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대표팀 주전 스트라이커 오현규가 시계 세리머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전 시간이 적어도 구애 받지 않고 또 해냈다는 의미다. 김경록 기자
“지난 시즌에 좋았던 몸 컨디션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아서다. 새 시즌을 어서 빨리 시작하고 싶은 설레는 마음이다.”
한국축구대표팀 공격수 오현규(24·헹크)는 23일 서울 서초구의 S&C 피지컬센터에서 훈련 중이었다. 그는 벨기에 출국 전날인 25일에도 그라운드 훈련을 잡아뒀다. 2주 남짓 짧은 휴식기에도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오현규는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에서 4골을 터트려 본선행을 이끌었는데, 하나같이 결정적인 골이었다.
Q. 지난 10일 쿠웨이트전 득점은, 2023년 우루과이전에서 오른발 터닝슛으로 골망을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로 취소된 장면이 오버랩됐다. 슈팅 임팩트가 좋다.
“우선 3차예선에서 가장 기억 남는 골은 ‘A매치 데뷔골’인 요르단전 득점이다. 2년 전 우루과이전 득점이 취소돼 힘들기도 했지만, 쿠웨이트전 득점으로 아쉬움을 어느 정도 털어낼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슈팅 임팩트를 단련했고 자신 있었다. 앞으로 남은 축구인생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좀 더 멋있는 골을 많이 넣고 싶다.”
Q. 지난 6일 아시아 3차예선 이라크전에서 전진우(26·전북)와 득점을 합작한 뒤 2022년 수원 삼성에서 함께 뛸 때 했던 ‘축구화 닦기’ 골 세리머니를 재연했다. 소셜미디어에 전진우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함께 찍은 사진과 ‘진우형 우리 꿈이었지’란 글을 남겼다.
“수원 삼성과 상무 시절을 진우 형과 오래 오래 보내면서 힘든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진짜 남자 대 남자로 얘기도 많이 하고, 서로 위로가 많이 됐다. 2022년에 수원에서 함께 뛴 시간이 길었고, 당시 진우형이랑 가끔 웃으면서 ‘앞으로도 우리가 언젠가 한 번은 (국가대표에) 갈 수 있지 않겠냐. 우리라고 왜 못가’라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월드컵에서 진우형이 어시스트해주고 제가 골을 넣는다면, 상상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오현규가 SNS에 전진우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함께 찍은 사진과 ‘진우형 우리 꿈이었지’란 글을 남겼다. [사진 오현규 인스타그램]](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6/23/51d88cb9-8bf5-4cab-85cd-252a26d36b91.jpg)
오현규가 SNS에 전진우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함께 찍은 사진과 ‘진우형 우리 꿈이었지’란 글을 남겼다. [사진 오현규 인스타그램]
Q. 전진우는 축구인생이 잘 안 풀리자 2022년 전세진에서 개명했다. ‘세진이형’이 아닌 ‘진우형’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지는 않나.
“진우형이 ‘세진이라고 부르면 기가 안 좋고 운이 빠진다’고 하더라. 잘 되려고 이름을 바꿨는데 그러면 안되니, 지금은 ‘진우형’이라고 부르고 있다.”
Q. 열아홉살 이른 나이에 상무에 입단해 병역의 의무를 마쳤다. 22세에 유럽에 진출해 활약 중인데, 빠른 군입대가 좋은 선택이었다.
“2019년 고3때 준프로 계약을 맺고 수원에서 뛰었다. 이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K리그 개막이 5월로 연기됐다. 수원은 제게 집 같은 곳이지만 당시 변화도 필요했다. 먼저 상무에 입단한 일병 (전)진우 형이 어릴 때 빨리 군대에 오면 좋다고 추천해줬다. 군대에서 사격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언젠가 유럽에서 뛰고 싶은 큰 꿈도 있었다.”
Q. 고1 때 왼쪽 십자인대 부상을 당했는데 수술을 받지는 않았다.
“당시 병원을 8군데 정도 갔는데 7곳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 곳에서 성장판이 열려있으니 자연 치유를 해보자고 했다. (십자인대가) 완전히 끊어진 게 아니라 10~20%는 엉겨 붙어 있어 희망이 있다고 했다. 군입대 후 훈련소를 다녀왔는데 무릎이 너무 너무 아팠다. 병원에 다시 갔더니 십자인대가 0%로 아예 없었다. 수술을 받으면 의가사 제대라고 했고, 주변에서도 수술을 권유했다. 코로나 시대라 휴가도 없을 시기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싫었고, 군대를 간 이상 이겨내고 싶었다.”
