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간담회 자주 하자" 요청에…李 "언제든 폰으로 연락 달라"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13일 이재명 대통령과 재계의 첫 간담회는 당초 예정됐던 60분을 훌쩍 넘겨 140분간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야기했다. 이 대통령이 실용주의를 내건 만큼 효율적인 회의였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 취임 9일 만에 열린 이번 간담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 5대 그룹 총수가 총출동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등 경제단체장도 참석했다.

“분위기 좋아…규제 합리화 언급 긍정적”

이 대통령은 재계와의 소통 의지를 강조했다. 간담회는 기업인들이 돌아가며 의견을 말하고, 이 대통령이 그때그때 궁금한 것을 묻고, 배석한 정부 관료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이 “이런 회의를 자주 하면 굉장히 효과가 있을 것 같다. 현장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자 이 대통령은 “회의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휴대전화로 연락해 달라. 메시지 등을 남겨 놓으면 꼭 다 읽어보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전반적으로 좋은 분위기 속에서 통상 등 우리 경제의 현안을 논의했다”라며 “대통령이 내용을 많이 아시니까 꼼꼼하게 들어주셔서 믿음이 갔다. 규제 합리화를 언급한 부분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규제 합리화 문제에 주력하려고 한다”라며 “행정 편의를 위한 규제들은 과감하게 정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재용 회장이 이 대통령 당선 후 자서전을 읽어봤다고 말하자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등 간담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재계, 민감한 이슈는 언급 ‘자제’

재계는 첫 상견례 자리인 만큼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 간담회 중 상법 개정안에 대한 언급이 나오긴 했으나, 강한 반대 의견보다는 이해관계자 간담회 등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노란봉투법과 정년 연장 등에 대한 논의는 오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상속세 완화에 대해서는 재계와 시각차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최진식 중견련 회장은 간담회에서 “기업의 지속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상속증여세 개선과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며 “산업용 전기료도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건의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용 “국내 투자·고용 차질 없이 이행”

이날 간담회는 이 대통령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앞두고 마련된 만큼 통상 위기 극복이 주요 의제였다. 재계는 민관이 ‘원팀’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회장은 “이번 경제 위기도 대통령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민관이 힘을 합친다면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예정된 국내 투자와 고용을 차질 없이 이행해 어려운 경제 상황을 헤쳐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은 “기업인들이 사업을 결정하거나 투자를 하는 데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오늘 자리가 민관이 긴밀히 공조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를 모으는 뜻깊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구광모 회장은 “첨단 분야는 주요 국가들이 자국 중심의 생태계를 강화하며 국가 간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어 이제 기업을 넘어 국가 차원의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미국의 관세 조치로 피해를 보는 기업에 대한 지원책 마련, 내수회복 방안 등을 건의했다. 윤진식 회장은 “최소한 경쟁국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에서 협상이 타결되기를 기대한다”며 “정부가 관세 피해를 본 수출 기업에 대한 파격적이고 신속한 재정·세제·금융 지원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 손경식 회장은 “미국·중국 중심에서 벗어나 수출입 다변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보험금융 등 적극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진 회장은 “내수활성화를 위해 이번 여름휴가 시즌부터 대대적인 국내 휴가 보내기 캠페인으로 내수회복의 불씨를 살리는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김기문 회장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많이 어려운데, 현장에 대통령께서 나와 중소기업인들을 격려하고 간담회를 개최해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의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의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정권 출범 때마다 재계 상견례 ‘주목’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과 재계의 첫 만남은 새로운 국정 기조를 알리는 상징적 순간으로 주목받아 왔다. 정권마다 스타일도 메시지도 달랐지만, 공통으로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을 전달하고 협조를 구하는 자리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12월 당선 직후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관을 직접 찾아 대기업 총수들을 만났다. 이 전 대통령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재계 의견을 전폭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다소 다른 톤으로 재계를 대했다. 전례와 달리 중기중앙회 회장단, 소상공인연합회 임원단과 티타임을 먼저 가진 뒤 전령련 회관에서 대기업 총수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대기업이 고통 분담에 나서야 한다”는 등 쓴소리를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7월 이틀에 걸쳐 재계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호프 미팅’과 ‘칵테일 타임’이라는 형식파괴를 통해 경직된 분위기를 풀면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일자리 창출 등 의제를 꺼내는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문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3월 당선 직후 삼청동 인수위원회 사무실로 경제 6단체장을 초청했다. 그는 “언제든 직접 통화할 수 있게 하겠다”며 ‘핫라인’ 구축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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