된 가운데 노사간 해법찾기가 난항이다. 연합뉴스

28일로 서울 시내버스 파업이 예고된 가운데 노사간 해법찾기가 난항이다. 연합뉴스

 
 조합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바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정환 이사장은 “노조 요구대로 임금체계 개편을 관련 소송 판결 때까지 미루자는 건 폭탄을 계속 뒤로 넘기는 미봉책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여파로 인한 임금 대폭 인상과 수천억원대의 소급액 등이 얽히고 설켜 있는 탓에 노사 간에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결국 양측이 한발씩 양보해서 해법을 찾아야만 한다는 의미다.

 이동민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대법원 판결이라고 해도 산업별 특성과 여건에 따라 적절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며 “세금으로 운영되는 버스 준공영제의 취지를 고려해 노사 모두 대승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