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된 동맹' 같은 거 없다... 美, 삼성·하닉 中 반도체 공장 제재 만지작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노력이 네덜란드·일본·한국 때문에 얼마나 약화되고 있나?
문제가 심각하며, 여기에 매우 집중하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외교소위원회 청문회에서 오간 문답이다. 답변자는 미국 수출 통제 정책을 주관하는 제프리 케슬러 미 상무부 산업·안보 담당 차관.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지난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케슬러 차관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TSMC에 ‘중국 공장의 미국산 장비 반입 허용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SK하이닉스 중국 우시 D램 공장 생산라인 내부 전경.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중국 우시 D램 공장 생산라인 내부 전경. [SK하이닉스]

 
미국 트럼프 정부의 대중(對中) 반도체 제재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에도 영향을 끼칠 조짐이다. 그간 미·중 첨단 기술 갈등 중에서도 두 회사는 일부 최첨단을 제외한 반도체 장비를 중국 내 D램·낸드 메모리 생산 공장에 들일 수 있었다. 미국 정부가 사전 승인한 기업에 주는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지위를 부여받아, 포괄적 허가를 받아온 것. 그런데 트럼프 정부에서 이걸 없애려 한다는 거다.

메모리 공급망 안개 속으로

삼성전자는 낸드 메모리의 40%가량,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의 20%가량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업계는 D램과 낸드 매출을 감안해 양사 메모리 중 중국 생산 비중을 10~15%(삼성), 35%(SK하이닉스)가량으로 추산한다. 

미국은 지난 2022년 10월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제재를 시작했다. 18나노미터(㎚ㆍ10억분의 1m) 이하 공정의 D램이나 128단 이상 낸드 같은 첨단 메모리용 장비를 중국에 들일 때 일일이 허가를 받으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삼성·SK의 중국 반도체 공장에는 직접적 타격은 없었다. 한국 기업은 제재를 1년 유예받았고, 유예기간이 끝난 뒤에는 곧바로 VEU를 적용받았다. 실제로는 극자외선(EUV) 노광기 같은 최첨단 장비 외에는 특별한 절차 없이 중국 공장에 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가 이를 ‘중국이 첨단 장비를 빼 가는 뒷구멍’으로 여겨 틀어막으려 한다는 거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메모리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커진다”며 우려한다. 예컨대,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 공장에 ASML의 EUV 노광기를 못 들이므로 해당 작업이 필요한 첨단 D램은 중국에서 국내로 실어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VEU가 있어도 이런데, 철회되면 메모리 생산 과정이 더 복잡해진다는 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 정부로부터 해당 통보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확인 불가’로 대응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미국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프리 케슬러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 담당 차관이 12일 미 하원 외교소위원회 청문회에서 반도체 장비 대중 수출 제재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 유튜브

제프리 케슬러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 담당 차관이 12일 미 하원 외교소위원회 청문회에서 반도체 장비 대중 수출 제재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 유튜브

 

‘동맹 봐주기’ 없이 각개격파

케슬러 차관은 지난 12일 청문회에서 “반도체 관련 기술에서 동맹국(네덜란드, 일본, 한국)의 자발적 통제가 불가능하다면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적용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FDPR은 미국산 장비·기술이 사용됐다면 타국 제품이라도 미국 정부가 수출을 통제하는 강력한 제한 조치다. 지난해 12월 미국이 한국산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중국 수출을 막으며 적용한 게 바로 FDPR이다.

앞서 지난달 미 상무부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AI 확산 규칙’도 폐기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을 미국의 ‘동맹국/일반국/적국’으로 등급을 나눠 통제하던 걸 없애고, 개별 국가와 개별 협상을 하겠다는 거다. 이렇게 되면 미국 동맹국인 한국도 대중 반도체 수출에 대해 따로 협상해야 해, 불확실성이 커지는 셈이다. 

트럼프 정부가 대중 반도체 장비 제재를 강화하면, 중국 매출 비중이 30% 이상인 램리서치 등 미국 장비 기업도 큰 타격을 입는다. 업계 일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협상 카드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공학부 교수는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현실화되는 상황을 ‘뉴 노멀’이라고 가정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질서 있는 철수를 포함한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