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만들기] 탈이념의 남북시대…적대적 대결에서 평화적 공존으로

새 정부의 통일·대북 정책 방향

한반도평화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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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대선을 일주일 앞둔 지난 27일 한반도평화만들기(이사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산하 한반도포럼은 ‘새 정부의 통일·대북 정책 방향’을 주제로 집중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선 한반도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면서 “한국이 보유한 국가 역량이라면 북한 체제와 병존, 공존을 추구하다 통일을 지향하는 방안을 주도적으로 제시할 만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에 이익이 된다면 적도 친구도 없다는 식의 외교를 펴고 있다. 탈이념의 시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도 실용외교를 강조한다. 한반도포럼은 이날까지 세 차례의 토론회 결과를 정책제안서로 발간해 새 정부에 제안하기로 했다.

미국·북한 모두 관심 가질 정책 필요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발제)=북한 문제 해결이 지연될 경우 한국이 부담해야 할 기회비용은 상당하다.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는 안보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하며 국제사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수 있다. 북한 문제 해결에 대한 절박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북한 모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대북 정책을 만들어야 할 때다. 이와 관련, 거래 중심의 트럼프 행정부의 특징을 반영해 북한의 광물과 관광을 연계한 ‘트럼프 연동형’ 협정 체결을 구상해 볼 만하다. 1차 사업으로는 북한 원산 지역을 중심으로 관광 프로젝트 추진을 제안한다. 관광 산업은 북한 입장에서 체제 위협이 가장 적고,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와도 부합할 수 있다. 2차 사업으로는 광물 협정 체결을 꼽는다. 상당량 매장됐다고 알려진 북한의 희토류는 미국이 필요로 할 만하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광물 협정을 참고해 이 사업이 성공하면 비핵화뿐 아니라 북·미 관계 정상화,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도 가능할 수 있다. 이른바 경로 도약형 북한 발전 모델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하고 있어서 지정학적 여건이 마련됐다고 보기 힘들다. 미국이 섣불리 협상에 착수할 경우 북한의 협상력이 강화돼 핵 동결 수준에서 합의가 끝날 위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미 간 결속, 한·일 연대, 러시아에 대한 제어력 확보가 중요하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는 ‘경제 영역에서 미국에 양보가 이뤄지면 우리가 손해를 보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지만, 협상을 경제 영역으로 국한하면 한국의 안보 부담이 증가해 북한 문제 해결이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경제와 안보를 아우르는 빅 패키지로 협상 틀을 넓혀 정상회담에서 이슈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대관계 끝내고 평화체제 전환해야
▶고유환 전 통일연구원장=평화와 통일을 각각 강조한 역대 진보·보수 정부는 어느 쪽도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이라는 근본문제 해결에는 소극적이었다. 그 사이 북한은 핵무력 고도화에 주력한 데 이어 적대적 두 국가론까지 꺼내 들었다. 새 정부는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선 1992년 한·중 수교 모델을 적용해 북·미 수교, 북·일 국교정상화, 남북기본조약 체결 등의 해결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로 이어지는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에 대한 재조명도 필요하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신냉전 대립 구도가 격화돼 통일정책에서도 딜레마가 나타나고 있다. 한쪽 강대국과 관계에 대해 다른 쪽이 공세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과거 정부들은 ‘대북정책 없는 통일정책’ 혹은 ‘통일정책 없는 대북정책’이라는 접근을 택하곤 했다. 전자는 북한붕괴론과 흡수통일의 기반이 됐고, 후자는 한반도 평화에 집중한 나머지 통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조기 통일을 약속한 정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는 등 민주적 절차로 스스로 독일 통일을 시작한 동독 주민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2018년 이후 남북관계는 완전 단절 상태다. 한국 정부 스스로 이념 외교, 진영 외교, 반쪽 외교에 매몰된 탓도 있다. 한국이 경제 규모나 과학기술력에서 ‘중대국(great power)’에 위치해 있지만, 국제사회가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 건 외교력의 부재 때문일 수 있다. 해법으로 평화·실용 외교를 제시한다. 북한과 관계에서 실현 불가능한 통일 담론보다 평화 공존을 중시하자는 것이다. 청년세대에서 반공이 아닌 ‘이북(離北)’ 정서, 즉 북한과 거리 두길 원하는 실용적 태도가 주류가 된 점은 이런 맥락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남북, 유엔 회원국 부합한 관계 이뤄져야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이석배 전 주러시아 대사, 박영호 전 강원대 교수,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고유환 전 통일연구원장,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김종호 기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이석배 전 주러시아 대사, 박영호 전 강원대 교수,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고유환 전 통일연구원장,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김종호 기자

