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철이 US스틸 인수라는 ‘반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조 바이든 정권과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반대를 넘어 인수에 성공했다. 일본제철은 지난 1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US스틸 인수와의 파트너십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인한 행정명령엔 국가안보협정(NSA) 체결 등 조건이 충족되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수 불허 명령을 수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2월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일본제철이 외교전으로까지 비화했던 인수전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인수 승인을 얻어낸 데엔 ‘황금주’가 있다. US스틸을 인수하는 대신 주요 경영 사항에 대해 ‘거부권’이 있는 주식인 황금주를 발행해주기로 한 것이다. 일본 철강산업을 대표하는 일본체절이 미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불리는 US스틸을 품에 안는 데 대한 미국의 거부감을 완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본제철과 미국 정부와의 사이에서 황금주 부여, 2028년까지의 약 110억 달러(약 15조원) 투자 등이 기재된 국가안전보장협정은 이미 체결된 상태다. 일본제철은 “트럼프 대통령과 정부의 리더십, 일본제철과 US스틸의 역사적 파트너십에 대한 과감한 지원에 감사하다”며 “미국의 제조업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약속의 실행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18일까지 인수작업을 마무리하면 일본제철은 세계 4위에서 3위의 철강회사로 한 단계 뛰어오르게 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본사를 두고 있는 US스틸. 1901텬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등이 세운 회사로 미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불린다. 한때 세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경영악화로 시장에 매물로 나온 바 있다. AFP=연합뉴스
일본 철강산업을 대표하는 일본제철이 미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불리는 US스틸 인수에 뛰어든 것은 2023년 12월의 일이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와 맞물리면서 전미철강노동조합(USW) 반대 등으로 인수전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정치 문화로 비화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가 나서 인수 승인을 해달라는 친서를 보냈지만 바이든 정권은 인수 불허 결정을 내렸다. 일본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동맹국인 일본에 부당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소송까지 불사했던 인수전 기류가 변화한 것은 지난 2월 양국 정상회담이었다. ‘투자’를 앞세워 역사가 120년이 넘는 US스틸의 주인이 바뀌는 데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나섰다. “US스틸은 미국이 지배한다”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황금주를 쥐여준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중요 기업을 외국에 팔아넘겼다는 인상을 희석시키는 목적이 미국 정권에 있다고 보여진다”고 평했다.
일본제철은 이번 인수 성사로 한숨을 돌리게 됐지만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우선 막대한 투자자금이다. US스틸을 100% 완전 자회사로 만드는 데 투입될 자금은 141억 달러(약 19조2800억원). 여기에 2028년까지의 투자금 110억 달러를 포함해 추가금 등을 포함하면 약 140억 달러(약 19조1400억원)의 소요될 전망이다. 경영악화로 시장에 매물로 나왔던 US스틸을 일본제철이 비싼 값에 인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아사히는 “투자액이 당초 약속의 10배”라고 지적했다.
황금주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정권 손에 들어간 황금주로 인해 일본제철이 경영 자유도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냐는 것이다. 황금주의 권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지만 경영에 일정한 ‘제약’이 따르는 것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몸집을 불린 일본제철이 ‘이익’을 낼 수 있느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미국의 철강 사용량은 일본의 1.7배. 자급률은 70%대로 아사히는 일본제철이 이번 인수로 얻고 싶었던 것이 ‘미국 시장으로의 입장권’이라고 평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정리해고나 생산 재편 등 재건을 위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면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우려도 지울 수 없다”고 전망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