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나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전무송)
“바쁜 일상 속에서 연극이 따뜻한 쉼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장영남)

 
한국 연극계 최대 축제인 ‘대한민국 연극제’가 다음 달 5일부터 인천광역시 전역에서 열린다. 각각 명예대회장과 홍보대사를 맡은 전무송(83)과 장영남(51)은 43회를 맞은 이번 연극제가 여러 어려움 속에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안식처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19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 라운지에서 가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다.

 
전무송은 지난 1964년 연극 ‘춘향전’으로 데뷔한 이래 연극·방송·영화를 넘나들며 활약한 대한민국 대표 국민배우다. 그는 1983년 창설 이래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연극제에 대해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전무송은 “연극제를 한다고 했을 때 ‘먹고 살기도 바쁘다’며 반대가 있어 결국 개막도 못 했던 시절이 있었다”라며 “당시에 크게 실망했었는데 후배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연극제를 만들고 이어오고 있어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연극제는 놀이”라며 “사람들이 놀이를 통해 즐거워하면서 행복감을 찾고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숨 돌리면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1995년 극단 ‘목화’에 입단해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장영남은 “어느덧 자연스럽게 선배가 됐는데, 30년 전 극단 생활을 시작했을 때 연극에 대한 저의 마음과 후배들의 열정이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그 마음과 열정을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에 홍보대사를 맡았다”고 말했다.


 
둘은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연극의 ‘치유력’이 더 필요한 때라고 했다. 전무송은 “무엇인가에 쫓기고 각박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인 것 같다”며 “연극을 보는 시간만이라도 여유를 찾고 또 연극이 전하는 이야기에 감동하며 자신의 마음을 순화시킬 수 있다면 조금 더 여유롭고 행복한 이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했다. 장영남은 “사람과 사람이 온전하게 그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연극은 굉장히 값진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러 매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두 배우지만 연극이 본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또 다르다. 전무송은 “연극을 처음 배울 때 ‘인간이 먼저 돼야 한다’라는 얘기를 들었다”라며 “연극배우를 하면서 어떤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숙제를 풀고 있는 거 같다”고 했다. 장영남은 “연극 무대는 어떤 실수도 용납되지 않고 도망갈 곳도 없다”라며 “그런 무대가 저를 더 엄격하고 또 뜨겁게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연극과 공연계가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전무송은 “제가 연극을 했던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며 “그래도 ‘먹고 살기 어려운데 연극을 왜 하냐’라던 시절에서도 꾸준히 공연을 이어왔고 이제 한국 작품이 아카데미상을 타고 토니상을 받는 시대가 됐다”라고 했다. 실제 소극장 고사 위기와 같은 문제 속에서도 한국 연극계는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4년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극 티켓 판매액은 734억원으로 전년 대비 16.5% 늘었다. 올해도 인기 스타들의 연극 무대 복귀 등에 힘입어 주요 대형 작품은 90% 이상의 객석 점유율을 보였다.

그는 최근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토니상 6관왕을 차지한 것에 대해 “우리의 국격이 그만큼 올랐다는 것”이라고 반겼다. 장영남도 “공연 분야에서도 한류가 통한다는 생각에 기뻤다”라며 “공연에 도전하는 신진 예술가들이 더 큰 희망과 꿈을 꿀 수 있게 됐다”라고 했다.

둘은 이번 연극제가 많은 사람이 누리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특히 인천이 고향인 전무송은 “이번 연극제를 계기로 인천 만국공원이 파리 몽마르트르와 같은 문화의 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예술 축제를 통해서 우리 시민들이 평상시에도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이번 연극제에는 16개 시·도에서 각각 선정된 16개 작품이 선보인다. 서울 극단 광대모둠의 ‘대한맨숀’, 부산 극단 누리에의 ‘어둠상자’, 제주도 퍼포먼스단 몸짓의 ‘만선’ 등이다. 한국-북마케도니아 합동공연, 연극인 100인 토론회 등의 관련 행사도 펼쳐진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가 올해 출범시킨 문화 브랜드 ‘아르코 썸 페스타’ (ARKO SUM FESTA)의 한축이기도 하다. ‘아르코 썸 페스타’는 아르코의 공연예술축제 지원사업인 ‘대한민국공연예술제’에 선정된 축제들을 하나로 묶어 선보이는 새로운 통합 브랜드다.

전무송은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이런 브랜드 하에 연대하고 힘을 합치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특별한 시너지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영남은 ‘아르코 썸 페스타가 “한국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일종의 한국 문화계의 넷플릭스’ 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대한민국 연극제 : 1983년 시작된 국내 최고·최대 연극 축제. 매년 전국 16개 시·도를 순회하며 개최됐다. 지역 연극의 창작의욕을 북돋고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해온 이 축제는, 2005년 제23회부터는 해외 초청공연을 도입하며 국제 교류와 글로벌 협업 기반도 넓혀가고 있다. 올해 인천에서 개최되는 제43회 대한민국연극제는 ‘연극, 인천에 상륙하다’를 주제로 인천 전역에서 다양한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아르코 썸 페스타 : 그동안 개별적으로 운영되던 국내 예술 관련 축제들을 한 데 모은 브랜드. 통합 홍보와 협업을 통해 축제 간 시너지를 높이고 더 많은 관객과 만나는 장을 마련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로 올해는 ‘세상의 모든 공연축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아르코 썸 페스타’ 브랜드 하에 오는 7~8월 연극·뮤지컬, 무용, 음악, 전통예술 4개 분야에서 총 17개 축제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