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새벽 2시 공군 충주기지에서 이륙한 KF-16 편대가 약 9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미국 현지시간으로 4일 18시 알래스카주 아일슨 기지에 착륙해 지상활주하고 있다. 공군
12일 공군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건 3기 중 2호기다. 사고기 조종사는 한국시간으로 전날(11일) 오전 9시 2분 공중전술(Air Combat Tactics)을 위해 이륙을 시도하다 유도로(주기장에 있는 항공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할 때 이용하는 도로)에서 기체를 파손시키고 비상탈출했다. 공군 관계자는 “미 공군 관제탑이 1번기가 유도로 상에서 이륙하는 것을 보고, 2번기에게 이륙 취소를 지시했지만 2번기는 정지거리가 부족해 항공기를 제대로 정지시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2번기는 3000ft(약 914m) 이상 길이의 유도로 끝단을 지나쳐 풀밭 지역에 멈춰 섰고, 이 과정에서 항공기에 불이 붙었다. 비상탈출한 사고기 조종사 2명은 큰 부상 없이 경미한 화상 등을 입었다고 한다.
원래는 해당 편조가 주기장을 나온 뒤 첫 번째 갈림길에서 직진하고, 길이 1만1000ft(약 3352m)의 활주로로 향해야 했지만, 우측으로 꺾어 유도로로 진입했다. 군 관계자는 “한국 공군기지는 활주로와 유도로의 폭이 각각 150ft(약 45m), 75ft(약 23m) 정도라 차이가 있다”며 “하지만 아일슨 기지는 유도로의 폭이 300ft(약 91m)로 활주로와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낯선 환경에서 순간적으로 착각을 일으켰을 수 있다는 의미다. 3기 조종사 모두 이전에 아일슨 기지에서 실제 비행한 경험이 없었다는 점도 실수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레드플래그 훈련 참가를 위해 공군 충주기지에서 출발한 KF-16이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주 아일슨 기지에 착륙해 환호를 받고 있다. 공군
그럼에도 해당 조종사들 중 누구도 사전에 착오를 눈치 채지 못한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사고가 난 편조 구성을 보면 1·3번기는 혼자 타는 단좌, 2번기는 두 명이 타는 복좌로 이뤄졌다. 그런데 처음 유도로로 잘못 진입한 1번기를 2·3번기가 맹목적으로 따랐다. 1번기는 활주로가 아니지만 이륙에 성공했고, 3번기는 2번기의 사고를 목격하고 이륙 시도를 하지 않아 사고가 나지 않았을 뿐 4명의 조종사 모두 활주로가 아닌 유도로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모의 훈련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따져볼 문제다. 공군 관계자는 “참가 조종사 30명이 결정된 건 지난 3월 초로, 같은 달 말부터 시뮬레이터 등을 통해 해당 기지 환경을 조성하고 연습했다”며 “현지에서도 기지 관련 교육(국지절차)을 미 측 요원이 2회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이런 착오가 일어난 건 해당 훈련이 실제 비행을 준비하는 데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공군 조종사 과실로 드러난 전투기 사고는 올해만 벌써 세 번째다. 지난 3월 6일 경기 포천 KF-16 민가 오폭 사고는 조종사의 좌표 입력 실수에서 비롯됐다. 지난 4월 16일에는 경공격기 KA-1 조종사가 히터 풍량을 조절하려다 비상투하 버튼을 잘못 눌러 외부 장착된 기관총과 실탄이 지상에 떨어졌다.
연이은 사고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는 공군의 다짐도 무색해졌다. 특히 이번 사고는 KA-1 사고 직후 시작된 '비행 안전과 신뢰 회복을 위한 100일의 약속'이라는 프로젝트 중 발생했다는 점에서 각종 후속 조치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군 안팎에선 12·3 비상계엄 사태 후 어수선한 시국에서 군 기강이 전체적으로 느슨해진 분위기가 사고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공군 관계자는 “사고 원인이 항공기의 기계적 결함이 아닌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레드 플래그 훈련에 계속 참가하기로 했다”며 “공군은 통렬한 반성과 실효성 있는 후속 조치를 통해 유사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