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 뽀짜이판(?仔飯). 바이두
클레이포트 라이스, 즉 뽀짜이판은 우리나라에서는 수년 전부터 퍼지기 시작했지만 홍콩에서는 예전부터 흔하게 볼 수 있는 음식이다. 현지에서는 먼 옛날부터 먹어 온 음식이겠지만 특히 지난 60~70년대에 크게 유행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홍콩의 명소 소호거리 골목길에는 갖가지 음식점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점심 때가 되면 노천식당 좌판에 직장인들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는데 뽀짜이판 먹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해가 지면 몽콕의 야시장에서도 뽀짜이판 등을 먹으며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홍콩에서는 뽀짜이판을 향수가 깃든 음식,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컴포트 푸드(comfort food)로 여긴다고 한다. 홍콩 사람들, 평범한 도자기 솥밥에서 어떻게 위안을 얻는다는 것일까?

홍콩 소호거리. 바이두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는 사시사철 무더운 날씨가 계속될 것 같지만 이 무렵이면 기온이 뚝 떨어진다. 한국인한테야 추위라고 말하기도 뭣한 날씨지만 동남아에서는 이때 뼛속을 파고드는 한기를 느낀다는 것이다.
뽀짜이판은 이럴 때 먹는 음식이다. 도자기 냄비에 갓 지은 뜨거운 밥을 먹으며 남국(南國) 나름의 추위를 물리치는 음식이니 미국인들이 감기오한으로 고생할 때 먹는 치킨 누들 수프가 그들의 컴포트 푸드가 된 것과 비슷하다.
뽀짜이판은 얼핏 우리나라 돌솥밥과 유사하다. 흙을 구워 만든 도자기 또는 항아리, 혹은 돌을 깎아 다듬은 돌솥에 밥을 짓는 것이 닮았다면 닮았다. 취사 도구라는 형태도 그렇지만 느낌 탓인지 밥 맛 역시 비슷한 측면이 없지 않은 듯싶다. 하지만 두 음식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품격이 다르다. 돌솥밥은 일단 출발점이 고급 음식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이나 상류 양반계층의 개인용 취사도구였다. 반면 뽀짜이판은 농민음식, 서민음식에서 비롯됐다.

홍콩 야시장 풍경. 바이두
그런 면에서 뽀짜이판은 오히려 스페인의 전통 음식으로 농민들의 밥이었으며 컴포트 푸드인 빠에야와 닮았다. 빠에야는 스페인이 아랍의 지배를 받던 시절, 벼농사를 짓던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농민들이 지배계층인 무어인들이 먹던 쌀밥인 아랍식 볶음밥 필라프를 본따서 냄비에 쌀을 씻어 앉힌 후 들판에서 구한 채소와 토끼 고기 등을 넣고 끓여 먹었던 음식에서 비롯됐다. 빠에야(paella)라는 이름의 어원이 냄비인 팬(pan)에서 비롯된 까닭이다. 빠에야나 뽀짜이판, 음식 이름이 서로 닮은꼴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운데 따지고 보면 음식이 생겨난 배경도 비슷하다.

스페인 음식 빠에야. 바이두
중국에서는 자기네들이 퍼트렸다고 주장하지만 천만의 말씀이고 뽀짜이판은 쌀밥의 화석과 같은 음식이다. 벼농사 지역에서 농민들이 진흙 그릇에 씻은 쌀을 담아 물을 붓고 끓인 초기 밥짓기 기술의 유산이다. 물론 지금은 향미(香米)라고 하는 인디카종 쟈스민 쌀에 맞게 발달했지만 그 속에는 밥짓기 기술의 원형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홍콩식 딤섬 전문점에서 별미로 먹는 솥밥인 뽀짜이판, 클레이포트 라이스에서 찾아본 음식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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