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 핵시설 공습 이후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22일 오후 서면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대통령 취임 직후의 산적한 국정 현안에도 불구하고 그간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적극 검토해 왔다"며 "그러나 여러 가지 국내 현안과 중동 정세로 인한 불확실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번에는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타 정부 인사의 대참 문제는 나토 측과 협의할 예정"이라면서다.
전날만 해도 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거의 확정적인 분위기였다. 물밑에서는 최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조기 귀국으로 인해 무산된 한·미 정상회담을 다시 준비하는 기류도 감지됐다.
참석 여부를 놓고선 막판까지 다양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당초 대통령실은 오후 3시 브리핑을 통해 나토 정상회의 참석과 관련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직전 순연을 공지했고, 결국 오후 6시 20분쯤 질의응답 없는 서면 브리핑으로 불참을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일 대통령실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는 모습. 대통령실
정부가 고심 끝에 결국 불참으로 선회한 건 트럼프가 이란 핵시설 3곳을 직접 타격하며 이스라엘-이란 분쟁에 사실상 참전하게 된 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전쟁을 지휘하게 된 트럼프의 참석 여부가 불투명해진 데다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이상은 해당 사안에 대해 이재명 정부의 입장을 밝히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 중동발 외교 시험대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부의 고민은 앞서 발표한 입장에서도 묻어난다. 외교부는 22일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에 대해 "정부는 핵 비확산 관점에서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중시하고 있으며 이란 내 핵 시설 공격 관련 사태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정부는 역내 긴장이 조속히 완화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지속 동참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공습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는 피하면서도 공습 '명분' 자체에는 공감대를 표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특히 정부가 '핵 비확산 관점'을 강조한 데는 한국 역시 북핵의 직접적 위협을 받고 있는 당사자라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비핵화를 추구해야 하는 한국이 이란의 불법적 핵 개발 저지 자체에 반대할 수는 없다는 게 대전제인 셈이다.
다만 미국이 이란 내 핵시설을 폭격한 건 '무력'을 동원한 이란 핵 문제 해결 시도에 해당한다. 미국이 직접적 위협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자위권 발동 차원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를 두고 국제법적 논쟁의 여지가 크다. 그런데 대북 군사 옵션까지 가정해야 하는 한국이 이에 대해 아예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은 셈이다. 정부 공식 입장이 공습 불과 채 6시간도 되지 않아 나온 것도 충분한 고민의 결과냐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었다.

미국이 이란에 대해 핵시설 공습을 단행한 21일(현지시간) 백악관의 모습. EPA=연합뉴스
앞서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직후 외교부는 “정부는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격 등으로 중동 지역의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모든 행동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당시엔 원인 제공자를 이스라엘로 지목하는 듯 했지만, '미국의 참전'이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입장이 다소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출범 직후 외교적 위험성을 최대한 줄이자는 취지로 읽히지만, 이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 불참을 결정한 건 아직 방향성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이재명표 실용외교'에 국제사회의 물음표를 붙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는 당면한 어려운 외교적 숙제를 잠시 미뤄둔 것에 불과할 수 있는 데다 참석을 통해 얻는 외교적 실익도 작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비확산 문제가 국제적인 의제로 부상한 건 나토의 우선순위 밖에 있던 북한 핵문제 역시 자연스럽게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비핵화 외교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동시에 러시아와 밀착하며 3차 파병까지 약속한 북한의 행보 등에 대해 국제사회에 직접적인 우려를 표명하고 공감을 얻을 수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방장관회의에서 마르크 뤼터 사무총장(가운데), 호주·일본·뉴질랜드 장관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나토
또 나토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인도·태평양 4개국(IP4) 정상을 매년 초청했다. 이번 회의에 IP4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만 불참하게 된 모양새 역시 아쉬운 지점이라는 지적이다. '긴장 완화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고서도 정상 차원에서 나토 회의를 찾지 않은 건 다소 모순된 태도로 보일 우려도 있다. 이 대통령의 불참을 미국에서 어떤 의미로 해석할지도 미지수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국이 참석을 사실상 철회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이란과 북한을 비롯한 비핵화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를 꺼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또 "나아가 트럼프의 이란 공습에 대해서도 한국은 부정적이라는 신호를 줄 수 있는 만큼 향후 정교한 메시지 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