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닉스 아일랜드는 제주 동쪽 끝 모서리 섭지코지에 들어선 리조트다. 사진은 휘닉스 아일랜드에 있는 글라스 하우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작품이다. 손민호 기자
제주 섬 동쪽 바다, 그러니까 성산일출봉과 우도 사이의 바다는 물살이 세기로 악명 높다. 그 거친 바다를 향해 빼꼼히 머리 내민 지형이 섭지코지다. 하여 섭지코지는 예부터 제주 해녀의 성지였다. ‘바당밭’이 비옥해서다. 성게·해삼·전복 따위가 많이 나올 뿐더러 물건이 실하고 좋았다.
섭지코지는 천혜의 비경이었다. 지금은 연 150만 명이 방문하는 명소가 됐지만, 2003년 방영된 TV 드라마 ‘올인’에서 섭지코지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 풀어놓고 기르는 해안 언덕이었다. 섭지코지는 무슨 뜻일까. 제주 말로 ‘섭지’는 모래고 ‘코지’는 곶이다. 바다로 툭 튀어나온 모래 언덕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주소는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다.
그 해안 언덕에 들어선 리조트가 ‘휘닉스 아일랜드’다. 천혜의 비경을 해치지 않으려고, 두드러지지 않게 건물을 들였고 번다하고 요란한 시설을 최대한 줄였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리조트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편안하다. 휘닉스 아일랜드를, 휘닉스 아일랜드가 들어선 성산 땅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휘닉스 아일랜드 글라스 하우스에 최근 베이커리 카페 '플로이스트'가 오픈했다. 플로이스트를 지휘하는 정보영 제과장이 플로이스트의 대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손민호 기자
제주도 동쪽 모퉁이 섭지코지에도 동쪽 모퉁이가 있다. 이 모퉁이에 오늘의 섭지코지를 상징하는 건물이 서 있다. 글라스 하우스. 이름처럼 통유리를 들인 2층 높이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다. 모퉁이 건물은 양팔을 벌린 것처럼 옆으로 길게 모퉁이 언덕을 차지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영락없는 시옷 자 모양이다.
섭지코지를 안 가봤어도 글라스 하우스가 눈에 익은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이 건물이 드라마 ‘꽃보다 남자’와 영화 ‘마녀2’ 같은 영화·드라마에서 주요 무대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안 봤는데도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 건, 당신이 건축 예술에 안목이 있기 때문일 테다. 글라스 하우스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원래는 레스토랑으로 쓰였던 글라스 하우스가 최근 베이커리 카페로 변신했다. 이름하여 ‘플로이스트(FlOYEAST)’. 영어로 밀가루를 뜻하는 ‘Flour’에 효모(Yeast) 또는 동쪽(East)을 합쳐 이름을 지었다. 제빵·제과 경력 24년을 자랑하는 정보영(44) 제과장의 지휘 아래 매일 47종의 빵과 디저트를 빚는다.
플로이스트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제주르륵'. 입맛에 맞는 크림을 선택해 먹을 수 있다. 손민호 기자
플로이스트가 두 가지 특징이 뚜렷한 빵집이다. 당근·감자·마늘·호박·꿀 등 제주 식재료를 주로 사용하고, 밀가루·버터·치즈 같은 기본 재료는 최고급 수입 브랜드를 고집한다. ‘당근소금빵’ ‘구황작물 치아바타’ ‘더 성산 무스’ 등이 잘 나가는데, ‘제주르륵’은 입맛에 맞는 크림(라즈베리·바닐라·초코) 중 하나를 골라 뿌려 먹을 수 있다.
휘닉스 아일랜드의 지니어스 사이.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로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이 들어가 있다. 사진은 지하 전시관으로 내려가는 돌담 통로. 손민호 기자
섭지코지에는 글라스 하우스 말고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 하나 더 있다. 원래 이름은 ‘지니어스 로사이’다. 글라스 하우스가 빵집이면 지니어스 로사이는 미술관이다. 19세기 유럽에서 일어났던 공예 디자인 운동 ‘아르누보’의 유리공예 작품을 전시한다. 휘닉스 아일랜드는 2017년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으로 이름을 바꿨다.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에서 전시 중인 유럽 유리공예 작품. 에밀 갈레의 '버섯램프'다. 손민호 기자
글라스 하우스와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은 전혀 느낌이 다르다. 글라스 하우스 얘기를 조금 더 하자. 섭지코지 모퉁이에 자리를 잡은 2층 건물 글라스 하우스는 주변이 허허벌판이어서 멀리서도 도드라진다. 이 건물이 바라보는 방향이 정동쪽이다. 글라스 하우스가 지구의 동쪽을 향한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글라스 하우스를 보면, 이 통유리 건물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활짝 가랑이를 벌린 자세라는 걸 깨닫게 된다. 건물의 가랑이 중앙에 해당하는 지점이 정확히 지구의 동쪽을 향한다. 건물 배치와 통유리 구조 모두 태양의 정기를 받으려는 안도 다다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에서 관람 중인 제주 여행자들. 손민호 기자
반면에 유민 아르누보 미술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 전시관을 지하에 설치해 멀리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원래 이름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는 ‘지역의 수호신’을 뜻하는 라틴어다. 건축학에서는 지역 특성에 맞춰 설계한 건축물을 가리킨다.
옛 이름처럼 미술관은 제주 해녀의 성지였던 섭지코지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제주의 자연과 함께 호흡하려는 안도 다다오의 의도가 고스란하다. 미술관이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제주 성산의 4성 호텔 '플레이스 캠프'의 김소라 매니저. 김 매니저는 "플레이스 캠프는 나 홀로 여행족을 위한 아지트"라고 강조했다. 손민호 기자
섭지코지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 성산일출봉 어귀에 4성 호텔 ‘플레이스 캠프’가 있다. 2017년 개관한 아래 ‘영(Young)하고 힙(Hip)한 감성 숙소’로 입소문이 자자했던 명소로, 2023년부터 휘닉스 아일랜드가 운영하고 있다. 휘닉스 아일랜드가 가족 여행에 적합한 리조트라면, 플레이스 캠프는 1인 여행자를 위한 호텔이다.
플레이스 캠프는 젊은 감각의 감성 숙소다. 손민호 기자
플레이스 캠프는 캠핑장처럼 6개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제일 높은 건물이 4층으로, 객실은 모두 176개다. 이 중에서 3·3평형 객실이 138개나 된다. 너무 작지 않나 싶지만, 더블베드가 설치된 엄연한 2인용 객실이다. 방은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TV만 없다. 3·3평형 객실 2개를 이어 붙인 6·5평형 객실은 33개다.
김소라(38) 매니저는 “플레이스 캠프 고객의 절반 가까이가 1인 고객”이라며 “플레이스 캠프는 나 홀로 여행자의 아지트와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6·5평형 객실은 물론이고 3·3평형도 혼자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워케이션이나 한 달 살기 숙소로 이용하는 고객도 많다.
플레이스 캠프 프런트 데스크 바로 옆에서 'FAVORITE'이라는 이름의 편집숍이 영업 중이다. 손민호 기자
플레이스 캠프에서 가장 눈길을 끈 공간은 프런트 데스크다. 프런트 데스크 옆에서 편집숍이 영업 중이다. 신발·옷·액세서리부터 제주도 현무암으로 만든 기념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파는데, 장사가 꽤 잘 된단다. 휘닉스 아일랜드까지 무료 셔틀을 운영한다. 투숙객은 휘닉스 아일랜드의 여러 시설을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제주=글ㆍ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