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실사구시(實事求是)와 단옥재(段玉裁)

여러 경로를 통해 서양의 과학 수준을 이미 알아챈 청나라 고증학(考證學)은 송나라 성리학이나 명나라 시기에 탄생한 양명학과 차이가 꽤 뚜렷하다. 당시 고증학자들 사이에 ‘뭔가를 정의할 때, 반드시 관련 증거를 토대로 해야 한다’라든가 ‘증거를 감추거나 고의로 비트는 방식은 비도덕적이다’와 같은 묵계와 공감대가 강했다. 조선 후기에 등장한 실학(實學)에서 중시하는 원칙들과 맥이 통한다. 즉 객관성을 중시하고 실증에 힘썼다.

실사구시(實事求是) 비석. 바이두

실사구시(實事求是) 비석. 바이두

이번 사자성어는 실사구시(實事求是. 열매 실, 일 사, 구할 구, 바를 시)다. 첫 두 글자 ‘실사’는 ‘허구가 아닌 실제 사실’이다. ‘구시’는 ‘바름을 추구하다, 즉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란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실제 증거를 바탕으로, 진위 여부를 판단하다’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한나라 역사가 반고(班固. 32~92)의 ‘한서(漢書)’에서 유래했으나, 대진(戴震), 단옥재(段玉裁. 1735~1815) 등으로 대표되던 고증학 전성기에 ‘실사구시’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최근에는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실제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과장하거나 축소해서는 안 된다’란 의미로 주로 쓰인다. 유의어는 각답실지(脚踏實地)다. 탁상공론(卓上空論), 공론무실(空論無實) 등이 반대말이다.

단옥재는 청나라 전성기였던 건륭제(乾隆帝) 통치기에 성장하고 활동했다. 그는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일찌감치 국립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고 생원(生員)이 됐다. 25세에는 향시(鄕試)에 합격하고 거인(擧人)이 됐다. 그러나 3년에 한 차례 치러지는 회시(會試)에서 몇 차례 쓴맛을 본 후, 생계를 위해 그는 35세부터 지방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한다. 당시, 거인 신분이면 지방 관료로는 진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무렵 그는 퇴근 후나 여가 시간을 활용해 ‘육서음균표(六書音均表)’를 저술했다.

단옥재(段玉裁). 바이두

단옥재(段玉裁). 바이두

47세에 그의 일상에 큰 변화가 생긴다. 관료 생활에서 별로 보람을 느끼지 못하던 단옥재는 사직하고 쑤저우(蘇州)에 정착했다. 12살 연상이던 스승 대진을 만난 후부터 그가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음운학(音韻學) 연구와 저술 활동에 매진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그는 베이징에 잠시 머물며 훈고학(訓詁學) 전문가 왕념손(王念孫), 왕인지(王引之) 등과 깊이 교류하기도 한다. 58세에 다시 쑤저우로 돌아온 그는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주석(註釋)을 추가하는 큰 프로젝트에 본격 착수했다.

‘설문해자’ 관련 최고 저술로 인정받는 ‘설문해자주(說文解字註)’를 그는 1807년에 마침내 완성한다. 이때 그의 나이 72세였다. ‘설문해자주’의 초고로 볼 수 있는 ‘설문해자독(說文解字讀)’ 집필부터 계산한다면 약 31년이 오롯이 투입된 결과였다. 이 긴 세월을 그는 홀로 이 프로젝트 하나에 집중해 언어학적으로 큰 성취를 후세에 남겼다.

평소 병에 시달리기는 했으나 단옥재는 장수했다. 자신의 역작 ‘설문해자주’가 인쇄되어 세상에 보급되는 장면까지 지켜본 후, 향년 81세로 편안히 눈을 감았다.

설문해자주(說文解字註). 바이두

설문해자주(說文解字註). 바이두

훗날 자성(字聖)으로까지 칭해지는 허신이 동한(東漢) 시기에 저술한 ‘설문해자’는 중국 최초의 제대로 된 자전(字典)이다. 540개 부수를 뼈대로 삼아, 총 9,353자 소전(小篆)체 한자의 뜻, 형태, 발음 등에 대해 나름 일목요연한 설명이 실려있다. ‘설문해자’를 집필할 당시, 허신은 참고 자료 부족 등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었다. ‘실사구시’라는 확고한 원칙 아래, 단옥재는 유물 발굴 자료 미비와 같은 허신의 시대적 한계를 메꾸고 충실한 주석을 달아 보완하려 애썼다.

최근 ‘실사구시’는 일상에서 널리 쓰인다. 무척 친숙한 사자성어가 됐다. 누군가 ‘실사구시’ 정신으로 살아가려 애쓴다면, 굳이 리더가 아니더라도 의미가 있는 삶의 여정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실사’와 ‘구시’ 가운데 어느 쪽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그 성취의 결은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잠시 인공지능과 과학자의 차이를 떠올려본다.

그건 그렇고, 인공지능이 과학자들을 대신하는 날이 올까? ‘실사구시’가 꼭 필요한 질문이다.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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