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 폭격 사실은…중동 영향력 놓고 벌인 미·중 패권전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은 시온주의 이스라엘과 이슬람 신앙을 가진 아랍 국가들 간 반목의 역사를 이어왔다. 특히 시아파 맹주국인 이란은 이스라엘과 최대 주적이었다.

이스라엘, 이란의 국기. Cryptorank

이스라엘, 이란의 국기. Cryptorank

이스라엘은 그동안 미국 등에서 사들인 군용기의 연료 탱크를 더 크게 ‘튜닝’했다. 이란까지 날아가서 작전을 수행하고 돌아올 정도의 연료를 채워야 한다는 목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스라엘-이란 전이 터졌다. 양국은 미사일을 주고받으며 전쟁에 돌입했다. 여기에 게임체인저로 미국이 가세했다. 그리고 이란의 뒤엔 중국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B-2 스텔스 전략폭격기. U.S. Air Force

B-2 스텔스 전략폭격기. U.S. Air Force

미국은 포르도·나탄즈·이스파한 등 이란의 3개 핵시설에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는 B-2 스텔스 전략폭격기 6대를 동원해 개당 중량이 13t에 달하는 초대형 관통탄(벙커버스터) GBU-57을 퍼부었다. 이 폭격기들은 당초 미국 미주리주에서 출발해 서태평양 괌 기지로 이동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차례 공중 급유를 거쳐 37시간 비행 끝에 동쪽 방향으로 전환해 이란 본토를 기습한 것으로 밝혀졌다.

패권적 힘을 동원한 중재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힘을 통해 중동의 거대 적성국 간 전쟁은 순식간에 휴전에 들어갔다. 23일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면적 휴전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이날 정오 무렵 마침내 트럼프의 발표대로 휴전에 합의했다.

일부 국내 언론은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미국 우선주의(MAGA)’ 지지자들이 이번 공격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며 미국 내 반응을 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해외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깼다는 비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Britannica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Britannica

반면 이번 공격이 오히려 미국 내 자원을 중국 문제에 집중하기 위한 트럼프의 전략적 판단이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이란을 통해 중동 지역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며 미국의 주의를 분산시켜 왔고, 트럼프가 이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중동에 구축해 온 전략 거점을 붕괴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중국은 20세기 미국을 비롯한 서방 열강의 ‘뒷마당’이었던 중동 지역에 끊임없이 영향력을 넓히려 시도해 왔다. 2023년 3월 이슬람 수니파 맹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맹주국인 이란 대표가 베이징에서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것은 중동의 지정학을 뒤흔드는 기념비적 성과였다. 반면 미국 입장에선 궤멸적 외교 실패로 인식할 수 있다.

중국은 휴전 합의에 대해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중국은 중동 정세를 고도로 주목하고 있고, 휴전이 조기에 실현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군사적 수단이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며 “관련 당사국이 조기에 정치적 해결이라는 올바른 궤도로 돌아오기를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무력으로 이란을 길들이려 한 미국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이란의 압바스 아락치 외무장관은 24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과의 통화에서 "이란 핵시설을 공격한 이스라엘과 미국의 위험한 행동은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이란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지난 6월 13일 이란 공습을 준비 중인 이스라엘 공군 전투기. 이스라엘 방위군

지난 6월 13일 이란 공습을 준비 중인 이스라엘 공군 전투기. 이스라엘 방위군

미국의 공식적 공습 목적은 이란의 핵무기 생산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넓은 전략적 관점에선 미국의 패권 경쟁국인 중국의 중동 기반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정치·경제·군사 등 전방위적으로 이란을 지원해 왔다. 경제적으로 이란 석유 물량의 90%를 사들이고 있다. 이란의 지하 핵시설은 중국 건설팀이 기술적으로 지원해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의 미사일과 무인기 기술, 일부 방공 체계 무기 역시 중국으로부터 직접 이전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중국산 무기의 상당량은 하마스, 헤즈볼라 등 이란이 후견하는 국제 테러 세력에 넘어가고 이스라엘을 겨냥하는 칼 노릇을 했다. 이렇게 중국은 이란을 통해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러시아·이란·북한과 함께 ‘새로운 악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 국가는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전복하고 ‘인류 운명 공동체’라는 이념을 내세워 전체주의적 세계 지배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 이란은 중국 중동 전략의 핵심 거점이며, 중국은 미국의 발을 중동에 묶어놓고 대만해협에서의 무력 충돌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통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통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제창한 ‘인류 운명 공동체’는 마오쩌둥 시대의 ‘평화공존 5원칙’을 현대식으로 재구성한 개념이다. 마오쩌둥이 주장한 ‘평화공존 5원칙’은 상호 주권 및 영토 존중, 내정 불간섭, 평화공존 등 이상적인 구호를 내세운다. 중국 공산당 체제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지 말고 국제사회 일원으로 수용해 달라는 회유가 담겨 있다. 하지만 미국 주류 세력 상당수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자유민주 진영의 경계심을 느슨하게 하려는 시도로 간주하고 있다.

중국은 사실상 반(反)종교 국가지만 이란의 신정 체제는 전폭 지지하고 있다. 이란을 중국과 밀착시켜 미국·이스라엘과 각을 세우도록 유도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힘을 분산시키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전쟁이 미·중 패권전쟁의 축소판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