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열린 배움의 길…AI로 '맞춤형 교육복지' 실현" [고성환 방송대 총장]

고성환 한국방송통신대 총장. 방송대 제공

고성환 한국방송통신대 총장. 방송대 제공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상당수 국내 대학들이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한국방송통신대학교(방송대)의 상황은 다르다. 한때 ‘중장년층의 재교육 기관’이란 통념이 있었지만, 최근엔 2030세대의 유입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올해(2025학년도) 재학생 약 9만 명 중 2030의 비율이 43%에 이른다. 특히 컴퓨터과학과의 경우 재학생 80% 이상이 20·30대 학생이다.

10일 오전 서울 동숭동 대학본부에 만난 고성환 방송대 총장은 “이제는 학교의 이름값보다 무엇을 배우느냐가 젊은 세대에게 중요한 가치가 됐다”면서 “시간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방송대의 강점이 2030과 잘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고 총장과의 일문일답.

방송대로 향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요즘 20대는 실용성과 효율성을 중시한다. 시간을 자산처럼 여기는 세대다.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 실무 중심의 커리큘럼, 합리적인 학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방송대를 선택한다. 굉장히 영리한 선택이다. 이제는 기업도 학교 이름보다 실무 역량을 더 중요하게 보고 사원을 채용하는 시대다. 이런 흐름 때문에 방송대가 매력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AI(인공지능) 기술까지 접목되면서 ‘맞춤형 교육’의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그동안 방송대가 안고 있던 대량 교육의 한계를 AI가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 질이 높아지면서 젊은 세대의 유입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AI를 어떻게 도입하는가.
방송대는 대규모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기관이다. 한 강의를 (일반 대학처럼) 20~30명이 아니라 수천 명이 수강하는 경우도 많다. 기존 수업은 콘텐트를 제공한 뒤 (온라인) 게시판에서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수준이었다. 학생이 기말고사에서 80점을 받으면 B학점을 주고 말았다. 학생이 실제로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정밀한 진단은 불가능했단 얘기다. 하지만 AI가 도입되면 달라진다.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분과 적분은 잘하지만 인수분해에 약하다’는 식의 분석이 가능하고, 그에 맞는 추가 학습 콘텐트나 과목을 추천할 수 있다. 현재 방송대는 이러한 AI 기반 맞춤형 학습 시스템인 ‘AIDU(AI Digital University)’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AI 교육도 방송대의 역할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국민 누구나 AI에 대한 기본 소양을 갖춰야 하는 시대다. 정부가 지역거점 국립대 9곳에 AI 단과대학 설립을 검토 중인데, 이는 고등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전문 인력 양성 과정이다. 하지만 이런 전문 인재 양성과는 별도로, 전 국민이 AI를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방송대는 50시간, 100시간 등 단기 수료 중심의 실용적인 AI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수요를 충족시킬 계획이다. 기초 과정을 통해 흥미를 느낀 학습자들은 학위나 대학원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다. 방송대는 이미 전국 단위의 방송 인프라와 모바일 교육 플랫폼을 갖추고 있어, 이같은 실용 교육을 제공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정부가 이처럼 잘 갖춰진 인프라를 가진 방송대를 더 적극적으로 교육 도구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1972년 개교한 방송대는 영국의 개방대학(Open University·1969년 설립)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대학교육을 원격 방식으로 실현한 교육기관이다. 젊은 세대의 유입이 늘고 있지만, 평생교육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배움의 의지를 품고 찾아오는 중장년층도 여전히 많다.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다면.
학생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얘기다. "국문과 다닌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맞춤법 많이 물어보지 않냐"고 물으면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 "그런데 배워도 맞춤법 잘 모르는 건 비슷하지 않냐"고 물으면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학생들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는, 스스로가 맞춤법을 잘 모른다는 걸 안다는 점이란 얘기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게 공부의 출발점이라고 하면 학생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공부는 시작도, 끝도 겸손함이다. 중장년층 학생에게 이 점을 자주 강조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꼭 필요한 가치인 듯 하다. 
세대 간 불통과 자기 주장만 앞서는 시대엔, 겸손을 가르치는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겸손해져야만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들을 수 있다. 내가 모른다는 걸 인정해야 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생 교육을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부족하다'는 겸손함을 통해 소통을 회복하는 매우 의미 있는 지점이라고 본다. 나는 학생들에게 '언덕(言德)'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말로써 덕을 쌓는다는 뜻인데, 남의 얘기를 진정성을 가지고 들어주는 것 자체가 덕을 베푸는 일인 것 같다. 
 

앞으로 방송대가 나아갈 방향은.
방송대에 오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다. 재취업을 준비하는 실용적인 교육을 원하는 사람, 그리고 순수한 학문적 관심으로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이다. 두 영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킬 계획이다. 첨단 분야 자격증의 취득이 가능한 새로운 학과, 단기 교육 프로그램을 더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한편 문학·사학·철학 등 인문학 분야의 가치도 지켜나갈 것이다. 특히 인문학은 다른 대학들에선 구조조정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 때문에 평생교육 관점에서 인문학을 지켜가는 방송대의 노력과 역할이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고성환 총장=1981년 서울대 국어국문과를 입학해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교무부처장, 교양교육원장, 인문과학대학장, 통합인문학연구소장 등의 보직을 거쳤다. 2022년 3월 8대 총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