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에 부활한 ‘오일장’…"지역소멸 막자" 상인·방문객 한뜻 [르포]

지난 18일 오전 11시30분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부시장과 서부시장 사이 ‘걷고 싶은 거리’. 대여섯살 정도로 보이는 자녀들의 손을 잡고 나온 젊은 부부는 골동품을 파는 천막 앞에 앉아 아이들에게 물건을 설명했다. 점포에는 수십 년 된 청동 기념품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 이름이 새겨진 기념시계까지 진열돼 있었다.

지난 18일 충남 태안군 태안읍에 오일장이 섰다. 지난해 6월 35년 만에 부활한 태안 오일장은 매달 끝자리가 3일과 8일에 열린다. 신진호 기자

지난 18일 충남 태안군 태안읍에 오일장이 섰다. 지난해 6월 35년 만에 부활한 태안 오일장은 매달 끝자리가 3일과 8일에 열린다. 신진호 기자

 
꽹과리를 보고 신기해하는 아이들에게 부부는 점포 주인의 동의를 받아 직접 두드려보며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설명했다. 부부는 “직장 때문에 태안에 내려온 지 몇 년 됐다. 작년부터 오일장이 생겨서 아이들과 자주 나온다”고 말했다.

태안 오일장 지난해 재개장…지역상권 활기

태안읍내에 오일장이 서면서 지역 상권에 활기가 돌고 있다. 골목에 마련된 오일장은 평일인 데도 오가기가 힘들 정도로 방문객이 많았다. 태안 오일장의 역사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강점기인 1918년 공설시장으로 허가를 받아 1970년대까지 태안읍사무소 부근 골목에 자리를 잡았던 구(舊)시장, 1970년대 이후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상가를 신축하고 들어선 신시장, 터미널 하차장에서 열린 노점상(도깨비시장) 등으로 변화를 거쳤다. 신시장은 현재 태안 동부시장, 도깨비시장은 태안 서부시장으로 불린다.

지난 18일 열린 충남 태안 오일장에서 전직 대통령 기념시계 등을 판매하는 골동품 점포. 신진호 기자

지난 18일 열린 충남 태안 오일장에서 전직 대통령 기념시계 등을 판매하는 골동품 점포. 신진호 기자

 
태안 오일장은 태안군과 서산시가 분리되던 1989년까지 동부시장 인근에서 성행했다. 오일장은 매달 끝자리가 3일과 8일마다 열렸다. 하지만 이후 상인들이 각자의 상설 점포를 중심으로 장사를 시작하면서 오일장이 사라지고 상설시장만 남았다.

민선 8기 들어 가세로 태안군수는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오일장이 다시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주민 의견을 듣고 오일장 부활을 추진했다.  동부시장, 서부시장 상인들과 협의도 거쳤다. “매출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상인도 있었지만,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소멸을 막자는 취지에 상인 대부분이 공감하면서 오일장 부활이 탄력을 받았다.


1년간 72차례 열려…2만7000여 명 방문

다양한 노력 끝에 태안 오일장은 문을 닫은 지 35년 만인 지난해 6월 8일 ‘걷고 싶은 거리’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올해 6월 3일까지 1년간 72차례 열리는 동안 누적 방문객 수는 2만7000여 명에 달한다. 매번 평균 45개 점포가 참여했으며, 이중 태안지역 상인 비율도 65%나 된다.

충남 태안 오일장에서 맛볼 수 있는 칼국수와 수제비. 한 그릇에 6000원으로 오일장을 찾는 방문객은 물론 인근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신진호 기자

충남 태안 오일장에서 맛볼 수 있는 칼국수와 수제비. 한 그릇에 6000원으로 오일장을 찾는 방문객은 물론 인근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신진호 기자

지난 8일 ‘시장의 봄-5일마다 피어나는 삶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열린 1주년 기념행사에서는 사물놀이 공연과 초대 가수 공연이 펼쳐졌다. 행사에 참여한 주민들은 “아이들에게 줄 간식거리도 사고 사람이 북적대는 시장을 구경하는 게 좋아 자주 온다”고 반겼다.

농산물·해산물·공산품 저렴하게 판매

태안 오일장에는 골동품을 비롯해 해산물과 농산물, 의류, 빵 등 먹거리 점포가 설치된다. 기성 상설 점포들도 오일장에 참여한다. 장터에선 요즘 제철을 맞은 마늘과 양파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판매한다. 현지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로 대형마트보다 저렴하다고 한다. 한 농민은 상추 등 쌈채소를 갖다 놓고 무인점포를 운영했다. 이날 무인점포에서는 수경재배한 상추 1상자가 5000원에 판매됐다. 30대 여성은 손수 제작한 가방 등 소품을 들고 나왔다. 이 여성은 “생각보다 젊은 주부들이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오일장에서 맛보는 칼국수와 수제비 가격은 6000원으로 대도시의 절반 수준이다. 한여름 인기인 콩국수는 7000원이다. 저렴한 밥값은 태안 오일장에 가족 단위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태안 오일장에서 빵 점포를 여는 상인은 “직접 만든 빵과 과자를 들고나오는 데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며 “여름 휴가철 많은 분이 오일장을 찾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오전 충남 태안군 태안읍에서 열린 오일장에서 방문객들이 물건을 사기 위해 상인들과 흥정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18일 오전 충남 태안군 태안읍에서 열린 오일장에서 방문객들이 물건을 사기 위해 상인들과 흥정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한편 충남 태안군은 한때 인구가 6만명을 넘었지만 지난 5월 말에는 5만9800여 명까지 줄어든 ‘인구 소멸 지역’ 가운데 한 곳이다. 정부의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정책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인구 유입도 기대하기 어렵다. 태안군은 오일장이 활성화할 수 있도록 부스 설치와 공공근로·매니저 지원, 방문객 볼거리 제공을 위한 문화예술 공연을 추가할 방침이다.

가세로 태안군수 "주민·방문객 만족도 높여나갈 것"

가세로 태안군수는 “지난 1년간 태안 오일장을 찾아준 방문객과 시장 활성화에 협조해준 상인들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주민과 방문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