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만 패는 트럼프 “외국학생 절반으로”…“인재 유입 제한? 바보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제닌 피로 워싱턴 DC 임시 연방 검사장 취임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제닌 피로 워싱턴 DC 임시 연방 검사장 취임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하버드대 간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학사제도 개편 및 재정지원 중단을 무기로 하버드대 압박 수위를 높여온 트럼프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급기야 “하버드 유학생 상당수가 급진 좌파 광신도들에 의해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라며 외국인 학생 절반 감축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버드대는 자신들을 본보기삼아 정치적 반대자에게 항복을 요구하며 길들이기를 시도하는 것이라며 ‘저항’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가진 취재진과의 대화에서 하버드대에 대한 적의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는 “하버드대 학생 거의 31%가 외국인이다. 우리는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다”며 “그들(하버드)은 세계 급진적인 지역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버드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2024~2025학년도의 외국인 학생 등록 비율은 27.3%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수치 31%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버드 유학생 31%→15%로 줄여야”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왜 31%나 될까. 31%는 너무 많다”며 “15%의 상한선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는 쇼핑센터가 폭발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고 폭동 같은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며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이 나라 급진 좌파 미치광이들에 의해 문제를 야기한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하버드는 우리 미국에 무례하게 대하게 있다. 그들은 스스로 상처를 가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지난해 가자지구 전쟁 중단과 함께 친팔레스타인 시위의 진앙지 역할을 한 뉴욕 컬럼비아대를 두고 “정말 잘못했지만 그들은 우리와 해결책을 찾으려 협력하고 있다”며 “그러나 하버드는 싸우고 싶어 한다. 자신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보여주고 싶어하지만 혼쭐이 나고 있다”고 비아냥댔다.

졸업식을 하루 앞둔 28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 학생들과 가족들이 줄을 서서 학교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 무관. 케임브리지=김형구 특파원

졸업식을 하루 앞둔 28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 학생들과 가족들이 줄을 서서 학교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 무관. 케임브리지=김형구 특파원

미 국무장관 “中유학생 비자 취소할 것”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하버드대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중국 유학생의 미국 비자 승인 거부 방침을 밝혔다. 그는 이날 “중국 공산당과 관련 있거나 (안보 관련) 중요 분야에서 연구하는 이들을 포함해 중국 학생들의 비자를 공격적으로 취소할 것”이라고 했다.


2019년 37만여 명에 이르던 미국 내 중국 유학생 비율은 지난해 기준 27만7000명으로 크게 줄었지만 미국 내 전체 유학생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상당한 규모다. 하버드대의 경우 중국인 유학생 수는 1200여 명으로 전체 학생 수(2만4000여 명) 가운데 5% 정도에 해당한다.

하버드대생 “우리는 친이스라엘”

트럼프 행정부의 연이은 강공에 하버드대에서는 불안과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하버드대 소프트웨어 석사 과정을 밟은 캐나다 유학생 칼 자오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하버드를 ‘반이스라엘 근절’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다지만 오히려 하버드는 상당히 ‘친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하버드 유학생 감축론에 대해 “하버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고 우수한 학생들만 뽑는다. 이곳에 공부하러 오는 인재의 풀을 제한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판했다.

하버드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 반대하는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내기 위해 하버드를 본보기 삼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익명을 원한 한 하버드 로스쿨 재학생은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버드를 벌 주고 망신 주는 것은 권위주의적 구태”라며 “사람들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유학생 친구들 위해 끝까지 싸울 것”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자유를 위한 하버드 학생들’이 주최한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지지를 밝히는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자유를 위한 하버드 학생들’이 주최한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지지를 밝히는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날 하버드 사이언스센터 광장에서는 ‘자유를 위한 하버드 학생들’이 집회를 열어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지지와 연대의 목소리를 냈다. 이 단체 소속 한 하버드대생이 “처음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끊겠다는) 우리의 기금을 위해, 이제는 우리의 (유학생) 친구들을 위해(First our funding and now our friends)”라고 외치자 현장에 모인 수십 명의 사람들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외치며 화답했다.

다만 사태 진정을 원하며 상황을 관망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는 오드리 베넷은 “대학 당국이 외국인 유학생을 지지한다고 나선 것이 자랑스럽다”면서도 “하지만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시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극단적 갈등 대신 현명한 해법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컬럼비아대생 추방 시도, 위헌적”

28일(현지시간) 미국 메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 캠퍼스 옆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케임브리지=김형구 특파원

28일(현지시간) 미국 메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 캠퍼스 옆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케임브리지=김형구 특파원

한편 친팔레스타인 시위 참여를 이유로 컬럼비아 대학원생 마흐무드 칼릴을 추방하려 한 트럼프 행정부 시도에 제동을 거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뉴저지연방법원의 마이클 파비아즈 판사는 이날 “칼릴의 신념이 미국 외교정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정부 주장은 근거가 모호하다”며 “영주권 신분을 취소한 루비오 국무장관의 명령은 자의적 법 집행의 물꼬를 텄고 헌법에 위배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다만 법원은 이민자 시설에 구금돼 있는 칼릴의 석방 명령은 보류했다. 파비아즈 판사는 과거 영주권 신청 과정에서 특정 개인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칼릴 측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석방 불허 이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