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비 파울스턴 로버트 월터스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로버트 월터스
“젊은 직장인 사이 관리자로의 승진을 피하는 ‘의도적 언보싱(conscious unbossing)’이 트렌드가 되면서 전 세계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채용 컨설팅 기업 로버트 월터스의 토비 파울스턴(51)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최근 채용·이직 시장의 트렌드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로버트 월터스는 전 세계 30개국에 지사를 두고 채용 아웃소싱·컨설팅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지원자에게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커리어 관리도 지원한다. 국내 사업 점검을 위해 방한한 파울스턴 CEO를 최준원 한국 지사장(39)과 함께 만났다.
로버트 월터스는 의도적 언보싱의 원인으로 ‘관리자가 되면 책임은 커지고 보상은 따라오지 못하는 시스템’을 지목했다. 이 회사가 지난해 영국 Z세대 근로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2%는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한국에서도 잡코리아가 MZ세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4.8%는 “임원 승진 생각이 없다”고 했다.
파울스턴 CEO는 “직장 내에는 Z세대부터 밀레니얼 세대, 베이비붐 세대 등 6개의 세대가 함께하는 만큼 세대 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며 “기업이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유연한 인사관리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다양한 경력 트랙을 제도화하고, 일률적인 인사평가 항목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최 지사장 역시 “최고의 성과를 내는 직원이 최고의 관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승진이 성공의 척도가 아닌 시대”라며 “한국 기업도 직원들에게 승진이 아닌 다른 동기부여를 찾아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LG전자 등 기업들은 최근 ‘명장’ ‘전문위원’ 같은 전문가 트랙을 확대하고 있다.
수직적 승진을 목표로 하는 직장인이 줄어들면서 새로운 기술이나 역량을 훈련하는 ‘리스킬링(Reskilling)'도 트렌드로 떠올랐다. 파울스턴 CEO는 “리스킬링은 개인의 흥미, 역량, 삶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커리어를 설계하는 개념”이라며 “승진을 위해 기존 직무 역량을 향상하는 ‘업스킬링(Upskilling)'과 대비된다”고 설명했다.

토비 파울스턴 로버트 월터스 최고경영자(왼쪽)와 최준원 한국 지사장이 지난 2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로버트 월터스
파울스턴 CEO는 최근 인공지능(AI) 시대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AI가 많은 것을 자동화했지만, AI의 발전에 따라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경쟁력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로버트 월터스 조사에 따르면 올 4월 전 세계 머신러닝 분야 일자리는 올 1월 대비 87% 증가하며 지속적인 수요를 보였다. 같은 기간 데이터 엔지니어 직무 역시 46% 증가했다.
한국의 고령화·인력난에 대한 해법으로는 ‘시니어 계약직 채용’을 제시했다. 영국은 2011년 65세 정년을 폐지한 뒤 계약직 등으로 고령 전문 인력의 재고용이 활발해졌고, 독일은 제조업 등에서 젊은 인력들이 고령 숙련자로부터 일을 배우는 ‘이중교육제도’를 시행 중이다. 파울스턴 CEO는 “유럽에선 코로나19 이후 고령 인력이 삶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좀 더 유연한 직무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라며 “고령화가 심각한 한국도 고령 인력을 어떻게 다시 사회로 편입시킬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 지사장은 “고령 인력과 청년 인력의 대립이 아니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시니어는 파트타임·계약직 등 유연한 근무 형태로 고용하면서 청년에게는 정규직 기회를 확대한다면, 고용 기간과 업무 강도를 조절해 두 세대가 동시에 일할 수 있고 고용주의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