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상’ 날개 단 한국 공연…K컬처 세계화의 새 주역으로

K컬처 넥스트 레벨-①공연·클래식
대학로 소극장에서 시작된 한국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분을 휩쓸었다. ‘한류 원조’인 K팝과 영화, 드라마에 이어,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았던 공연과 미술, 문학 등까지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으며 K컬처는 글로벌 무대에서 한 단계 도약 중이다. 그 현황과 과제를 점검하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한국 뮤지컬로는 최초로 토니상 작품상을 비롯해 6관왕을 차지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개발 단계부터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둔 적절한 지원을 자양분으로 뮤지컬 본고장에서 꽃을 피운 사례다. 이 작품은 2014년 우란문화재단의 지원 사업을 통해 개발이 시작됐다. 콘텐트 개발 프로그램인 ‘시야(SEEYA) 스튜디오’(현재 ‘우란 공연’)에 이 작품을 만든 박천휴 작가, 윌 애런슨 작사가 콤비가 선정됐고, 재단은 이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밀착 지원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버전에서 올리버(대런 크리스)와 클레어(헬렌 J.셴)가 교감하는 모습. 사진 polk and co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버전에서 올리버(대런 크리스)와 클레어(헬렌 J.셴)가 교감하는 모습. 사진 polk and co

영어 버전 개발 아이디어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당시 우란문화재단 소속 프로듀서로 참여한 김유철 라이브러리컴퍼니 본부장은 “미국은 브로드웨이에 오르는 뮤지컬 작품들도 비영리 단체에서의 개발 과정 등을 거쳐 상업 프로덕션으로 가는 단계를 밟는다”며 “국내에도 이러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글로벌 시장 진출 활로를 터주는 적절한 지원 프로그램이 그간 다져진 K컬처 경쟁력의 후광 효과를 만나며, 한국 공연도 점차 세계 중심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왼쪽에서 4번째부터)박천휴 작가와 헬렌 J 셴 등 '어쩌면 해피엔딩' 출연진및 제작진이 78회 토니상 시상식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왼쪽에서 4번째부터)박천휴 작가와 헬렌 J 셴 등 '어쩌면 해피엔딩' 출연진및 제작진이 78회 토니상 시상식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 산실’과 같은 국가 지원 프로그램의 효과도 축적되는 모양새다. 동명 원작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아몬드’는 ‘2021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시범 공연을 거쳐 2022년 국내 초연했고, 올해 일본 시장에 진출한다.  

‘어쩌면 해피엔딩’ 이외에도 해외 시장을 두드려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는 토종 뮤지컬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마리 퀴리’는 2020년 국내 초연 이후 차근차근 해외 시장을 넓혔다. 2022년 폴란드 바르샤바 뮤직가든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 ‘황금물뿌리개상’을 수상하고, 2023년 일본 라이선스 초연을 올린 데 이어 지난해에는 영국 런던에서 현지 프로덕션으로 장기 공연을 선보였다. 이주민 여성 출신으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마리 퀴리의 일대기로 세계인의 보편적 감수성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다. 


지난 2022년 7월 2일 폴란드 바르샤바 뮤직 가든스 페스티벌에 초청된 한국 뮤지컬 '마리 퀴리'가 현지 마리 퀴리 박물관에서 미니 콘서트와 토크쇼, 발코니 콘서트를 진행한 모습. 사진 라이브

지난 2022년 7월 2일 폴란드 바르샤바 뮤직 가든스 페스티벌에 초청된 한국 뮤지컬 '마리 퀴리'가 현지 마리 퀴리 박물관에서 미니 콘서트와 토크쇼, 발코니 콘서트를 진행한 모습. 사진 라이브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 진출 사례가 주목받지만,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작품도 있다. ‘팬레터’는 2016년 초연 이후 중국과 일본 시장에 안착했다. 지난해 중국 대표 뮤지컬 시상식 ‘중국뮤지컬협회 연례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7개 부문을 석권했다. 제작사인 라이브의 강병원 대표는 “한국 공연을 단순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산업 구조 안에 편입해 성과를 내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 모습. 사진 오디컴퍼니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 모습. 사진 오디컴퍼니

