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지운 구단에 미래 없다' FC서울, 팬 지적에 귀기울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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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린 기자 사진 박린 기자
프로축구 FC서울 팬들이 29일 포항전이 끝난 뒤 선수단 버스를 가로 막았다. 기성용의 포항행에 책임이 있는 김기동 감독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박린 기자

프로축구 FC서울 팬들이 29일 포항전이 끝난 뒤 선수단 버스를 가로 막았다. 기성용의 포항행에 책임이 있는 김기동 감독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박린 기자

 
프로축구 FC서울 서포터스는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포항 스틸러스와의 홈 경기 내내 “김기동 (감독) 나가“를 외쳤다. 베테랑 미드필더 기성용(36)의 포항 이적 결정에 대한 분노 표시였다. 이들은 킥 오프에 앞서 경기장 북측 광장에서 “구단의 생명력이 다 했다”며 향을 피우고 모의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다.  

FC서울 팬들이 29일 포항전이 끝난 뒤 선수단 버스를 가로 막았다. 기성용의 포항행에 책임이 있는 김기동 감독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박린 기자

FC서울 팬들이 29일 포항전이 끝난 뒤 선수단 버스를 가로 막았다. 기성용의 포항행에 책임이 있는 김기동 감독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박린 기자

 
서울이 4-1로 대승을 거둔 후에도 서포터스는 분을 풀지 않았다. 일부가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선수단 버스를 막아 섰다. 한 시간 가까이 대치하다 김 감독이 버스에서 내려 “1일에 팬들과 간담회를 갖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비로소 길을 터줬다. 경기에 앞서 응원 보이콧을 선언한 서포터들은 전·후반 90분 내내 줄곧 기성용과 또 다른 레전드 고요한의 개인 응원가만 불렀다. 고요한과 데얀(몬테네그로)은 SNS에 팬들이 올린 글(‘레전드를 지운 구단에게 미래란 없다’ 등)을 공유했다. 

서울 팬들이 기성용의 이적 소식 만으로 분노한 건 아니다. 지난 20년 간 박주영과 이청용, 데얀, 아디(브라질), 오스마르(스페인) 등 핵심 멤버로 활약한 선수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이적 또는 은퇴를 종용한 상황에 대한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 폭발한 것에 가깝다.  

FC서울에서 활약하던 박주영과 이청용은 울산으로 떠났다. [연합뉴스]

FC서울에서 활약하던 박주영과 이청용은 울산으로 떠났다. [연합뉴스]

서울 유니폼을 입고 3시즌 연속 득점왕(2011~13)에 오른 데얀은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뒤 2018년 라이벌 수원 삼성으로 떠났다. 서울에서 10년간 뛴 박주영은 2020년 시즌 종료 후 구단의 유스팀 지도자 제의를 거절하고 울산으로 건너갔다. 이후 울산에서 은퇴해 코치로 재직 중이다. 서울은 2020년 독일에서 복귀한 이청용과의 계약 협상에 소극적으로 임하다 울산으로 보낸 이력도 있다.

FC서울 팬들은 경기 내내 “김기동 나가”를 외치며, 구단 레전드 기성용을 포항으로 떠나보낸 김기동 서울 감독과 구단을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FC서울 팬들은 경기 내내 “김기동 나가”를 외치며, 구단 레전드 기성용을 포항으로 떠나보낸 김기동 서울 감독과 구단을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헌신한 팀에서 은퇴해 지금까지도 레전드로 존중 받는 김주성(부산), 윤성효(수원), 이동국(전북) 등과는 다른 행보다. 김기동 감독도 포항에서 마흔 살까지 뛴 뒤 레전드로 박수 받으며 유니폼을 벗었다. 올해 말까지 6개월만 더 뛰고 은퇴할 계획이던 기성용의 이적을 허락한 서울의 결정에 대해 “예우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프로축구 FC서울 김기동 감독. [사진 프로축구연맹]

프로축구 FC서울 김기동 감독. [사진 프로축구연맹]

 
축구 관계자들은 “명문 구단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성적 뿐만 아니라 전통도 필요하다”면서 “단기적인 성적 만을 고려해 상징적인 선수를 떠나보내는 건 근시안적 결정”이라 아쉬워한다. 실제로 기성용은 K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로 성장해 유럽 무대에 진출한 뒤 국내 복귀 시에도 다른 팀의 러브콜을 모두 뿌리치고 친정팀 서울행을 고집한 선수다. 구단이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 은퇴와 그 이후까지 세심하게 관리했다면 팬들의 분노와 눈물을 박수와 환호가 대신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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