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이 개봉했다.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 40주년을 기념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 영화다. 프랑스 출신 레오 파비에 감독이 미국인 일본학자 수잔 네이피어, 프랑스 인류학자 필리프 데스콜라, 영국 생태학자 티모시 모튼 등 서양인들의 시선으로 펼쳐내는 미야자키 하야오론이 흥미롭다. 챗GPT의 ‘지브리풍’이 세계를 휩쓸고 간 지금,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력을 돌아볼 만하다. 마침 그의 첫 극장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가 25일 재개봉해, 만화적 재미를 넘어 인류의 미래에 대한 통찰이라는 미야자키 세계관의 탄생을 되짚는다. 최근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는 지난해 아카데미상과 칸 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를 휩쓸었다. 세상에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경험하지 못한 어린이가 얼마나 될까. 애니메이션 뿐 아니다.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의 연극 ‘이웃집 토토로’는 지금 웨스트엔드에서 상설 공연 중이고, 토호가 제작한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내년 초 한국에 온다. 전 세계인에게 정서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비밀을 강태웅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가 분석했다. ‘붉은 돼지’(1992). [중앙포토] [사진 스튜디오 지브리]
붉은 경비행기가 흰 수염을 멋지게 기른 남자를 태우고 날아오른다. 하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흐뭇해 하는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그가 그린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1992)의 주인공이 조종하는 비행기가 뭉게구름 사이를 날아다니는 장면이 이어진다.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의 오프닝이다.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야”라고 말하는 주인공 포르코는 저주에 걸려 돼지 얼굴을 하고 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을 빗댄 것이다.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를 개인사와 일본 사회의 변화, 그리고 인류 전체가 겪고 있는 문제들과 연결시키며 풀어나간다.
‘마녀배달부 키키’(1989). [사진 스튜디오 지브리]
각종 사진을 생성AI가 지브리 스타일로 바꿔주는 ‘지블리피케이션(Ghibli-fication)’을 누구나 즐기게 된 요즘, 이 영화의 개봉은 시의적절하다. 유행을 즐기면서도 사람들은 지블리피케이션이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을까, 지브리나 미야자키 하야오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해 한다. 지난 4월 일본 국회에서도 질의응답이 오갔다. 지블리피케이션이 저작권 침해 아니냐고 따지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문부과학성 관료는 캐릭터 도용이 아닌 작풍(作風)의 유사성만으로는 침해라고 볼 수 없다고 답변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도 그렇다.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 등 대표작 지브리의 반응은 어떨까. 미야자키 하야오는 말이 없고, 지브리 역시 “딱히 코멘트가 없습니다”라는 입장이다. 지브리로서는 지블리피케이션이 싫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브리는 그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철저히 단속하기 보다 널리 퍼지길 바라고 있다. 2020년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작품들의 스틸컷 수백 장을 “상식적 범위에서 자유로이 사용해주세요”라며 앞장서서 배포하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애니메이터를 보유한 디즈니와 달리 지브리에는 상설 제작부가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신작을 만들 때 스태프를 일시적으로 고용하니 디즈니처럼 작품이 빈번하게 나올 수 없고, 지브리로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게 가장 걱정일 터. ‘아톰’으로 유명한 데즈카 오사무의 데즈카 프러덕션이 지금은 제작보다는 저작권 관리를 주로 하는 회사가 된 것처럼 말이다.
“제 아내는 제가 행운아라고 합니다. 종이, 연필, 그리고 필름의 마지막 50년을 같이 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웃집 토토로’(1988). [사진 스튜디오 지브리]
2014년 아카데미 명예상을 받았을 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수상 소감이다. 부인은 같은 직장 선배였고, 그보다 훨씬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그러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업에 대한 이해가 남다를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비춰지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작업실에서 연필로 원화를 그렸다 지우는 모습이 가장 많다. 이렇게 아날로그 작업으로 만들어진 지브리 스타일이 AI를 통해 유행하는 현상이 아이러니하다.