 
아예 초연을 해외에서 현지 언어로 제작한 한국 뮤지컬도 등장했다. 지난해 4월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데 이어 지난달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도 공연한 ‘위대한 개츠비’는 외국 소설 원작에 외국인 배우가 외국어로 공연한다. 하지만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단독 리드 프로듀서를 맡은 ‘K뮤지컬’ 범주에 포함된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뮤지컬의 성과 뒤에는 K컬처의 성공이 도사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K팝과 드라마, 영화의 성공 사례로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가 상승했다”라며 “뮤지컬도 이에 따른 수혜를 입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석권은 한국 뮤지컬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일 서울에서 열린 ‘K-뮤지컬 국제마켓’ 콘퍼런스에 참석한 일본 공연기획사 이플러스의 다이스케 요코하마 기획 총괄 이사는 “K팝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을 통해 K콘텐트가 확산하면서 한국 뮤지컬에 대한 관심도 역시 커졌다”며 “토니상 수상은 해외 시장에서 한국 작품에 대한 선호도를 더욱 높여 K뮤지컬의 글로벌 진출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한국 뮤지컬의 경쟁력이 다른 K컬처 장르에 견줄 정도는 아니라는 냉정한 시각도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 등 중소극장용 작품으로 출발한 일부 성공 사례에 도취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는 “좁은 국내 시장은 한계가 있는 만큼 결국 뮤지컬도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제작자의 창의성을 살려주면서 시장 활로를 개척해주는 형태의 지원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고 교수는 이어 “‘어쩌면 해피엔딩’ 등의 성공으로 우수 인력이 뮤지컬로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라며 “영화아카데미와 같은 인력 유입·양성 통로를 만드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LA의 서울 페스티벌. 6월 3~10일. 사진 LA필하모닉

LA의 서울 페스티벌. 6월 3~10일. 사진 LA필하모닉

 
◆콩쿠르 수상 넘어 종주국에 안착=한국 클래식은 ‘대회 수상’ 수준을 넘어 성숙 단계로 접어들었다. 각각 2010년, 2022년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은 세계 일류 콘서트홀을 매진시키고, 오케스트라와 정기적으로 무대에 서며 활약 중이다. 지휘자 정명훈은 오페라의 종주국인 이탈리아 라 스칼라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됐다.

이런 스타들이 클래식 시장을 견인한 영향으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 음악가는 곳곳에 포진해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는 비올리스트 박경민이 6년째 정식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빈 필하모닉에서도 첫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인 조해나가 9월 정식 단원이 될 예정이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이 450여년 역사상 첫 동양인 악장으로 활동 중이며, 프랑스 파리의 명문 악단인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악장 또한 한국인인 박지윤이다. 지난달 진은숙이 새로운 오페라 ‘달의 어두운 면’을 초연한 독일 함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는 한국인 단원 8명이 활동 중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이러한 한국 클래식의 수준에 주목했다. 이달 3~10일(현지시간) ‘서울’을 주제로 LA의 월트 디즈니홀에서 페스티벌을 열었다. 2020년 팬데믹으로 연기됐던 축제다. 축제의 예술 감독을 맡은 작곡가 진은숙은 한국의 젊은 작곡가, 지휘자, 음악가들을 8일 동안의 무대에서 소개했다. 특히 한국 작곡가들의 새로운 작품을 집중 조명했다.

LA의 서울 페스티벌. 6월 3~10일. 사진 LA필하모닉

LA의 서울 페스티벌. 6월 3~10일. 사진 LA필하모닉

 
LA타임스는 6일 기사에서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에 대해 “빛나는 시적인 지휘자”(최수열), “매혹적인 집중력의 플루티스트”(김유빈)와 같은 리뷰를 전했다. 또한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음악가들이 각자 개인적인 음향을 추구했다”고 덧붙였다. 진은숙은 “한국은 현재 대단한 음악 강국이다. 나라의 크기를 생각했을 때 놀라울 정도이고, 비교할 나라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