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1500m 한국신 이재웅 "한국 중장거리 죽지 않았다"

이재웅(23·국군체육부대)이 21일 강원도 정선군 정선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육상선수권대회 1500m 결승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내고 있다. 사진 대한육상연맹

이재웅(23·국군체육부대)이 21일 강원도 정선군 정선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육상선수권대회 1500m 결승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내고 있다. 사진 대한육상연맹

“한국 중장거리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겠습니다. 이진일 감독님 이후 성적이 좋지 않아 (중장거리가) 침체기라고 말하는데 그건 지금까지일 뿐, (앞으로는) 안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실력으로 증명하고 싶어요. 한국 신기록을 세웠으니 이제 내 기록을 깨는 것을 목표로 앞만 보고 달리겠습니다.”

32년 만에 남자 육상 1500m 기록을 갈아치운 이재웅(23·국군체육부대)의 각오는 당찼다. 지난 21일 전국육상선수권이 열린 강원도 정선 종합경기장에서 만났다. 

이재웅은 지난 14일 일본 호크렌 디스턴스챌리지에서 기존 한국 기록(3분 38초 60, 1993년 김순형 )을 0.05 앞당겼다. 그가 언급한 이진일은 1990년대 한국 육상의 간판스타. 800m 한국 기록(1분44초14, 1994년)을 보유 중이며,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선 2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이후 중장거리에서 두각을 보인 선수가 없었다. 그래서 “중장거리는 안 된다”는 시선이 육상계 안팎에 팽배했다.  

이재웅은 이런 고민을 해결해줄 선수로 꼽힌다. 지난해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후 한발 한발 1500m 기록을 단축 중이다. 지난달 구미 아시아육상선수권에서 아시아 일인자 이자와 가쓰토(일본)와 대등한 경기를 펼친 끝에 3분42초79로 2등을 차지했다. 또 다른 경쟁자인 유누스 샤(인도)는 0.24 차로 제쳤다. 그리고 한 달 뒤 호크렌 디스턴스챌린지 1차 대회에서 3분40초19로 한국 남자 일반부 신기록을 작성했고, 불과 사흘 뒤 2차 대회에서 1.5초 더 당겼다.  

“세계 기록과는 12초 차이라 (그걸 넘어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정도는 꼭 보여주고 싶어요.”


이재웅의 중·고교 시절 코치를 한 황준석(42) 영천시청 감독은 “1500m는 스피드와 근지구력이 중요한데, 재웅이는 타고난 체질에 근성이 남다르다. 지구력을 보완하면 3분35초대는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노려볼 수 있다”고 했다. 아시아 기록은 아쉬드 램지(바레인)가 2006년에 작성한 3분29초14다.  

남자 육상 1500m 국가대표 이재웅(23·국군체육부대). 사진 대한육상연맹

남자 육상 1500m 국가대표 이재웅(23·국군체육부대). 사진 대한육상연맹

경북 영천에서 나고 자란 이재웅은 유도를 하다 초등 5학년 때 뒤늦게 육상에 입문했다. 그러나 특유의 악바리 근성으로 중학교 시절부터 중장거리에서 두각을 보였다. 영동중 3학년 때 1500m 중등부 기록(3분58초34)을 세웠고, 영동고 2학년 때 고등부 기록(3분44초18)마저 갈아치웠다. 아직 깨지지 않은 부별 기록이다.

“1500m는 ‘육각형’ 선수가 돼야 해요. 스피드, 지구력, 근지구력, 정신력, 마인드 컨트롤, 레이스 운영 능력 다 갖춰야 하거든요. 그중에서도 페이스가 처지지 않도록 끝까지 밀어내는 능력, 악으로 정신력으로 버티는 근지구력이 가장 중요하죠.”

포기하지 않는 근성은 그간 살아오면서 몸으로 익힌 측면도 있다. 이재웅이 어릴 적부터 그의 부모·형제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운동과 학업을 스스로 챙겨야만 했다. 한국 신기록을 세운 날도 부모님과 SNS 메시지로만 소식을 전했다.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엄마가 너무 울어 전화 통화를 못 할 정도”라는 게 이유다. 

한국 신기록 다음 목표는 세계선수권 출전이다. 오는 9월 도쿄 세계육상선수권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세계 랭킹과 기록 등 다양한 방식으로 56명까지 출전권이 주어지는데, 지난주까지 이재웅의 랭킹은 60위권대다. 앞으로 두 달 동안 최대한 많은 포인트를 쌓아 출전권을 따겠다는 각오다. 당장 다음 달 일본 디스턴스챌린지 시리즈,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참가한다.

정선=김영주 기자 kim.youngju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