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완’이 된 고령화...성장 둔화에 은행 부도위험도 상승

지난달 12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무료급식소에서 어르신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2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무료급식소에서 어르신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저출생·고령화가 성장과 금융 안정을 동시에 위협하면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딜레마가 심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구조개혁을 계속 미뤘다간 인구 문제 역시 ‘그레이 스완 리스크(예측 가능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위험)’로 굳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4일 한국은행은 ‘초고령화와 통화정책’을 주제로 한 보고서에서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로 성장률은 낮아지고, 투자 위축과 저축 증가로 실질금리는 하락할 거라고 예상했다. 한국은 이미 지난해 12월 65세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 속도라면 2045년 일본을 추월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고령 인구 비중이 가장 큰 나라가 된다.

연구진은 출산율과 기대수명이 1991년 수준(1.71명, 72.2세)으로 유지됐더라면, 2024년 기준 균형 실질금리는 현재보다 약 1.4%포인트 높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균형 실질금리는 수요와 공급이 일치돼 경제가 균형 수준에 있을 때의 금리를 뜻한다. 균형 실질금리가 낮아졌다는 건 저출생·고령화 탓에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고령화와 생산성 하락만으로도 경제 성장률이 2040년대 1% 미만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또한 고령화가 금융사의 수익성과 건전성도 악화시킬 것으로 관측됐다. 고령화는 실질금리뿐 아니라 1인당 소득 성장률, 주택가격 상승률을 모두 낮추는 요인이라서다. 

한은이 OECD 회원국 7148개 은행의 27년(1997∼2023년)치 패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노년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에 대한 65세 이상 인구 비율)가 1%포인트 오르면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본 비율은 0.64%포인트 하락했다. 은행들이 수익성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고위험ㆍ고수익 사업 기회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부동산 중심의 대출 구조를 지닌 경우 은행의 부도 위험이 더 커진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결국 한국은행 통화정책 역시 운신의 폭이 줄어들게 된다. 황인도 한은 금융통화연구실장은 “성장을 위해선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펴야 하지만, 금융사의 취약성이 심화한다면 마냥 금리를 낮추기 어렵기 때문에 통화정책 목표 간 상충이 심화할 수 있다”며 “부동산 금융에 대한 대출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등 실물ㆍ금융 부문의 구조개혁을 통해 기초 체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