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를 앞둔 김영관(65) 조교사가 지난 27일 부산 강서구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말을 돌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숨은 지휘자’로 21년, 전설의 조교사 은퇴

지난 27일 오후 2시20분쯤 부산 강서구 부산경남경마공원 경마장에서 관객이 4경주를 관람하고 있다. 이 경주에서 마권 19억원어치가 판매됐다. 김민주 기자
데뷔는 늦었지만, 20여년간 7045전을 치르며 1539회 우승을 거뒀다. 경마사상 최단기 1000승(2014년 6월)과 첫 1500승(2024년 8월) 달성 모두 김 조교사의 기록이다. 같은 시기 데뷔한 조교사들 중엔 200~300회 우승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그가 경기에서 타낸 상금 총액은 906억원(조교사 몫 8% 적용 시 72억4800만원)에 이른다.
“‘혈통馬’ 알아보는 건 기본일 뿐”
이와 관련, 김 조교사는 “말의 뼈대와 움직임, 걸음걸이, 유연성 등 좋은 말을 알아볼 수 있는 요건들이 있다”며 “하지만 그걸 모르는 조교사는 없다. 눈에 띄는 좋은 말일수록 더 알아보기 쉽다”고 했다. 요컨대 말의 자질을 알아보는 건 시작에 불과하단 이야기다.

김영관(65) 조교사가 27일 부산 강서구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은퇴를 앞두고 본인의 경력과 조교사로서이 노하우 등을 설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그는 “일본·호주·미국 등 좋은 경마 시스템과 마시장을 갖춘 곳이면 가리지 않고 다녔다. 그들은 말의 습성을 어떻게 파악하고 길들이는지 눈여겨 관찰했다”고 했다.
이어 “말의 습성을 정확히 파악해 (국내 사료보다) 20~30% 비싼 값에 근력ㆍ지구력 등에 좋은 사료를 해외 현지에서 공수했다. 경기 땐 말의 보폭과 실제 발걸음 수를 비교해 발밀림 정도를 계산하고, 결승점에 도착해 머리를 쳐드는지, 앞으로 뻗는지 등 '콧구멍 속까지' 세심히 관찰하며 조교했다”고 했다.
말 위 기수의 역할도 크다. 경마판엔 ‘경주 기여도는 마(馬) 7 인(人) 3’이라는 오랜 금언이 있다. 김 조교사는 “훌륭한 기수는 이걸 ‘마 3 인 7’로 바꿔낸다. 수시로 말을 관찰ㆍ분석하고, 습성을 정확히 파악하려 조교사와 소통한다. 조교사는 중요한 경기 때 그 기수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말이 일찍 전성기를 맞는 조숙형인지, 완숙형인지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며 “일찍부터 제 체질에 맞는 사료를 먹으며 최적의 레이스 자세를 갖춘 말이 전성기에 좋은 기수를 만나면, 혈통 좋은 말도 앞지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걸 이뤄내는 순간 온몸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도파민이 샘솟는다”고 말하며 그는 천진하게 웃어 보였다.
“‘남의 우승 뺏어갔다’ 원망, 이젠 이해돼”
김 조교사는 “좋은 결과를 많이 냈지만, ‘형님, 남의 우승 상금을 그렇게 많이 뺏어가면 어쩌느냐’는 주변 볼멘소리를 시샘 정도로만 여겼다”며 “하지만 이제 그 말의 뜻을 알겠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 늘 조바심을 내느라 주변을 둘러보거나 잘 챙기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지난 27일 김영관(65) 조교사가 부산 강서구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말을 돌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김 조교사는 “조교사로 산 20여년 누린 영광은 결코 혼자 이룬 게 아니다. 김진우·이주현·안애환·미티키 등 톱니바퀴 같은 호흡으로 말을 돌봐준 마방 식구들에겐 각별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마사회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퇴임 이후에라도 우리나라 경마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주어지는 역할을 마다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