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씨앗 1만종 발굴 토종지킴이, 변현단 [홍진기 창조인상-사회부문]

박진영·변현단·이하느리, 홍진기 창조인상 오늘 시상식
재단법인 중앙화동재단(이사장 홍석현)은 제16회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자를 선정했다. 왼쪽 사진부터 ▶과학기술 부문 박진영(43) 미국 뉴욕대 교수 ▶사회 부문 변현단(61) 사단법인 토종씨드림 대표 ▶문화예술 부문 이하느리(19) 작곡가다. 시상식은 19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빌딩에서 열린다.

[홍진기 창조인상 사회 부문] 변현단 (사)토종씨드림 대표

●1964년생 ●2004년 자활공동체 연두농장 운영 ● 2008년 토종씨드림 결성, 토종씨앗 조사 수집 (2024년까지 1만 점 수집) ●2012년 토종학교 개설 ●2017년 은은가 채종연구포 개설 ●2022년 토종종자 관리시스템(DB) 개발 ●2025년 토종씨드림 연구소 개설

●1964년생 ●2004년 자활공동체 연두농장 운영 ● 2008년 토종씨드림 결성, 토종씨앗 조사 수집 (2024년까지 1만 점 수집) ●2012년 토종학교 개설 ●2017년 은은가 채종연구포 개설 ●2022년 토종종자 관리시스템(DB) 개발 ●2025년 토종씨드림 연구소 개설

농사의 근원은 씨앗이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내년 뿌릴 종자를 베고 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요즘은 굳이 농가에서 씨앗을 보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현대적 연구개발 시스템을 갖춘 종자회사가 개발한 씨앗을 사서 쓰기 때문이다. 수확량이 늘고 수익도 높아졌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나타난다. 사서 쓰는 종자는 2대 이후 수확이 잘 안 된다. 또 종자회사가 보급하는 경제성 높은 단일 품종을 대량 재배하는 농법이 자리 잡으면서 점차 종(種) 다양성도 소멸하고 있다. 최근엔 기후변화로 특정 품종이 큰 타격을 입는 일이 잦아졌다. 각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해 조금씩 진화한 다양한 품종의 토종 씨앗이 귀한 몸이 됐다.

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는 토종 씨앗을 발굴·육종·보급하는 일을 17년째 해왔다. 평범한 직장인의 길을 걷다 마흔에 접어들며 도시 생활을 접고 귀농했다. 이웃이 맛이나 보라며 준 옥수수를 남겨 이듬해 심었다가 실패를 하고 나서야 2대 수확이 안 되는 종자(F1)가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옥수수뿐 아니라 대부분의 작물이 그랬다. 그 해답을 찾다 보니 2008년 토종씨드림 창설로 이어졌다.

해마다 전국을 돌며 토종 씨앗을 수집했다. 지금까지 1만종 넘게 모았다. 품종과 지역을 분류하고, 2~3년 육종 과정을 거쳐 보전 가치와 경제성을 확인했다. 이를 위해 은은가(隱誾家)라는 채종포(採種圃)도 운영한다. 이렇게 얻은 씨앗을 전국 회원들에게 보급하고, 결과를 기록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일부는 농진청 씨앗은행과 경북 봉화의 씨드 볼트(종자보관소)에도 보낸다. 정부 산하기관 정도는 돼야 엄두를 낼 법할 일이다.

지난해에는 기후 변화가 더 심해지면서 농업도 충격이 컸다. 봄 추위에 과수 꽃이 다 떨어지는 바람에 과일 가격이 폭등했다. 뒤이어 감자, 배추, 상추 등이 차례로 피해를 봤다. 반면 종 다양성을 유지해온 토종씨드림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어 존재의 이유가 한층 뚜렷해졌다.


변 대표는 요즘 곧 닥칠 장마에 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는 “올 상반기 온도 차가 지나치게 컸고, 장마도 길어질 것으로 보여 여름작물 작황이 걱정된다”며 “이상 기후가 일상이 되고 있으니 그에 적응하는 종자와 농법이 더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씨앗 운동가가 사회 분야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 변화된 상황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한 결과인 듯해 더 의미가 깊다”고 소감을 밝혔다.

토종씨드림은 올해 연구소를 개설하면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동안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에 도감·지도·문화사 등 인문적 옷을 입히는 것과 토종 작물로 만든 음식으로 치유의 방법을 찾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의 길이다. 변 대표는 “토종 씨앗이 전업농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다양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생존할 수 있고 사회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홍진기 창조인상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 발전기에 정부·기업·언론 분야에서 창조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던 고(故) 유민(維民)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16회를 맞은 올해의 수상자들은 각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과 함께 혁신적인 창의성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새 비전을 제시해 대한민국의 힘과 긍지를 세계에 떨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는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오준호 KAIST 석좌교수, 유명희 KIST 명예연구원, 김은미 서울대 교수, 주완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김봉렬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가 맡았다. 오세정 심사위원장은 “창조인상 수상자뿐 아니라 뛰어난 여러 후보자를 심사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리더들의 높은 창의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민(維民) 홍진기(1917~86)=한국 최초 민간 방송인 동양방송(TBC)을 설립하고  중앙일보를 창간해 한국의 대표 언론으로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