▶박영호 전 강원대 교수=한국과 북한 모두 유엔 회원국으로서 유엔 목적과 원칙에 부합하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고민해볼 때다. 유엔에서부터 정상적이지 않은 남북 관계에서 어떻게 실질적인 경제 협력과 교류 협력이 가능하겠나. 다음으로는 현재의 시대적·구조적 변화에 맞는 대북 정책이 필요하다. 여론 조사를 보면 국민 다수가 두 개 국가 공존을 인정하자고 하고, 한국에선 한민족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더 가깝게 여기는데 이런 게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건 문제가 있다.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북한이 원하는 건 체제 보장과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다. 체제 보장 문제와 관련, 1990년대 초 못했던 북·미 수교와 북·일 국교 정상화가 방법이 될 수 있다. 과거 중국·소련과 수교를 맺은 한국과 호혜성 차원이기도 하다. 남북과 4강이 교차 수교를 맺고 있다면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작아질 것으로 본다. 경제 문제에선 상호의존성을 높이는 방식을 고민해볼 만하다. 북한에 국제도시를 건설해 남북뿐 아니라 미·일·중·러 등 전 세계 사람이 일하고 교류한다면 북한이 어떻게 핵을 사용할 수 있겠나.

트럼프, 동맹국에 안보 위탁 늘어날 듯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미국은 과거처럼 더 이상 모든 전선에 직접 뛰어드는 패권국가가 아니다. 경제 규모 기준으로 전 세계 25% 국력으로 세계적 지위를 유지하고 중국과 경쟁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계의 약 15개 전선을 동맹에 위탁하는 방안이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거다. 이들 전선에서 동맹으로 안보 균형을 이루고, 때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 적대국들과도 대화해 지역 긴장을 낮추는 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북 안보를 위탁하며 북한과 대화에 나서는 건 시간문제다.

▶이석배 전 주러시아 대사=외교 현장에선 분단국 외교가 갖는 한계가 엄연히 존재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을 예로 들면 한국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을 놓고 대러 제재에 동참할지 고민이 컸다. 결국 2014년엔 러시아와 관계를 고려해 동참하지 않았고 이후 전쟁에선 적극 동참했는데, 북한군 러시아 파병 등으로 한국 안보 이익이 본격적으로 침해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또 러시아와 경협으로 북·러 밀착을 느슨하게 할 수 있다는 구상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쿠릴 열도 반환을 위해 경제 협력에 정성을 쏟았지만 러시아는 호응하지 않았다.

한반도 통일, 국제사회 관심사 돼야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19세기 독일인 거주 영토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한 ‘저먼 퀘스천(German question)’이 1990년대 독일 통일 국면에서도 부상한 적이 있다. 대독일·소독일 통일 방안을 둘러싼 유럽 안보의 화두가 되면서다. 비슷한 맥락에서 코리안 퀘스천은 어떤가. 한반도 통일이 동아시아나 태평양 지역의 안보에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우리가 논리를 만들어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전환하는 거다. 코리아 퀘스천을 이슈화하는 데 오는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좋은 기회다.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사회)=평화와 공존을 무작정 주장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일단 단계를 설정하면 어떨까 한다. 지금이 적대적 대결이라면 그다음은 평화 병존, 그리고 평화 공존 등으로 나아가는 거다. 남북의 4강 수교 교차 승인 등 상호 위협 감소 조치뿐 아니라 여론과 인식을 바꾸는 작업도 중요하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는 여론이 조성돼 병존이 가능해지면 이후 교류 협력이 가미된 평화 공존 단계로 접어들 것이다. 통일은 평화 공존이 무르익은 뒤 마지막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