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력 대출규제, 다음은 공급 확대…관건은 '숫자' 아닌 '속도'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정부가 주택시장으로 몰리며 집값을 밀어 올리는 유동성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고 보고 수도꼭지를 잠그듯 유입 통로를 막았다. 지난달 27일 발표한 대책 제목이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이지만 실제로는 ‘집값 관리 강화 방안’이다.  

막 출범한 새 정부는 뚜껑이 달그락거리며 끓어 넘칠 지경인 집값을 놔둘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직 정부 구성을 끝내지 못하고 주택정책 청사진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섣불리 여러 규제를 동원할 수도 없었다. 급한 대로 가장 빠르고 손쉬운 대출 틀어막기를 택했다. 대출 규제는 법령을 개정하거나 국무회의를 거칠 필요 없이 금융권을 압박해 바로 다음 날부터 시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집값 과열에 초강력 대출 규제
새 정부 정책 확정 전 급한 불 끄기
공급 숫자보다 분양 속도 높여야
분양가상한 등 규제 재검토 필요
정부는 시장 반응을 지켜보며 추가로 LTV(담보인정비율) 조정 등을 통해 대출 규제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이번 대책의 틈새인 ‘현금부자 갭투기(전세 끼고 매입)’를 메우기 위해 실수요만 거래를 허용하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서울과 수도권으로 확대할 수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정부가 급한대로 초강력 대출 규제를 꺼냈다. 조만간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한 중장기 대책으로 주택공급 확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서울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정부가 급한대로 초강력 대출 규제를 꺼냈다. 조만간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한 중장기 대책으로 주택공급 확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서울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서울 아파트 준공물량 '반의 반토막'

 
초강력 대출 규제를 통해 과열된 수요를 꺾은 정부는 중장기적 시장 안정을 위해 공급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7일 대출 규제 발표 때 정부 관계자는 “우수한 입지에 충분한 규모의 주택이 안정적으로 공급된다는 확신을 통해 수급 불안 심리가 해소될 수 있도록 주택공급 활성화에도 만전을 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윤석열 정부에서 주택공급량이 워낙 빠르게 급감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연평균 36만가구인 아파트 준공물량이 올해 30만가구 아래로 내년과 2027년엔 각 20만가구 정도로 줄어들 전망이다. 집값을 선도하는 서울은 더 걱정이다. 올해 예년 평균을 상회하는 4만가구를 넘기지만 내년 3만가구로, 2027년은 1만가구 정도로 확 내려간다.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희망고문에 그치는 숫자놀음보다 개발이 진행 중인 사업장의 공급 속도를 높여야 한다. 서울에선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이 관건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까지 짓는 아파트 15만 가구 중 10만가구가량이 정비사업을 통해 공급된다.  

정비사업의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단축할 필요가 있다. 사업 밑그림인 정비계획을 수립하면 착공까지 단계를 통합하면 된다. 지난해부터 건축·교육·환경·교통 등 사업계획에 필요한 심의가 통합됐다. 여기서 나아가 사업계획 승인과 분양계획(관리처분) 인가도 한꺼번에 처리한다면 사업 기간을 꽤 단축할 수 있다. 사업계획 승인 이후 바로 착공하는 일반 주택개발사업과 달리 정비사업은 사업계획 승인 이후 이해관계가 얽힌 조합원·일반분양 계획을 세우는 관리처분 단계에서 사업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사업계획 승인과 관리처분 인가를 동시에 신청할 수 있는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다.

인허가보다 2배 넘게 줄어든 착공 

 
착공을 재촉하기 위한 ‘당근’도 검토해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인허가 감소도 문제였지만 주택공급 부족 불안감을 더욱 키운 것은 착공 지연이었다. 인허가는 받아놓고 막상 착공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2~2024년 서울 아파트 건설 인허가 물량이 직전 3년간보다 15% 줄었는데 착공물량은 35% 감소했다.      

착공이 줄어들면 '분양 가뭄'을 낳는다. 기존 주택시장의 수요를 분양시장으로 분산하지 못하는 것이다.  

초강력 대출 규제

초강력 대출 규제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인허가가 끝난 물량이 빠르게 착공에 들어가고 분양시장에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공사비 급등이 착공 발목을 잡았으나 다행히 올해 들어 공사비 상승이 진정되는 모습이다. 그동안 오른 공사비를 둘러싼 시행자와 시공사 간 갈등 해결에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당근책으로 사업계획 승인 이후 일정한 기간 안에 착공하고 분양하면 세제 등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문 정부는 2019년 10월 정비사업장에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하면서 2020년 7월 말까지 9개월간 경과 기간을 뒀다. 이때 상한제를 피하기 위한 밀어내기 분양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상한제와 같은 채찍보다는 당근을 쓰는 게 바람직하다.  

윤 정부가 폐지한 사전청약도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 3기 신도시와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서울 서리풀지구 등의 용적률(사업부지 대비 지상건축연면적 비율)을 높이면 분양물량을 대폭 늘릴 수 있다. 현재 고양 창릉 등 3기 신도시 6곳 평균 용적률이 206%이고 건립 가구수가 18만6000가구다. 법에서 정한 한도인 250%까지 올리면 4만~5만 가구를 더 짓는다.

상한제·재건축부담금의 딜레마

 
정비사업의 뜨거운 감자가 분양가상한제와 재건축부담금이다. 분양가상한제는 윤 정부에서 대폭 풀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용산구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이들 지역의 정비사업장은 상한제를 적용받기 때문에 일반분양분 분양가를 주변 시세의 절반 정도로 책정해야 한다. 현재 반포 등의 새 아파트 시세가 3.3㎡당 1억5000만원 이상이지만 상한제 분양가는 최고 7000만원대다. 상한제가 다시 확대되면 목동·여의도와 분당 등 1기 신도시의 재건축, 성수 등 강북 지역 재개발의 사업성이 떨어져 공급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한제를 풀어주면 재건축 사업성은 더욱 좋아지겠지만 재건축 추진 아파트 가격에 불을 지르는 셈이 된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상한제는 주택 수요를 흡수하기보다 '로또'를 기대한 과잉 수요를 낳아 수요·공급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준공 후에도 일정 기간 거주의무 등에 묶여 시장에 매물로 나오지 못한다.  

재건축부담금은 윤 정부에서 많이 완화돼 강남 정도만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집값이 계속 뛰면 목동·여의도·분당·과천 등도 안심할 수 없다. 부담금은 시공사를 선정하고 사업계획 인가를 받을 무렵 대략 산정되는데, 한껏 고무된 재건축 사업이 부담금에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다. 개발이익 환수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시행과 유예·완화를 반복하며 누더기가 돼 정책 신뢰가 퇴색되기도 했다.

수요 억제보다 공급 확대가 집값을 중장기적으로 안정시키는 정공법이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편법이나 임시방편보다 정공법으로 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