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사구시(實事求是) 비석. 바이두
최근에는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실제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과장하거나 축소해서는 안 된다’란 의미로 주로 쓰인다. 유의어는 각답실지(脚踏實地)다. 탁상공론(卓上空論), 공론무실(空論無實) 등이 반대말이다.
단옥재는 청나라 전성기였던 건륭제(乾隆帝) 통치기에 성장하고 활동했다. 그는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일찌감치 국립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고 생원(生員)이 됐다. 25세에는 향시(鄕試)에 합격하고 거인(擧人)이 됐다. 그러나 3년에 한 차례 치러지는 회시(會試)에서 몇 차례 쓴맛을 본 후, 생계를 위해 그는 35세부터 지방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한다. 당시, 거인 신분이면 지방 관료로는 진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무렵 그는 퇴근 후나 여가 시간을 활용해 ‘육서음균표(六書音均表)’를 저술했다.

단옥재(段玉裁). 바이두
이후 그는 베이징에 잠시 머물며 훈고학(訓詁學) 전문가 왕념손(王念孫), 왕인지(王引之) 등과 깊이 교류하기도 한다. 58세에 다시 쑤저우로 돌아온 그는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주석(註釋)을 추가하는 큰 프로젝트에 본격 착수했다.
‘설문해자’ 관련 최고 저술로 인정받는 ‘설문해자주(說文解字註)’를 그는 1807년에 마침내 완성한다. 이때 그의 나이 72세였다. ‘설문해자주’의 초고로 볼 수 있는 ‘설문해자독(說文解字讀)’ 집필부터 계산한다면 약 31년이 오롯이 투입된 결과였다. 이 긴 세월을 그는 홀로 이 프로젝트 하나에 집중해 언어학적으로 큰 성취를 후세에 남겼다.
평소 병에 시달리기는 했으나 단옥재는 장수했다. 자신의 역작 ‘설문해자주’가 인쇄되어 세상에 보급되는 장면까지 지켜본 후, 향년 81세로 편안히 눈을 감았다.

설문해자주(說文解字註). 바이두
최근 ‘실사구시’는 일상에서 널리 쓰인다. 무척 친숙한 사자성어가 됐다. 누군가 ‘실사구시’ 정신으로 살아가려 애쓴다면, 굳이 리더가 아니더라도 의미가 있는 삶의 여정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실사’와 ‘구시’ 가운데 어느 쪽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그 성취의 결은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잠시 인공지능과 과학자의 차이를 떠올려본다.
그건 그렇고, 인공지능이 과학자들을 대신하는 날이 올까? ‘실사구시’가 꼭 필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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