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통계적 생명의 가치
‘안전속도 5030’ 정책이 전국에서 전면 시행된 지도 어느덧 4년이 넘었다. 이 정책으로 도시부 지역 차량 제한속도가 일반도로는 시속 60㎞에서 50㎞로, 이면도로는 시속 40㎞에서 30㎞로 낮아졌다. 이후에 몇몇 도로의 제한속도가 다시 60㎞로 높아진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내에서는 50㎞’가 대다수의 운전자에게 습관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영화 ‘스턴트맨’의한 장면. [사진 유니버설픽쳐스]
정부가 이렇게 정책을 바꾸거나 공공사업을 수행하게 되면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비용-편익 분석이다. 공공사업에 들어가는 비용과 그 사업을 통해 발생하는 편익을 꼼꼼하게 따져서, 앞으로 할 일이라면 ‘이게 과연 할 만한 일인가’를 예측해 보고 이미 수행한 사업은 ‘잘 한 일인가’를 평가해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안전속도 5030 정책의 비용-편익 분석을 마음속으로 잠깐 해 본다면, 우선 비용이 제법 들었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도로표지판이나 차로에 페인트로 써 놓은 제한속도 같은 것들을 전국의 모든 도시부 도로에서 다 바꿔야 하고, 과속 단속 카메라의 경우 새로 설치하거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특히 차량의 평균속도가 낮아지면서 늘어나는 시간 비용이나 운송비 등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서울의 영동대로나 테헤란로 같은 큰 길이 오랜만에 좀 한산할 때 운전을 해 보면 시속 50㎞라는 제한이 좀 답답할 때도 있지 않나. 특히 상품을 한 개라도 더 배달하고 싶은 택배기사들이나 배달음식 라이더들은 속이 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또 이 정책을 국민에게 홍보하기 위해 사용한 비용도 무시할 수 없으리라 짐작이 된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꽤 복잡하다. 그래도 이런 비용들은 일단 마음먹고 시작해 보면 비교적 정확한 계산이 가능하다. 이미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어서 가격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화폐단위로 나와 있는 숫자들을 근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안전속도 5030 정책의 편익은 무엇일까
? 당연히, 시민의 안전이다. 차량 속도가 낮아지면 교통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낮아지고, 혹여 사고가 나더라도 중상이나 사망에 이를 확률이 낮아진다. 실제로 이 정책 시행 후 100일간의 자료를 분석해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안전속도 5030 적용 대상 지역 내에서 2020년 대비 2021년에 교통사고 사망자는 12.6
%, 보행자 사망자는 16.7
%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국 교통사고 사망자가 7.8
% 감소했고 보행자 사망자가 11.7
% 감소했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제한속도를 낮춘 곳에서 도로환경이 좀 더 안전하게 바뀌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면 이제 의문이 든다. 이 정도로 효과가 있다면 제한속도를 더 낮춰야 하지 않을까
? 2020년보다 상당히 줄었다고는 하지만 2021년 정책 시행 후 100일간 안전속도 5030 적용 지역 내에서 사망한 보행자는 139명이었다. 100일 동안 길을 걷다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 100명이 넘는데, 시속 50㎞가 아니라 40㎞나 30㎞로 더 낮춰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질문이 나오면 이제 경제학자는 고민에 빠진다. 속도를 더 낮추면 분명히 효율성도 낮아지고 비용이 더 발생할 텐데, 이보다 더 큰 편익이 나오는지 판단해 보려고 하니 편익이 화폐단위로 계산이 안 된다. 결국 사람의 ‘목숨값’을 알아야 답을 할 수 있는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사람의 생명과 ‘가격’이라는 말을 연결시키는 것 자체를 극도로 싫어한다. 사람 목숨은 값을 따질 수 없는 것, 무한한 가치를 가진 존엄한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물론 당연히 맞는 말이고, 필자를 포함한 경제학자들도 이 입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사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암묵적으로 인간의 생명에 어느 정도 정해진 수준의 가치를, 즉 무한하지는 않은 가치를 부여하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고려하고 있는 자동차 같은 교통수단을 먼저 떠올려 보자. 정말로 사람 목숨의 값이 무한하다면, 우리는 자동차나 비행기를 절대로 탈 수 없다. 그런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사망에 이를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0보다는 크고, 0보다 큰 어떤 확률에 무한대를 곱하면 무한대가 된다. 자동차를 이용할 때 아무리 큰 편익이 발생하더라도 사망 가능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의 기대치가 무한대라는 얘기다. 이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도심 ‘안전속도 5030’ 지난 2021년 도입 지난 2021년 도심 일반도로의 제한속도를 시속 50㎞로 낮추는 ‘안전속도 5030’ 정책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연합뉴스]
