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아침 10시. 서울 안국동의 빵집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하 런베뮤)’ 앞에는 이미 40~50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웨이팅 순서를 보니 매장 식사 91팀, 포장 20팀이 기다리고 있다. 아침부터 이런 상황이고 보니 요즘 런베뮤 근처 사무실들에선 손님 접대용 다과와 선물로 런베뮤 베이글이 인기라고 한다.
디지털에선 성수동 소금빵 맛집 ‘베통’과 ‘자연도’를 비교하는 글이 계속 올라온다. 내외국인 미식가들이 드나드는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베이커리 ‘더 델리’에선 6월 한 달간 프리미엄 소금빵 6종을 선보이는 프로모션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베이글 프로모션이 반응이 좋아 이번에는 다양한 소금빵으로 고객들의 만족도를 올리겠다는 전략이다.
베이글은 서양 빵, 소금빵은 동양 빵 속에 버터를 넣고 구워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빵 위에 소금을 뿌린 ‘소금빵’. 최영재 기자
한국처럼 유행이 빨리 변하는 나라에서 베이글과 소금빵의 인기는 지난 몇 년 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왜?
밀가루, 물, 소금, 이스트를 넣은 반죽을 동그랗게 만들고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후 오븐에 구워내는 ‘베이글’은 쫄깃함이 특징이다. 최영재 기자
동유럽 유대인들이 주식으로 먹던 베이글은 밀가루, 물, 소금, 이스트를 반죽해 숙성시킨 다음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고, 끓는 물에 넣어 3분의 1정도 데쳐내는 게 특징이다. 베이글 특유의 쫄깃함은 이 데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베이킹 아카데미 ‘사계’의 홍상기 대표는 “베이글은 굽는 과정도 중요하다”며 “흔히 베이글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뉴욕 스타일’과 ‘몬트리올 스타일’의 차이는 굽기에서 갈린다”고 했다.
19세기 초 유대인들이 미국 뉴욕과 캐나다 몬트리올로 대거 이주하면서 ‘뉴욕 스타일’ ‘몬트리올 스타일’ 베이글이 만들어졌다. 둘의 차이점은 반죽부터 시작된다. 몬트리올 베이글은 반죽에 꿀 시럽을 추가하고, 끓는 물에 데칠 때도 물에 꿀을 섞는다. 때문에 표면에 윤기가 더 많고 뉴욕 스타일 베이글보다 약간의 단맛이 있다. 굽는 과정은 확연히 다르다. 기본적으로 베이글은 표면에서 약간 띄워서 굽는데 이때 뉴욕 스타일은 가스오븐에서 굽고, 몬트리올 스타일은 화덕에서 굽는다. 런베뮤와 함께 서울 베이글 맛집으로 꼽히는 ‘코끼리 베이글’이 정통 몬트리올 방식이다.
담백한 맛의 베이글을 반으로 갈라 잠봉햄, 버터, 쪽파, 치즈 크림 등 다양한 맛을 가미한 ‘런던 베이글 뮤지엄’의 베이글. 최영재 기자
베이글과 같은 반죽에 버터를 첨가해 굽고, 빵 위에 소금 알갱이를 뿌린 소금빵은 2003년 일본에 있는 ‘빵 메종’ 베이커리에서 처음 만들었다. 남은 바게트 반죽으로 새로운 빵을 고민하던 사장이 “프랑스에서는 소금을 뿌린 빵이 유행”이라는 아들의 말을 듣고 개발한 것이다. 일본어로 소금이 ‘시오(しお)’라 ‘시오빵’이라 부르게 됐고, 한국에서도 이를 그대로 번역해 ‘소금빵’으로 불린다.
담백한 맛의 베이글을 반으로 갈라 잠봉햄, 버터, 쪽파, 치즈 크림 등 다양한 맛을 가미한 ‘런던 베이글 뮤지엄’의 베이글. 최영재 기자
반죽에 버터와 설탕을 넣었으니 기본적으로 소금빵의 식감은 부드럽다. 여기에 소금을 뿌렸으니 말 그대로 젊은 층이 좋아하는 극강의 ‘단짠’을 맛볼 수 있다. 그런데 홍 대표는 “진짜 소금빵의 매력은 빵 바닥에 있다”고 한다. 소금빵을 만들 때 생지를 돌돌 말아 성형을 하면서 그 안에 버터를 넣어 굽기 때문이다. 빵 속살을 촉촉하게 적신 버터가 밖으로 흘러나와 오븐의 뜨거운 열과 만나면 빵 바닥이 살짝 튀겨진다는 것. 그래서 소금빵을 뒤집어 보면 갈색이 진하고 누룽지처럼 바삭바삭한 질감을 갖고 있다. 이른바 ‘겉바속촉’이다.
누텔라 초콜릿, 카야 코코넛 잼 등을 토핑으로 얹은 그랜드 하얏트 호텔 ‘더 델리’의 소금빵. 최영재 기자
베이글을 주식으로 하는 미국이나 유럽에선 베이글을 반으로 갈라 크림치즈를 발라 먹는 정도가 기본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베이글 맛이 훨씬 더 화려하게 변주되고 있다. 샌드위치를 만들 때처럼 온갖 다양한 식재료를 베이글 속에 넣은 메뉴가 계속 개발되고 있다. 홍 대표는 “반찬 문화가 강한 우리는 베이글을 먹을 때도 다양한 맛을 원하고, 간식으로 먹을 때는 화려한 비주얼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런베뮤의 인기 메뉴도 양파·쪽파와 버무린 크림치즈를 듬뿍 넣은 ‘쪽파 프레첼 베이글’, 잠봉햄과 버터와 머스타드 소스를 가득 채운 ‘잠봉 버터 샌드위치’다.
한국인 입맛에 맞춰 다양한 변신 누텔라 초콜릿, 카야 코코넛 잼 등을 토핑으로 얹은 그랜드 하얏트 호텔 ‘더 델리’의 소금빵. 최영재 기자
소금빵의 변주도 다양하다. 소금빵 역시 반을 갈라 연어나 잠봉햄을 채운 메뉴가 있지만 소금빵의 변주는 빵 속에 무엇을 넣고, 빵 위에 무엇을 토핑으로 얹느냐로 다양성이 갈린다.
그랜드 하얏트 호텔이 이번에 선보인 6개의 소금빵 메뉴는 클래식과 트렌디함을 동시에 담은, 이른바 ‘소금빵의 새로운 발견’이 핵심이다. 동남아 감성을 담은 카야 코코 넛 잼 소금빵, 진한 초콜릿의 풍미가 돋보이는 누텔라 초콜릿 소금빵, 로투스 비스킷의 달콤한 매력을 살린 로투스 소금빵, 고소함이 가득한 치즈 소금빵 등이다. 이재진 제과부 과장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소금빵 특유의 식감에 풍미 깊은 재료들을 더했다”며 “단순한 간식 이상으로, 고품질의 재료와 감각적인 데코레이션을 더해 맛은 물론 비주얼까지 미식의 즐거움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오리지널 베이글의 담백함, 소금빵의 단짠 풍미는 기본. 여기에 한국인의 취향이 듬뿍 얹어져 다양한 맛으로 변주되고 있는 베이글과 소금빵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 될 것 같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