Q. 만기 제대했고, 한쪽 십자인대가 없는데도 주력이 느려지지 않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다쳤는데도 이 정도인데, 십자인대가 있었다면 더 잘 달리고 더 잘 뛸 수 있었겠다’라는.”

휴식기인 23일에도 서울 서초구의 S&C 피지컬센터에서 훈련 중인 오현규. 김경록 기자
Q. 어릴 때 별명이 ‘아기 괴물’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피지컬(키 1m85㎝ 체중 87㎏)이 정말 좋다.
“벨기에에서 피지컬 코치와 스태프가 지치지 않는 기계 같다며 ‘머신’이라고 부른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40·알나스르)는 축구를 시작하게 만들어준 제가 동경하는 선수다. 어릴 때 TV를 틀면 호날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소속으로 중거리슛으로 멋있는 골을 넣었다.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몸 관리가 뛰어나다는 것도 배울 점이다. 제가 흐트러질 때마다 동기부여가 된다.”
Q. 아시아 3차예선에서 31분마다 유효슈팅을 기록했다. 90분 이상 출전 선수 중 가장 높은 빈도다. 슈팅을 주저하지 않아 시원시원하다.
“그냥 본능인 것 같다. 어느 각도든, 왼발이든 오른발이든 자신 있다.”
Q. 벨기에 헹크 소속으로 지난 시즌(2024~25시즌) 주로 교체로 뛰었는데도 12골이나 터뜨렸다. 리그 기준 610분에 9골, 68분당 1골로, 벨기에 주필러리그에서 출전시간 대비 골 전환율 1위다. 현지 언론으로부터 ‘유럽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위험한 수퍼조커’라는 찬사를 받았다.
“득점이 하나둘 늘어 날 때마다 팀 동료들이 ‘또 넣었네’,‘또 넣을 줄 알았다’고 했다. 무하이드 사디크(스페인 수비수)는 ‘지금까지 너 같은 스트라이커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제 커리어에서 선발보다 교체출전 경기가 더 많다. 어떻게 보면 교체에 도가 트였다. 경기 흐름을 읽고 들어가려고 한다. 상대 수비가 지치고 힘든 내색을 보일 때 희열을 느낀다.”
![벨기에 헹크 공격수 오현규가 시계 세리머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전 시간이 적어도 구애 받지 않고 또 해냈다는 의미다. [AP=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6/23/2425ce58-e520-4354-8674-dd7be86f3d86.jpg)
벨기에 헹크 공격수 오현규가 시계 세리머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전 시간이 적어도 구애 받지 않고 또 해냈다는 의미다. [AP=연합뉴스]
Q. 오른손으로 왼쪽 팔목에 찬 시계를 가리키는 듯한 골 세리머니를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지난 시즌 출전 시간이 많이 적었다. (시계) 세리머니는 ‘시간을 봐라. 이 시간에 이렇게 구애 받지 않고 또 해냈다’는 의미다. 부모님은 ‘시계를 새로 사서 자랑하는 세리머니야’라고 물으셨다(웃음).”
Q. 토르스텐 핑크 헹크 감독은 새 시즌에 오현규를 주전 공격수로 기용할 방침이라고 한다. 핑크 감독은 손흥민(토트넘)의 함부르크 시절 은사다. 지난해 영국 등 다른 팀에서도 영입 제의가 있었는데, 헹크행을 결정할 때 혹시 손흥민에게 조언을 구했나.
“마지막에 결정하기 전에 흥민이 형에게 여쭤봤다. 저보다 축구를 잘 알고, 먼저 이 길을 걸어온 대선배이기에 어느 팀이 더 좋고 나은 선택일지 물었다. 흥민이 형이 ‘핑크는 좋은 감독이다. 가게 되면 널 좋아할 거다. 헹크는 좋은 팀이니 가면 좋다’고 조언해줬다.”