결국 사람의 목숨에도 그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어떤 유한한 값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을 ‘통계적 생명의 가치(Value of a Statistical Life, VSL)’라고 하는데 이 값이 얼마인지 계산하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연구를 하는 경제학자들도 여럿 있다. 보통 두 가지 방법론을 쓴다. 먼저 좀 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방식은 ‘인적 자본 접근법’이다. 누군가가 한창 일할 나이에 사망했다고 하면 ‘만약 이 사람이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평균 수명을 누렸다면 여생을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냈을까’하고 가정해 보는 거다. 사망자가 회사원이었을 경우 사망 당시의 월급, 그 회사에서 계속 일할 때 기대할 수 있는 호봉 승급과 급여 인상분 예상치, 평균적인 은퇴 연령 등을 고려해 보면 이 값을 찾아낼 수 있다. 생명보험 회사에서 실제로 많이 쓰고 있는 방식이고 민사소송 등이 있을 때 법정에서 사망자에 대한 보상금을 계산할 때도 쓴다.
통계적으로 생명의 가치를 계산하는 또 다른 방식은 지불의사 접근법이라고 부른다. 사망확률이 좀 더 높은 어떤 과업(task)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얼마를 지불하면 그 사람이 그 일을 받아들이겠느냐 하고 따져보는 방식이다. 사람들 중에는 남들보다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층빌딩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영화 촬영할 때 위험한 장면을 대신 연기하는 스턴트맨처럼. 이런 사람들이 받는 급여를, 비슷한 수준의 숙련도가 요구되는 비슷한 작업을 하는데 위험도만 상대적으로 낮은 일을 하는 사람이 받는 급여와 비교하면 위험에 대한 ‘프리미엄’을 구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좀 더 안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 그 프리미엄만큼의 돈을 지불했다고 (즉 급여를 덜 받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지불의사 접근법이라고 부른다.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의 사망확률이 얼마나 더 높은지, 그리고 그에 따르는 프리미엄이 얼마인지를 알면 생명의 가치를 추산해낼 수 있다.
교통 안전 정책의 편익은 시민의 안전 서울 도심의 고층빌딩 외벽을 청소하고 있는 작업자의 모습. 장진영 기자
이렇게 통계적인 기법으로 추산한 생명의 가치는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2017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960만 달러, 노르웨이는 1610만 달러, 스위스는 1460만 달러 등으로 높게 나타나고, 한국은 470만 달러로 스페인(490만 달러)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중국(140만 달러), 베트남(34만 달러) 등 한국보다 낮게 나타난 국가도 많다. 사람의 실제 목숨값이 이렇게 나라마다 다른 것인가. 노르웨이인과 베트남인 사이에 수십 배 격차가 나는 것이 정당한가. 당연히 아니다. 이런 통계가 의미하는 것은 평균적으로 인적 자본이 많이 축적되어 있고 생산성이 전반적으로 높은 나라에서는 똑같은 사람이라도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일 뿐이다. 같은 양의 자본과 자원을 가지고도 근로자의 교육수준이나 기술수준에 따라 생산량은 서로 달라진다. 바꿔 말하면 한국의 전반적인 교육수준이나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안전속도 5030과 같은 정책의 편익이 함께 높아진다는 얘기다. 운전자들이 이런 생각을 해 본다면 시속 50㎞가 좀 답답하더라도 더 자발적으로 정책에 협조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 주변의 소중한 인적자원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자기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이태환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와 스탠퍼드대에서 공부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한국경제의 다양한 측면을 연구했다. 주변의 사회문화 현상을 경제학으로 해석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SERICEO에서 5년 간 ‘세상만사 경제학’ 강의를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