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브라질 축구, 60년만에 순혈주의 깼다...안첼로티 부임

브라질 대표팀 사령탑 취입식에서 스콜라리(오른쪽) 전 감독의 축하를 받는 안첼로티 감독. AFP=연합뉴스

브라질 대표팀 사령탑 취입식에서 스콜라리(오른쪽) 전 감독의 축하를 받는 안첼로티 감독. AFP=연합뉴스

브라질 축구대표팀은 '영원한 우승 후보'로 불린다.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을 앞세워 22차례의 월드컵에 모두 개근했고, 우승도 5회로 역대 최다를 자랑한다. 이런 브라질의 사령탑은 자국 출신 감독이어야만 했다. 브라질 축구의 위상에 걸맞고 스타구단을 통솔하고 지도할 수 있는 건 브라질인 감독 뿐이라고 브라질축구협회는 믿었기 때문이다. 브라질 출신 감독은 곧 브라질 축구의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자국 감독만 고집해온 브라질의 '순혈주의'가 지난 26일(한국시간) 깨졌다. 이탈리아 출신 카를로 안첼로티(66) 감독이 브라질 대표팀에 부임한 것이다. 이틀 전인 지난 25일까지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를 이끈 안첼로티는 유럽 축구를 대표하는 명장이다. 유럽 5대 리그로 꼽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프랑스 리그1에서 모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다섯 차례다. 감독으로는 최다 기록이다. 개성 강한 스타 선수들도 안첼로티 앞에선 쩔쩔맨다. 외국인이 브라질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건 1965년 필리포 누녜스(아르헨티나) 감독 이후 무려 60년 만이다.  

브라질 대표팀 모자를 쓰고 입국한 안첼로티 감독. AP=연합뉴스

브라질 대표팀 모자를 쓰고 입국한 안첼로티 감독. AP=연합뉴스

브라질 축구가 이방인인 안첼로티에게 도움을 청한 건 바닥까지 떨어진 축구 명가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다. 브라질의 마지막 월드컵 우승은 2002 한·일월드컵으로 20년 넘게 세계 정상에 서지 못했다. 현재 진행 중인 2026 북중미월드컵 남미 예선에선 6승3무5패(승점 21)에 그치며 4위까지 추락했다. 

가장 최근 국가대항전(A매치)이었던 지난 3월 월드컵 예선에선 라이벌 아르헨티나에 1-4로 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10개국이 풀리그로 펼치는 남미 예선에선 상위 6개 나라가 월드컵 본선에 직행한다. 브라질이 탈락할 일은 없지만, '예선 4위'는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브라질에게 치욕적인 성적표였다. 결국 브라질은 북중미월드컵을 1년여 앞두고 도리바우 주니오르(63·브라질) 감독을 경질하고 안첼로티를 데려오는 승부수를 던졌다.  

유럽 5대 리그에서 모두 우승 트로피를 든 안첼로티 감독. AFP=연합뉴스

유럽 5대 리그에서 모두 우승 트로피를 든 안첼로티 감독. AFP=연합뉴스

'우승 제조기' 안첼로티는 부임과 동시에 파격 행보를 보였다. 브라질은 6월 6일 에콰도르, 6월 11일 파라과이와 월드컵 예선 15, 16차전을 치르는데, 안첼로티 감독은 27일 발표한 대표팀 명단(25명)에서 수퍼스타 네이마르(33·산투스)를 과감하게 제외했다. 브라질 국가대표 역대 최다 득점(128경기 79골)에 빛나는 네이마르는 최근 허벅지 부상에서 회복해 팬들 사이에선 대표팀 복귀가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하지만 안첼로티는 이름값을 보는 대신 최근 경기 감각이 좋은 비니시우스 주니오르(25·레알 마드리드), 마테우스 쿠냐(26·울버햄프턴), 하피냐(29·바르셀로나), 히샬리송(28·토트넘) 등으로 공격 라인을 꾸렸다. 화려함은 버리고 실속만 따진 끝에 내린 결정이다.  


안첼로티는 "세계 최고인 브라질 대표팀을 이끌게 된 것은 큰 영광이자 자부심이다. 브라질과 인연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지금까지 34명의 브라질 선수를 팀에서 지도했다. 호나우두, 히바우두, 호나우지뉴 등 수많은 선수와 호흡을 맞췄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앞에 놓인 과제는 크지만, 브라질이 다시 월드컵 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