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이 준 선물 '자염' 전통방식 복원…쓴맛 없고 고운 입자로 인기

자염(煮鹽)은 갯벌을 끓여내는 전통방식으로 생산하는 소금이다. 마른 갯벌 흙에 바닷물을 투과해 염도를 높인 뒤 10시간에 걸쳐 은은한 불로 끓이면 입자가 곱고 염도가 낮은 소금으로 변한다. 끓이는 동안 거품(불순물)을 걷어내 쓴맛과 떫은맛이 사라지고 구수한 풍미가 생긴다. 천일염보다 칼슘 함량이 높고, 유리아미노산도 포함돼 감칠맛이 풍부해진다.

지난 6월 9일 충남 태안군 근흥면의 한 농업법인에서 자염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 태안군]

지난 6월 9일 충남 태안군 근흥면의 한 농업법인에서 자염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 태안군]

자염은 끓일 때 수증기와 함께 잡냄새가 날아가고 살균 효과도 있어 세균에 의한 오염이 발생하지 않고, 미네랄이 그대로 남는다. 김장할 때 자염을 사용하면 유산균 개체 수가 늘어나 발효가 더 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태안 등에서 생산

자염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충남 태안을 비롯해 서해안에서 생산, 오랜 기간 한식의 필수 재료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일제가 강점을 시작한 1900년대 초반 땔감 없이 대량 생산이 가능한 천일염 생산 기술이 급속도로 확산하자 자염은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1960년대 들어 거의 자취를 감췄다.

자염은 2001년 국내 최초로 충남 태안에서 복원되면서 다시 국민의 식탁 위에 올랐다. 태안군 근흥면 마금리에 위치한 한 농업법인이 옛 그대로의 전통 방식으로 연간 20~30t의 자염을 생산하면서 명맥을 되살렸다. 천일염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공정 탓에 생산량은 적지만 품질이 뛰어나 미슐랭 셰프 등 유명 요리사가 즐겨 찾는 고급 식재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충남 태안군 근흥면의 한 농업법인에서 생산한 자염. [사진 태안군]

충남 태안군 근흥면의 한 농업법인에서 생산한 자염. [사진 태안군]

천일염이 보급되기 전 우리나라에서 소금은 자염이 유일했다. 자염이 자취를 감춘 뒤 업계는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염의 복원 없이는 우리나라 전통 음식 맛도 온전히 재현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고 제작과정을 기억하는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아 쉽게 복원을 추진하기도 어려웠다.


일본강점기 '천일염' 보급으로 자취 감춰 

2001년 태안문화원이 당시 정낙추 이사를 중심으로 지역 노인의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과거 태안의 명물이었던 자염 되살리기에 나섰다. 오랜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쳐 태안 만의 전통방식인 통자락 방식(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갯벌 간통에 해수를 모으고 소(牛)로 써레질하는 방식)으로 자염 복원에 성공했다.

이후 정 이사는 농업법인을 설립하고 20여년간 근흥면 마금리에서 자염을 생산해오고 있다. 마금리는 ‘낭금 갯벌’이 있는 곳으로 조금(바닷물이 덜 빠지고 덜 들어오는 시기)이 되면 7~8일간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전국에서 유일하게 자염 생산이 가능한 곳으로 남아 있다.

지난 6월 9일 충남 태안군 근흥면의 한 농업법인에서 자염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 태안군]

지난 6월 9일 충남 태안군 근흥면의 한 농업법인에서 자염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 태안군]

힘든 복원작업을 거쳐 명맥을 유지하게 된 자염은 다양한 풍미와 풍부한 영양소를 갖춘 재료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13년 경기 남양주에서 열린 슬로푸드 국제 대회에서는 한국 식재료 중 8번째로 ‘맛의 방주’에 선정됐다. 소멸 위기를 겪고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의 가치를 빛낸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2013년 '맛의 방주' 선정…소중한 문화유산

태안군 관계자는 “소금 생산에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춘 태안은 게장과 게국지, 우럭젓국 등 염장 음식이 발달한 곳”이라며 “자염을 비롯해 우수한 지역 유산을 문화관광 콘텐트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