Q. 케빈 더 브라위너(나폴리), 레안드로 트로사르(아스널), 크리스티안 벤테케(DC유나이티드), 티보 쿠르투아(레알 마드리드) 등 헹크를 거쳐간 스타들이 많다. 99% 이적이 유력한 주전 공격수 톨루 아로코다레는 맨유 이적설이 나온다.
“헹크는 한국에 알려진 것보다 크고 인정 받는 구단이다. 헹크에서 두각을 보인 뒤 빅클럽으로 가는 선수가 많다.“
Q. 새 시즌에 유로파리그를 병행하게 됐다. 개인적인 목표는.
“유럽에서 잘하는 팀들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제 기량을 선보일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며, 기대도 크다. 다음 시즌 주축으로 유럽대항전 등 모든 대회를 다 뛰면서, 다치지 않고 꼭 월드컵까지 가고 싶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20골을 넣으면 잘한 거라고 말한다. 20골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성에 차지 않을 것 같다. 지난 시즌 많은 시간을 뛰지 않았는데도 12골을 넣었으니, 새 시즌에 풀로 뛴다면 최소 2배는 넣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말한 2배는 24골에 달하지만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 났다.
![카타르월드컵 당시 예비선수로 동행한 오현규(오른쪽 둘째).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6/23/151d3eae-54fe-4e6c-a9de-da99b9e73f37.jpg)
카타르월드컵 당시 예비선수로 동행한 오현규(오른쪽 둘째). [연합뉴스]
Q. 3년 전 카타르월드컵 당시 등 번호조차 없는 27번째 예비 선수였다. 최종엔트리 26명만 등 번호를 달았고, 최종엔트리에 들지 못해, 부상에서 재활 중이던 손흥민이 뛸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해 예비선수로 동행했다. 대표팀 단체 사진촬영 때도 중간에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그런데도 경기 전 연습 때 골키퍼를 맡는 등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물론 원팀이지만 (등번호도 없다 보니) 좀 다른 느낌이기는 했다. 그래도 형들이 정말 잘 챙겨줬고, 형들을 보고 경험한 게 큰 자산이 됐다. 한국 선수들을 보는 것도 큰 감사인데, 세계적인 선수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특히 관중석에서 봐서 더 잘 보였다. 호날두 선수를 가까이서 실물로 보니 신기했다. 16강 상대 브라질(1-4패)은 남달랐다. ‘내가 열 번 죽었다가 깨어나도 비빌 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하지’란 생각마저 들었다.”
Q. 포르투갈과 조별리그 3차전 승리 후 손흥민에게 달려가 휴대폰으로 우루과이-가나전 실시간 소식을 알렸다.
“만약 북중미월드컵에 나가게 된다면, 이젠 다른팀 결과에 상관없이 위로 올라가고 싶다. 등번호를 받고 큰 무대를 뛰게 된다면 정말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제가 잘해야 될 거 같다. 지금 대표팀에서 등번호 9번을 달고 뛴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누군가 꿈꾸는 자리인데, 계속 유지하기 위해 더 더 잘하는 수밖에 없다.”
Q. 카타르월드컵 당시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말이 한국축구의 상징이 됐다. 3년이 흘러 2026년 북중미월드컵을 앞둔 한국 축구대표팀의 특급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당장 내일, 한 달 뒤가 보이는 건 아니다. 하루하루 묵묵히 하나하나 쌓아 온 것 같다. 작년도 올해도 쌓이고 쌓였다.”

북중미월드컵 한국축구대표팀 주전 공격수로 급부상한 오현규. 김경록 기자
Q. 어릴 적 넉넉하게 자란 편은 아니라고 들었다.
“제가 초등학교 4~5학년 때쯤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기억난다. 일반학교에 가서 돈을 내고 축구하면 서포터해 줄 형편이 못 된다며 미안해 하셨다. 프로 산하팀(매탄중·고)에 가면 회비를 안내도 되니, 부모님을 생각하며 그 마음으로 열심히 했다.”
Q. 북중미월드컵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6살 때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장면이 있다. 집 서랍장에 2002년 월드컵 한국대표팀 경기 스페셜이 담긴 CD가 있었다. 황선홍 감독님이 당시 폴란드전에 골 넣었던 장면을 다시 보려고, 리모콘을 어떻게 사용하는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든 되감기 버튼을 눌렀다. 황선홍 감독님처럼 월드컵에 가서 골을 한번 넣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