1941년생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가쿠슈인(学習院)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일본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애니메이션 회사인 토에이(東映)에 들어갔다. 여기서 아내를 만났고, 세계명작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회사로 옮겨 ‘알프스 소녀 하이디’(1974), ‘엄마 찾아 삼만리’(1976) 제작에 참여했다. 1978년에는 ‘미래소년 코난’의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애니메이션들은 당시 우리나라 공중파 TV로 방영돼 지금 중장년층에게 매우 친근한 작품들이다. 그런데 그는 장기간 안정된 수입을 보장하는 TV 애니메이션 제작에 안주하지 않고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라는 불확실한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의 성공을 바탕으로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했다. ‘지브리(ghibli)’는 ‘사막의 바람’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원래 발음은 ‘기블리’다. 애니메이션계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는 염원이 담긴 이름이다.그의 의도대로 지브리는 ‘천공의 성 라퓨타’(1986), ‘이웃집 토토로’(1988), ‘마녀배달부 키키’(1989)가 연이어 히트했고, ‘모노노케 히메’(1997)부터 해외배급을 디즈니가 맡아주면서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은 전 세계에 알려진다. 2013년 ‘바람이 분다’를 만들고 은퇴를 선언했지만, 10년이 지나 여든을 넘긴 나이에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로 돌아왔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작품에서도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 애니메이터들은 총 14만 장의 그림을 손으로 그렸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중앙포토] [사진 스튜디오 지브리]
지난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작품으로 비영어권 장편 애니메이션 최초로 골든 글로브상을 받고,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까지 받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수상 이후 21년 만이다.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개인이 아닌 기관으로서는 최초로, 지브리가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지브리 작품들은 애니메이션 외에도 다양한 형식으로 꾸준히 팬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2022년 나고야 근처에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장소와 건물들을 실제로 세운 2만 평(6만6000㎡) 규모의 지브리 파크가 개장했다. 놀이기구가 없어 지루하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에 실제로 들어간 느낌이 들어 좋다는 사람들이 많다.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가 7년 간 공들여 제작한 연극 ‘이웃집 토토로’는 2022년 바비칸 센터 초연 당시 올리비에상 6개 부문을 수상했고, 올봄부터 웨스트엔드 질리언극장에서 무기한 상설 공연을 시작했다.
지브리, AI 그림에 “딱히 코멘트 없습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주인공들이 모두 날아오른다. [중앙포토] [사진 스튜디오 지브리]
이쯤 되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오래도록 전 세계에서 사랑 받는 원동력이 궁금해진다. 미야자키는 저서 『출발점』에서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다른 시대에 태어날 수 있었던 가능성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상상의 세계에서 놀고 싶어 한다. 그건 일종의 잃어버린 가능성에 대한 동경이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고 밝힌 바 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보는 이유를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동경’이라고 단정한 것이다. 사람들의 동경이 반영됐다고 해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내는 이공간(異空間)이 이상적이거나 평화롭지만은 않다. 전쟁이 지나갔거나 다가오고, 해일이 몰려오고, 과도한 개발로 자연이 파괴되어 폐허가 되어버리는 위험이 잠재한다. 그런 공간에서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소년·소녀가 모험을 하고, 탐욕을 지닌 기성세대가 방해를 한다.
흔한 만화영화의 갈등 구조는 선과 악의 대립 끝에 권선징악의 해피엔딩이 기다리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는 다르다. 주인공인 소년·소녀는 기성세대에게 깨달음이나 반성을 촉구하지만, 소년과 소녀 역시 사회를 배워나가고 그들과의 공생을 도모한다. 대표적으로 부모를 돼지로 만들어버린 유바바에게 복수하고 온천 마을을 망가뜨려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여기서 일하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며 적극적으로 그 세계에서 열심히 일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의 주인공 센이 있다. 센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의 주인공들은 일을 배우고 사회를 알고 같이 살아나가려고 노력한다.
작품의 절정도 상대가 철저히 파괴되는 장면보다 주인공이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는 장면이 차지한다. 하늘로의 비상(飛上)은 주인공의 성장을 의미하고, 지상에서의 대립과 갈등을 하찮게 만든다. 토토로에 매달린 사츠키가, 용으로 돌아간 하쿠의 등에 탄 센이, 검은 새로 변신한 하울의 발등에 올라탄 소피가 날아오를 때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지구 한쪽에선 전쟁이 계속되고,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는 위기로 다가오고, 디지털과 AI 세상이 왠지 모를 불안감을 던져주는 지금, 미야자키 하야오가 50여 년 간 외쳐온 대립이 아닌 공존이, 그리고 그의 초지일관 스타일이 퇴색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 퍼져가는 현상은 의미심장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처럼, 사람들이 하늘 위에서의 시점을 가지고 땅에서의 갈등과 대립을 하찮게 여기며 자기 일에 열중하면서 미래를 향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모두가 꿈꾸고 있다.
강태웅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울대와 일본 히토츠바시대, 도쿄대에서 일본 사회와 문화를 연구했다. 『이만큼 가까운 일본』(창비)을 비롯해 많은 저서가 있고, 최근 『전쟁과 일본영화: 전쟁 때 일본인은 어떤 영화를 만들고 보았나』(민속원)를 출간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